[북한비즈니스] 조용필 북한 순회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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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나 ‘조용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감동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다. 조용필 노래를 100번 정도 불러 보지 않은 중장년층도 없다. 그런 조용필의 북한 평양, 청진, 신의주, 개성, 원산 그리고 백두산 공연을 추진하면, 온 우리 민족의 축제가 될 것이다. 그는 이미 2005년 8월 2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가수 조용필의 공연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되었고, 남한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접하면 숙청되는 북한에서도 그의 인기는 숨길 수 없었다. “조용필은 이미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가수여서 그의 평양공연 소식이 알려지자 평양시민들 사이에서는 관람권을 얻기 위한 ‘난투’가 벌어졌다”고 할 정도였다. 15년 전에도 이 정도였다면, 북한 주요 도시 순회공연에 청중 동원은 문제가 없다.
조용필의 의미두 말하면 잔소리라 생략한다.
조용필 공연 무대 구성
우선 상징적이고 가장 인구가 많은 서울과 평양에서 시작한다. 무대의 구성은 가능한 한 단순화하면서 조용필의 노래에 가장 집중할 수 있도록 꾸민다. 물론 공연이라는 것이 비주얼적인 면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온전히 그의 혼신을 다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과 흥겨움을 이끌어내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도 비주얼 그 자체이다. 공연 날짜는 달 밝은 보름 날 전후로 잡는다. 휘황찬란하고 번쩍이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사이키 조명도 신나고 분위기를 살리지만, 그가 ‘비련’, ‘촛불’, ‘친구여’, ‘허공’, ‘창밖의 여자’와 같은 노래를 부를 때는 보름달 비치는 은은한 자연조명이 더 어울린다.무대는 한강과 대동강의 한가운데 높이 솟은 ‘조용필 타워’에 ‘조용필’이 올라간다. 그 타워의 높이는 양 쪽 강변에서 충분히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이면서, 필요할 때는 아래서 조명을 쏘아도 그의 전신 모습이 비추어지고, 조용필도 그들과 팔을 흔들어 교감할 정도의 높이면 된다. 바람이 세거나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투명 유리와 지붕도 준비하면 더욱 좋겠다. 그의 밴드인 ‘위대한 탄생’은 조용필 타워 아래에 있으면서 비디오와 오디오로 조용필과 협조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비록 위아래로 떨어져 있지만, 같이 공연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도록 한다. 한강과 대동강의 양 쪽 강변에는 성능이 좋은 스피커들을 최대한 많이 설치하여 어디서나 소리의 왜곡 없이 한껏 그의 감수성에 스며들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도 같이 설치한다. ‘조용필 타워’에는 최소한의 조명만 하고 달빛이 그를 비추게 하면서, 드론으로 그의 열창하는 모습을 찍는다. 하지만 공연 시간 중 일부만 그의 노래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추고, 대부분의 시간은 높은 타워에서 열창하는 그의 실루엣과 움직임만을 보며 음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공연은 듣고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용필의 공연만은 듣기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아,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특히 서울에서도 평양에서도 부산에서도 원산에서도 ‘기도하는 ~~~~~ 까약~~~~~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시라!공연의 사업성
서울과 평양은 물론이고 웬만하면 북한에서는 실내 공연보다는 오픈된 공간에서 실외 공연으로 하고 입장료는 받지 않는 무료 공연으로 할 것이다. 그 동네 사람들이 돈이 있건 없건 간에 그동안 듣지 못했던 한민족의 정서와 현대적 감성을 모두 갖고 있는 조용필의 음악을 실컷 듣게 하겠다. 조용필이 1979년 데뷔한 이후로 남한의 팬들은 그의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언제나 들을 수 있었지만,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북한 주민들도 조용필의 음악을 즐길 권리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15년 전 평양에서 공연할 때 북한 당국은 관람객들을 상대로 “박수를 세게 쳐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성의 없이 쳐도 안 된다. 점잖게 행동하다 와야 한다.”라는 요지의 교육을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박수를 쳐도 되고, 춤을 춰도 되고, 눈물을 흘려도 누가 뭐라 못하게 하겠다. 대신에 그런 말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돈은 받지 않으면 된다. 일단 무대 구성의 초점을 오디오에 맞추기 때문에 비주얼을 구성하는 부분에는 투자를 적게 하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한강과 대동강변을 꽉 채울 청중들의 안전과 즐거움이다. 1993년 부산 해운대 비치콘서트 공연할 때는 경찰 추산이 46만 명이었다. 철저한 대비를 요하는 대목이다.
어떻게 보면 강변에서 하니 장소 임차료가 들지 않고, 무대도 강 한가운데 단촐하게 꾸밀 것이니 콘서트 준비 비용은 많이 들 것 같지는 않지만, 워낙 조용필이니 청중의 수를 대략 보수적으로 잡아도 1993년 정도는 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그럼 한강에 46만 명, 대동강에 46만 명으로 추정하고 준비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일단은 무료이니만큼 티켓박스나 판매 과정에서 드는 수수료는 없다. 우선 남북한이 하나되는 의미가 있고, 북한 주민들에게 문화생활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살아오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억압되었던 자유를 선사하는 공연이니만큼 시작하는 비용은 나의 개인 사비로 하려고 한다. 그리고 모자라면 기업의 후원이나 조용필 팬들의 기부금을 받으면 적어도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시작하기 전에 장비 점검과 스탭들의 훈련을 위하여 사전 공연은 그의 모교인 성북구 삼선동의 ‘경동고등학교’에서 헌정 공연을 하는 것도 감안하고 있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조용필의 의미두 말하면 잔소리라 생략한다.
조용필 공연 무대 구성
우선 상징적이고 가장 인구가 많은 서울과 평양에서 시작한다. 무대의 구성은 가능한 한 단순화하면서 조용필의 노래에 가장 집중할 수 있도록 꾸민다. 물론 공연이라는 것이 비주얼적인 면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온전히 그의 혼신을 다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과 흥겨움을 이끌어내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도 비주얼 그 자체이다. 공연 날짜는 달 밝은 보름 날 전후로 잡는다. 휘황찬란하고 번쩍이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사이키 조명도 신나고 분위기를 살리지만, 그가 ‘비련’, ‘촛불’, ‘친구여’, ‘허공’, ‘창밖의 여자’와 같은 노래를 부를 때는 보름달 비치는 은은한 자연조명이 더 어울린다.무대는 한강과 대동강의 한가운데 높이 솟은 ‘조용필 타워’에 ‘조용필’이 올라간다. 그 타워의 높이는 양 쪽 강변에서 충분히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이면서, 필요할 때는 아래서 조명을 쏘아도 그의 전신 모습이 비추어지고, 조용필도 그들과 팔을 흔들어 교감할 정도의 높이면 된다. 바람이 세거나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투명 유리와 지붕도 준비하면 더욱 좋겠다. 그의 밴드인 ‘위대한 탄생’은 조용필 타워 아래에 있으면서 비디오와 오디오로 조용필과 협조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비록 위아래로 떨어져 있지만, 같이 공연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도록 한다. 한강과 대동강의 양 쪽 강변에는 성능이 좋은 스피커들을 최대한 많이 설치하여 어디서나 소리의 왜곡 없이 한껏 그의 감수성에 스며들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도 같이 설치한다. ‘조용필 타워’에는 최소한의 조명만 하고 달빛이 그를 비추게 하면서, 드론으로 그의 열창하는 모습을 찍는다. 하지만 공연 시간 중 일부만 그의 노래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추고, 대부분의 시간은 높은 타워에서 열창하는 그의 실루엣과 움직임만을 보며 음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공연은 듣고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용필의 공연만은 듣기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아,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특히 서울에서도 평양에서도 부산에서도 원산에서도 ‘기도하는 ~~~~~ 까약~~~~~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시라!공연의 사업성
서울과 평양은 물론이고 웬만하면 북한에서는 실내 공연보다는 오픈된 공간에서 실외 공연으로 하고 입장료는 받지 않는 무료 공연으로 할 것이다. 그 동네 사람들이 돈이 있건 없건 간에 그동안 듣지 못했던 한민족의 정서와 현대적 감성을 모두 갖고 있는 조용필의 음악을 실컷 듣게 하겠다. 조용필이 1979년 데뷔한 이후로 남한의 팬들은 그의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언제나 들을 수 있었지만,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북한 주민들도 조용필의 음악을 즐길 권리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15년 전 평양에서 공연할 때 북한 당국은 관람객들을 상대로 “박수를 세게 쳐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성의 없이 쳐도 안 된다. 점잖게 행동하다 와야 한다.”라는 요지의 교육을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박수를 쳐도 되고, 춤을 춰도 되고, 눈물을 흘려도 누가 뭐라 못하게 하겠다. 대신에 그런 말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돈은 받지 않으면 된다. 일단 무대 구성의 초점을 오디오에 맞추기 때문에 비주얼을 구성하는 부분에는 투자를 적게 하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한강과 대동강변을 꽉 채울 청중들의 안전과 즐거움이다. 1993년 부산 해운대 비치콘서트 공연할 때는 경찰 추산이 46만 명이었다. 철저한 대비를 요하는 대목이다.
어떻게 보면 강변에서 하니 장소 임차료가 들지 않고, 무대도 강 한가운데 단촐하게 꾸밀 것이니 콘서트 준비 비용은 많이 들 것 같지는 않지만, 워낙 조용필이니 청중의 수를 대략 보수적으로 잡아도 1993년 정도는 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그럼 한강에 46만 명, 대동강에 46만 명으로 추정하고 준비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일단은 무료이니만큼 티켓박스나 판매 과정에서 드는 수수료는 없다. 우선 남북한이 하나되는 의미가 있고, 북한 주민들에게 문화생활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살아오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억압되었던 자유를 선사하는 공연이니만큼 시작하는 비용은 나의 개인 사비로 하려고 한다. 그리고 모자라면 기업의 후원이나 조용필 팬들의 기부금을 받으면 적어도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시작하기 전에 장비 점검과 스탭들의 훈련을 위하여 사전 공연은 그의 모교인 성북구 삼선동의 ‘경동고등학교’에서 헌정 공연을 하는 것도 감안하고 있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