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코스모스,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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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김명숙산골 이장 집 막내딸
분홍색 원피스에
높은 하이힐 신고
후리후리한 큰 키에
낭창낭창한 허리 간들대며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마을 길섶에
버스 기다리고
서 있다.
[태헌의 한역]
秋英(추영)
山村里長小女兒(산촌리장소녀아)
好著粉紅連衣裙(호착분홍련의군)
足履高鞋益瘦長(족리고혜익수장)
娉娉嫋嫋動腰身(빙빙뇨뇨동요신)
自從淸晨黎明時(자종청신려명시)
路邊佇待巴士臻(노변저대파사진)[주석]
* 秋英(추영) : 코스모스.
山村(산촌) : 산골. / 里長(이장) : 이장. / 小女兒(소녀아) : 막내딸.
好著(호착) : (옷을) 잘 입다. / 粉紅(분홍) : 분홍색. / 連衣裙(연의군) : 원피스.
足履(족리) : 발에 ~을 신다. / 高鞋(고혜) : 하이힐. 高跟鞋(고근혜)의 준말. / 益(익) : 더욱. / 瘦長(수장) : 호리호리하다, 후리후리하다.
娉娉嫋嫋(빙빙뇨뇨) : 아리땁고 낭창낭창한 모습. / 動(동) : ~을 움직이다, ~을 흔들다. / 腰身(요신) : 허리.
自從(자종) : ~부터. / 淸晨(청신) : 맑은 새벽. / 黎明時(여명시) : 날이 밝아올 때, 여명의 시간.
路邊(노변) : 길가. / 佇待(저대) :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다. / 巴士(파사) : 버스(Bus)의 음역어(音譯語). 홍콩에서 만들어진 어휘임. / 臻(진) : 이르다, 도착하다.
[직역]
코스모스
산골 이장 집 막내딸
분홍색 원피스 잘 차려입고는
발에 하이힐 신으니 더욱 후리후리
낭창낭창하게 허리 흔들며
맑은 새벽 날이 밝아올 때부터
길가에 서서 버스 오기를 기다린다
[한역 노트]
왜 하필이면 “산골 이장 집 막내딸”일까? 예전에는 아무리 산골이라도 이장 정도면 제법 유식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더랬다. 그리고 막내딸은 대개 어느 집에서나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응석받이로 자라난 경우가 많아, 자기 위의 언니들이나 오빠들보다는 다소 철이 없는 경우가 보통이었다.[이 땅의 모든 막내딸들께서 혜량(惠諒)해 주시기를!^^]
나름대로 멋을 낼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농번기에도 휑하니 집을 뛰쳐나와 읍내로 갈 배짱은 막내딸에게나 어울릴 법한 설정이다. 분홍색 원피스와 하이힐이 이장 집의 “여유로움”이나 막내딸의 “멋스러움”을 보여주는 차림새라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와 낭창낭창하게 허리 흔들며 버스 기다리는 모습은 막내딸의 “철없음”을 보여주는 활동사진이다.
그러나 느닷없이 이 시에 불려나온 “산골 이장 집 막내딸”의 스토리는 사실 코스모스의 속성에 정확하게 대응이 되는 비유의 장치들이다. 분홍색 원피스는 흔한 코스모스 꽃의 색깔을, 하이힐은 코스모스의 후리후리한 키를, 낭창낭창하게 허리 흔드는 것은 코스모스가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모습을,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은 대개 신작로 가장자리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그 시절 초가을의 풍경을 환기(喚起)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는 얼마 전에 감상한 박인걸 시인의 <무더위>와 비슷하게 시 전편이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비유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장 집 막내딸”이 버스를 기다리는 대목까지만 유효한 것이다. 왜일까? 그 시점을 지나 버스가 이미 도착해버린 상황이라면, “이장 집 막내딸”로 묘사된 ‘코스모스’가 버스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비유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역자가 원시의 ‘버스’를 한역(漢譯)하면서 흔히 쓰이는 ‘공차(公車:중국어로 버스를 뜻하는 公共汽車의 준말.)’라는 어휘를 쓰지 않고 ‘파사(巴士)’라는 외래어[Bus] 음차(音借)를 사용한 까닭은, 시인이 기왕에 코스모스를 “산골 이장 집 막내딸”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내딸이 기다리는 대상에 ‘士[신사 정도의 의미]’가 들어가는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한역시에서의 비유는 완결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작자는 이 점에 대해서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한역을 한 역자에게 차 한 잔 정도는 사야지 않을까 싶다. ‘巴’는 중국에서 지명(地名) 혹은 국명(國名)으로 쓰이는 글자이지만, ‘(프랑스) 파리[巴黎]’의 약어(略語)로도 쓰인다. 그리하여 다소 엉뚱하기는 해도 음차로 사용한 ‘巴士’를 굳이 번역하자면 ‘파리의 신사’ 정도가 되기 때문에, 막내딸이 기다리는 대상은 달리 멋쟁이 신사가 될 수도 있다. ……
4연 9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를 역자는 칠언 6구의 고시(古詩)로 재구성하였다. 한역시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으며, 압운자는 ‘裙(군)’, ‘身(신)’, ‘臻(진)’이다.
2019. 9. 3.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김명숙산골 이장 집 막내딸
분홍색 원피스에
높은 하이힐 신고
후리후리한 큰 키에
낭창낭창한 허리 간들대며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마을 길섶에
버스 기다리고
서 있다.
[태헌의 한역]
秋英(추영)
山村里長小女兒(산촌리장소녀아)
好著粉紅連衣裙(호착분홍련의군)
足履高鞋益瘦長(족리고혜익수장)
娉娉嫋嫋動腰身(빙빙뇨뇨동요신)
自從淸晨黎明時(자종청신려명시)
路邊佇待巴士臻(노변저대파사진)[주석]
* 秋英(추영) : 코스모스.
山村(산촌) : 산골. / 里長(이장) : 이장. / 小女兒(소녀아) : 막내딸.
好著(호착) : (옷을) 잘 입다. / 粉紅(분홍) : 분홍색. / 連衣裙(연의군) : 원피스.
足履(족리) : 발에 ~을 신다. / 高鞋(고혜) : 하이힐. 高跟鞋(고근혜)의 준말. / 益(익) : 더욱. / 瘦長(수장) : 호리호리하다, 후리후리하다.
娉娉嫋嫋(빙빙뇨뇨) : 아리땁고 낭창낭창한 모습. / 動(동) : ~을 움직이다, ~을 흔들다. / 腰身(요신) : 허리.
自從(자종) : ~부터. / 淸晨(청신) : 맑은 새벽. / 黎明時(여명시) : 날이 밝아올 때, 여명의 시간.
路邊(노변) : 길가. / 佇待(저대) :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다. / 巴士(파사) : 버스(Bus)의 음역어(音譯語). 홍콩에서 만들어진 어휘임. / 臻(진) : 이르다, 도착하다.
[직역]
코스모스
산골 이장 집 막내딸
분홍색 원피스 잘 차려입고는
발에 하이힐 신으니 더욱 후리후리
낭창낭창하게 허리 흔들며
맑은 새벽 날이 밝아올 때부터
길가에 서서 버스 오기를 기다린다
[한역 노트]
왜 하필이면 “산골 이장 집 막내딸”일까? 예전에는 아무리 산골이라도 이장 정도면 제법 유식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더랬다. 그리고 막내딸은 대개 어느 집에서나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응석받이로 자라난 경우가 많아, 자기 위의 언니들이나 오빠들보다는 다소 철이 없는 경우가 보통이었다.[이 땅의 모든 막내딸들께서 혜량(惠諒)해 주시기를!^^]
나름대로 멋을 낼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농번기에도 휑하니 집을 뛰쳐나와 읍내로 갈 배짱은 막내딸에게나 어울릴 법한 설정이다. 분홍색 원피스와 하이힐이 이장 집의 “여유로움”이나 막내딸의 “멋스러움”을 보여주는 차림새라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와 낭창낭창하게 허리 흔들며 버스 기다리는 모습은 막내딸의 “철없음”을 보여주는 활동사진이다.
그러나 느닷없이 이 시에 불려나온 “산골 이장 집 막내딸”의 스토리는 사실 코스모스의 속성에 정확하게 대응이 되는 비유의 장치들이다. 분홍색 원피스는 흔한 코스모스 꽃의 색깔을, 하이힐은 코스모스의 후리후리한 키를, 낭창낭창하게 허리 흔드는 것은 코스모스가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모습을,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은 대개 신작로 가장자리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그 시절 초가을의 풍경을 환기(喚起)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는 얼마 전에 감상한 박인걸 시인의 <무더위>와 비슷하게 시 전편이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비유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장 집 막내딸”이 버스를 기다리는 대목까지만 유효한 것이다. 왜일까? 그 시점을 지나 버스가 이미 도착해버린 상황이라면, “이장 집 막내딸”로 묘사된 ‘코스모스’가 버스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비유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역자가 원시의 ‘버스’를 한역(漢譯)하면서 흔히 쓰이는 ‘공차(公車:중국어로 버스를 뜻하는 公共汽車의 준말.)’라는 어휘를 쓰지 않고 ‘파사(巴士)’라는 외래어[Bus] 음차(音借)를 사용한 까닭은, 시인이 기왕에 코스모스를 “산골 이장 집 막내딸”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내딸이 기다리는 대상에 ‘士[신사 정도의 의미]’가 들어가는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한역시에서의 비유는 완결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작자는 이 점에 대해서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한역을 한 역자에게 차 한 잔 정도는 사야지 않을까 싶다. ‘巴’는 중국에서 지명(地名) 혹은 국명(國名)으로 쓰이는 글자이지만, ‘(프랑스) 파리[巴黎]’의 약어(略語)로도 쓰인다. 그리하여 다소 엉뚱하기는 해도 음차로 사용한 ‘巴士’를 굳이 번역하자면 ‘파리의 신사’ 정도가 되기 때문에, 막내딸이 기다리는 대상은 달리 멋쟁이 신사가 될 수도 있다. ……
4연 9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를 역자는 칠언 6구의 고시(古詩)로 재구성하였다. 한역시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으며, 압운자는 ‘裙(군)’, ‘身(신)’, ‘臻(진)’이다.
2019. 9. 3.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