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에 기대어 쓰다] <단순한 진심> 모든 생명에 대한 헌사

아주 오래전 고 최진실 씨가 주연이었던 영화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해외입양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생모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혹은 더 나은 환경으로 보낸다는 자기 위안 내지는 희미한 희망을 앞세워 시작된 입양은 늘 그렇듯 ‘미안하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와 같은 드라마 속 대사 같은 언어로 마무리되곤 했다. 오래전 봤던 그 영화도 비슷한 서사를 따르고 있었다.
주인공 나나, 혹은 문주가 프랑스로 입양된 1986년은 수많은 한국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이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바로 그 시기였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의지와 무관하게,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 던져진 채 살아내야 하는 게 생명을 가진 존재의 숙명이다. 하물며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낯선 머나먼 타국으로 보내진 아이들이 겪을 혼란과 불안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자신의 근원지에서 버림받고 밀려난 그곳에서 또다시 타인이 되는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 던져진다. 입양아들이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옷을 갈아입듯 쉽게 정체성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머나먼 타국에서 외로운 섬처럼 부유해야 했던 시간은 이들의 가슴속에 수많은 상처와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고아 수출국’이라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과거사는 한때의 수치였고 더 이상은 되풀이되지 않는 일로만 여겼다. 입양이나 입양인의 존재가 이제는 없다는 듯 살아왔다. 다시금 ‘해외 입양’ 과 ‘기지촌 여성’의 문제를 들고 나온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을 읽기 전까지는.‘이름은 집이니까요. 서영의 두 번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단순한 진심–

배우이자 극작가인 나나가 자신의 영화를 찍고 싶다는 ‘서영’의 뜬금없는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이유는 서영의 메일 속에 등장하는 ‘정체성’ ‘존재감’ ‘이름’ ‘기억’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존재를 향한 집요하고 뿌리 깊은 갈망이 그녀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했을 것이다. 나나는 35년 전 프랑스로 입양된 입양아였고 그녀의 뱃속에는 ‘우주’ 라 이름 지은 헤어진 남자 친구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나나는 유독 이름에 집착한다.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름, 자신이 거쳐 간 서울의 지명과 그 의미를 집요하게 묻는다. 나나는 자신의 한국 이름인 문주가 ‘문기둥’ 또는 강원도 방언으로 ‘먼지’라는 의미가 있음을 비롯해 조선시대 겁탈당한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모여 살아 ‘이타인’으로 불렀다는 ‘이태원’과 아이들의 시체를 묻은 매립지라는 지명에서 유래하는 ‘아현’을 알게 된다.생모에게 버려지고 철로에서 자신을 구한 기관사에게 또다시 버려졌다는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나는 한국에서 자신이 묵고 있던 서영의 집 아래층에서 식당을 하는 연희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복순과 복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난 연희는 기지촌 여성 복순과 그녀의 딸, 혼혈아 복희와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가부장제에서 버림받은 연희는 미혼모와 혼혈아, 입양아 등 사회적 약자로 구성된 대안가족을 이끌었던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이었다. 흑인 병사의 아이를 임신한 복순을 거두고 그녀의 딸 복희를 기르며 마지막까지 두 생명을 책임지려했던 연희를 보며 나나는 어쩌면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으로 존재했던 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생모와 양부모 앙리와 리사가 떠올랐다.

철로에 버려졌다는 확신 속에서 매 순간 살아야 할 이유를 물어야 위태롭게 버틸 수 있었던 나나는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의 근원이 생각했던 것만큼 비극적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위안을 얻는다. 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닌, 생면부지의 남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사랑했던 연희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게 된 나나는 비로소 생의 의지를 회복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입양 보낸 복희를 그리워하며 복희와의 만남을 평생의 숙원으로 삼았지만 결국 연희는 복희를 만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나나이자 문주에게 이어지고 자신을 거둔 생모와 양부모를 기억하며 나나는 마지막까지 연희 곁을 지킨다.‘추연희(秋戀禧), 그리워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 나는 이제 그 이름을 내 삶이 끝날 때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 이름을 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은 우주를 키우는 일과 함께 내가 이 세계 앞에서 지켜야 하는 예의가 되리라’ –단순한 진심–

우연히 자신의 삶 속으로 불쑥 들어온 타인이었지만 불청객을 외면하지 않았던 연희와 앙리, 그리고 리사가 있었기에 나나는 이제 막 시작된 여린 생명, 온 힘을 다해 존재를 알리는 ‘우주’를 품고자 마음먹었을 것이다. 연희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삶에 연루되기를 자처한 문주를 통해 다시 생명은 이어지고 마음의 온도는 식지 않은 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어쩌면 하나의 온전한 우주가 되기도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조금이나마 자격이 있다면, ‘단순한 진심‘은 이 세상 모든 생명에 바치는 헌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다가오는 생명과 떠나간 생명, 양극의 세계가 서로 알아보지 못한 채 암흑 속에서 스쳐가는 장면처럼 두 세계는 때로는 겹쳐지고 때로는 어긋나며 생을 이어간다. 오해와 상처로 시작된 생을 이해와 용서로 봉합하는 장면은 냉혹한 세상에 한 점 온기를 전해주었다.

책을 덮고 내 이름 석 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편안하고 어질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찾은 문주처럼 <단순한 진심>을 읽는 또 다른 ‘문주’ 들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고,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아름다운 시간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