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도심 아파트 10억이면 산다…'부동산 신화' 깨진 일본 [강영연의 인터뷰집]

일본은 가격 하락 감안해서 집 골라
부동산 투자에 매력 느끼지 못한다

송창석 일본 변호사 인터뷰
"나에게 집은 무엇일까" '인터뷰 집'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투자 가치를 가지는 상품, 내가 살아가는 공간.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오를만한 아파트를 사는 것이 나쁜 건 아닙니다.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죄악은 아니겠죠. 하지만 누구나 추구해야하는 절대선도 아닐 겁니다. 기사를 통해 어떤 정답을 제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집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인터뷰는 나이, 직업, 학력, 지역 등에서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시고 싶은 분, 내 주변에 사람을 추천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직접 찾아가 만나겠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송창석 변호사는 재일교포 3세다. 일본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 지난해부터 한국 로펌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월세 가격은 상대적으로 싼 반면 집 값은 비싸서 놀랐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10억원이면 도쿄에서 가장 좋은 지역에 25평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도쿄에서 가족이 살 수 있는 아파트 월세는 200만원이 넘을 만큼 비싸다. 일본은 투자를 목적으로 부동산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도 했다. 1990년대 부동산 버블(거품) 붕괴의 기억 때문이다. 그는 "버블이 터진 후 '부동산 가격은 내리지 않는다'는 안전신화가 깨졌다"며 "일본에서는 부동산을 매매할 때 가격 하락을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위험) 등을 매우 신중하게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도쿄 아파트, 가격 안 오른다

송 변호사는 도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3년부터 일본의 대형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변호사로 일할 당시 그가 살던 곳은 도쿄 도심인 분쿄구 고이시카와에 있는 아파트였다. 그는 분쿄구가 중산층 거주 주거지역으로 유흥시설 등이 없고, 도쿄대 등 교육기관이 많아 살기좋은 지역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고이시카와는 특히 인기가 많은 동네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쿄대 로스쿨을 다닐때 돈이 없어 지하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곳(기타구)에 살았는데, 부자인 친구들이 분쿄구에 사는게 부러웠다"며 "변호사가 되면 꼭 분쿄구에 살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회상했다. 일본에서도 고이시카와 처럼 부자 동네로 인식돼 선망의 대상인 곳도 있지만 한국처럼 동네별로 차이가 크진 않다고 했다. 투자를 위해 집을 사려는 수요도 많지 않다. 그 때문에 집 값도 싸다. 송 변호사는 10억원 정도면 도쿄에서 가장 좋은 지역에 25평 아파트를 살수 있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겪은 일본인들이 부동산 투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는 "버블 시기까지는 부동산은 절대적인 안전자산으로 갖고 있으면 가격이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고 오르기만 한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버블이 터지면서 안전신화가 깨졌고 사람들은 매매를 신중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출이 쉽지 않은 것도 한 이유다. 그는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연봉이 1억 5000만원은 돼야 대출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며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 자체가 적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집 값은 많이 오르지도 않는다. 도쿄 도심의 일부 역세권 아파트는 오르지만 지어진지 오래된 곳이나 역에서 멀면 가격이 떨어진다고 했다. 송 변호사는 "주택 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집 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평생 살고 싶은 집을 사야

그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집을 살 때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살기 편한 곳, 평생 살아도 되는 곳을 고른다고 했다. 그가 사고 싶은 집은 변호사 생활동안 살았던 고이시카와에 있는 아파트라고 했다. 적어도 집값이 떨어질 걱정은 없는 곳이고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강남에 산다고 하면 부자라고 인식하듯이 일본에서는 고이시카와에 산다고 하면 그렇게 생각한다"며 "주변에 유해시설이 없고 환경이 깨끗한 것도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그 역시 부동산에 투자해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못해봤다고 했다. 사실 그런 생각때문에 후회한 적도 있다. 그가 살던 고이시카와의 집 값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1.5배로 올랐다. 그는 "2013년에 집을 샀으면 그만큼 돈을 벌었을테고 지금 연수를 위해 해외를 다닐때 좀 여유로운 생활을 했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여전히 집을 사는 것에는 신중하다. 오른 만큼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사는 한국인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만약 자신도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그렇게 했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재일 교포 3세로 국적은 한국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일 문화에 더 익숙해 투자에 있어 보수적인 면이 있다"며 "그래도 한국은 집 값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평생 살 계획이라면 집을 살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월세가 정말 싸다는 점도 한국 살이의 장점으로 꼽았다. "일본에서 18평짜리 아파트 월세가 220만원이었는데, 한국에서는 16평짜리 오피스텔이 절반도 안되는 100만원이에요. 한국에 처음 와서 월세가 너무 싸서 깜짝 놀랐습니다."

◆은퇴 후 전원 생활 꿈꾼다

집을 사기 위해 고른다면 자산의 안전성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 같다고 했다. 오를 필요는 없지만 자산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집을 사고 싶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회사에서 가깝고, 생활의 질이 높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직장까지 30분 이내에 출근 할수 있고, 주위에 공원도 있고, 조용하고 살기 편리한 곳에 집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살고 싶은 집은 미국의 전원 주택이라고 했다. 그는 2019년 부터 1년간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로스쿨에 다니면서 주택 생활을 처음 해봤다.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은 점, 마당 등이 잘 갖춰진 점, 주변 환경이 조용한 점 등이 좋았다고 했다. 반려견과 아이에 대해 호의적인 미국 문화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차로 10분 거리에 골프장이 있는 것도 좋았다"며 "은퇴를 하면 도심을 벗어나 전원 생활을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집에 가장 갖추고 싶은 구성품은 욕조다. 일본인들은 매일 저녁 목욕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다. 한국에 와서 오피스텔에 살면서 샤워부스만 있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반려견과 함께 휴식을 할 수 있는 넓직한 거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일하고 책 볼 수 있는 자신만의 서재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이후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집에서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분리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집이란 '업무를 떠나서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대형로펌 변호사는 업무중심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고 직장에 있거나 법원에 갈 때 모두 늘 긴장 상태"라며 "그런 긴장감을 풀고,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라고 강조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