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화 칼럼] 애비야! 뭐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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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 필자를 찾는 이들이 유난히 많아 졌다. 대부분이 회사 또는 학교 후배들로 대기업에 다니다가 명퇴를 했다. 게다가 퇴직 후 딱히 하는 일이 없이 보내고 있었다. 퇴직금을 제법 챙긴 이도 있고, 그냥 위로금 조로 조금 받아 나온 이도 있고, 전혀 받지 못한 채 퇴직금 하나 달랑 받은 이들도 있다. 이들 중 직장 후배인 K부장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K부장은 지난해 초 느닷없이 명퇴 명령을 받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하는 일이 서비스 업이라서 그간 참 바쁘게 보냈다. 물론 집도 사고 아이들 건사도 잘 했다. 다만 갑작스런 명퇴 통보를 받은 터라 한 두 어 달은 나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냈다. 맘이 안정되지 않은 터라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하고 지냈다. 늘 맘 한 켠엔 암(?)같은 부담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침 K부장이 받지 않고 막내가 받았다. 아버지는 막내 손자에게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과정에 “아빠는 잘 있지?” 하면서 물었다. 이 질문에 막내가 이렇게 답했다.
“아빠 지금 공부하는데요?”
이 뜻하지 않는 답변에 시골 부모님이 되물었다.“아니 아빠가 왜 서울에 있냐?”
아버지는 이내 눈치를 채고 떨리는 가슴을 달래면서 말을 이었다.
“아빠 바꿔라! ” 이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K부장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별고 없으시지요?”
“그래! 이게 시방 무슨 소리여!” “실은 두 달 전에 명퇴를 했습니다. 바로 말씀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
K부장은 그간 사정 등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그 누구보다 억장이 무너진 이는 아버지였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늘 자랑하던 큰 아들이 명퇴를 한 것이다. 그야말로 맑은 날에 날벼락을 맞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들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가 이렇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애비야!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명령 아닌 명령이었다. 아니 부모님의 큰 아들에 대한 작은 소망이자 바람이었다. 이 말이 무척이나 힘들게 파고들었는지 K부장 눈 가에 이내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은 우리 사회 단면이 아닐까 한다. 물론 더러는 “그간 잘 먹고 잘 살았네…뭐 ” 할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가족을 책임질 가장은 참으로 힘이 들고 어깨가 쳐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퇴직하고, 아프고,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네 명퇴자들이나 은퇴자들을 조금 들여다보면 좀 특이한 게 있다. 이들이 온실 밖으로 나와서 딱히 할 게 없다는 것이다. 더러는 여행을 다니거나 아니면 귀농이나 귀촌하지만 대다수가 자영업의 길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그 길에서 여지없이 쓴 맛을 톡톡히 본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참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다.> 우리가 살면서 <생존>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 생존하려면 무엇보다 <내력>이 강해야 한다. 그런데 그 <내력>은 일터에 있을 때 쌓는 것이지 나와서 쌓은 것이 아니다. 대개 직장인들은 자신의 <내력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다 알고 있다. 이 내력이면 조직에서 버틸 수 있는지 아니면 퇴직을 하고 나서도 이겨낼 수 있는가를 말이다.
당신이 강하게 밀치고 들어오는 <외력>을 막아내려면 방법이 따로 없다. 스스로 그 근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이것은 키워 주질 않는다. 당신의 <생존력>은 부모도 가족도 마련해 주질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힘>이다. 그 <힘>이 있어야 온실에서 나와 뭐라도 할 수 있다.
“애비야! 뭐라도 해야지?” 당신도 언젠가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이내화2190716(crelee@naver.com)
K부장은 지난해 초 느닷없이 명퇴 명령을 받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하는 일이 서비스 업이라서 그간 참 바쁘게 보냈다. 물론 집도 사고 아이들 건사도 잘 했다. 다만 갑작스런 명퇴 통보를 받은 터라 한 두 어 달은 나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냈다. 맘이 안정되지 않은 터라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하고 지냈다. 늘 맘 한 켠엔 암(?)같은 부담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침 K부장이 받지 않고 막내가 받았다. 아버지는 막내 손자에게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과정에 “아빠는 잘 있지?” 하면서 물었다. 이 질문에 막내가 이렇게 답했다.
“아빠 지금 공부하는데요?”
이 뜻하지 않는 답변에 시골 부모님이 되물었다.“아니 아빠가 왜 서울에 있냐?”
아버지는 이내 눈치를 채고 떨리는 가슴을 달래면서 말을 이었다.
“아빠 바꿔라! ” 이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K부장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별고 없으시지요?”
“그래! 이게 시방 무슨 소리여!” “실은 두 달 전에 명퇴를 했습니다. 바로 말씀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
K부장은 그간 사정 등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그 누구보다 억장이 무너진 이는 아버지였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늘 자랑하던 큰 아들이 명퇴를 한 것이다. 그야말로 맑은 날에 날벼락을 맞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들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가 이렇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애비야!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명령 아닌 명령이었다. 아니 부모님의 큰 아들에 대한 작은 소망이자 바람이었다. 이 말이 무척이나 힘들게 파고들었는지 K부장 눈 가에 이내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은 우리 사회 단면이 아닐까 한다. 물론 더러는 “그간 잘 먹고 잘 살았네…뭐 ” 할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가족을 책임질 가장은 참으로 힘이 들고 어깨가 쳐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퇴직하고, 아프고,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네 명퇴자들이나 은퇴자들을 조금 들여다보면 좀 특이한 게 있다. 이들이 온실 밖으로 나와서 딱히 할 게 없다는 것이다. 더러는 여행을 다니거나 아니면 귀농이나 귀촌하지만 대다수가 자영업의 길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그 길에서 여지없이 쓴 맛을 톡톡히 본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참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다.> 우리가 살면서 <생존>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 생존하려면 무엇보다 <내력>이 강해야 한다. 그런데 그 <내력>은 일터에 있을 때 쌓는 것이지 나와서 쌓은 것이 아니다. 대개 직장인들은 자신의 <내력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다 알고 있다. 이 내력이면 조직에서 버틸 수 있는지 아니면 퇴직을 하고 나서도 이겨낼 수 있는가를 말이다.
당신이 강하게 밀치고 들어오는 <외력>을 막아내려면 방법이 따로 없다. 스스로 그 근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이것은 키워 주질 않는다. 당신의 <생존력>은 부모도 가족도 마련해 주질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힘>이다. 그 <힘>이 있어야 온실에서 나와 뭐라도 할 수 있다.
“애비야! 뭐라도 해야지?” 당신도 언젠가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이내화2190716(cr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