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플레 기대심리는 더욱 고조될까?

"강한 경기회복 징후 보이지 않아
장기적 인플레 국면 가능성 낮지만
저금리·저물가 급변상황 대비해야"

차은영 <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
학부 수준의 거시경제학 첫 수업에서 다루는 주요 거시경제 이슈는 대략 여섯 개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장기적 경제성장과 단기적 경기변동, 글로벌 경제, 거시경제 정책 그리고 경제가 해결해야 할 난제, 실업과 인플레이션이다. 이 중 인플레이션은 관련 이론을 설명하는 것 외엔 실례를 들기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심각하게 체감하는 실업과 비중이 같은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동안 청년 세대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 역사적 상황으로만 배워왔던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화두로 떠올랐다. 계속되던 저성장과 코로나 팬데믹 충격으로 인한 경기침체가 본격적인 백신 접종이 시작됨에 따라 턴어라운드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아지고 있다.2008년 금융위기 이후 풀린 유동성의 양을 고려하면 인플레이션이 진작에 본격화되지 않은 것이 의문일 정도다. 그동안 단기적으로 경기회복 징후도 나타났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요가 증가하기 어려운 가운데,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중국의 저비용구조에 기반한 공급능력 확대와 디지털화로 인한 유통혁신으로 물가 상승 압박은 크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각국이 퍼부은 재정 규모, 특히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1조9000억달러의 부양책과 별개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위한 부양책을 또다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자금이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지난 1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투입한 부양책 규모는 2020년 미국 연방정부 본예산 4조7900억달러를 넘어선 5조6000억달러에 육박한다. 확대 재정정책을 옹호해온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도 대규모 소득 보전 경기부양책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예상을 뛰어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촉발할지 모른다며 지나친 재정지출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정도다.

금융시장에서는 경기회복을 둘러싼 기대와 인플레 기대심리 상승으로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1년 새 거의 세 배 상승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년 만기 국채금리(15일 오전 기준)는 연 2.160%를 기록했다. 지난 5일 연 2.009%로 코로나 사태 후 처음으로 2%를 넘었고 그 뒤로도 계속 상승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이처럼 빨리 오른 건 2016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주가가 출렁이고 신흥국의 긴축발작(taper tantrum)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한국은행과 미 중앙은행(Fed)은 일단 인플레이션에 대한 부담이 장기화할 것으로 간주하진 않는 듯하다. 경기순환적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지속가능성 여부는 불투명해서다. 인플레 기대심리 외에 미 국채금리 상승에는 중국의 미 국채 대량 매도도 한몫하고 있고, 적자재정을 운용해야 하는 각국이 국채를 발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금리 상승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고용시장이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여주지 못해 장기적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던 인플레이션의 폐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미 원자재 가격과 유가는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으로 올랐고, 피로감에 지친 소비자의 수요가 급등하면 인플레 위험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완연한 경기회복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 이상 양적완화 축소와 금리 인상을 채택하기는 힘들지만 과잉 유동성의 크기와 부채를 생각하면 인플레이션 세금이라는 정책 수단을 만지작거릴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경기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금융위기 이후 공짜로 누려온 저금리·저물가 혜택이 지속될 수는 없다.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시점이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올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