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베이비부머와 메뚜기떼

산업화·민주화 당사자며 수혜자
인구 3명 중 1명 베이비부머는
복지제도 초토화시킬 것

자식에 빚덩이 물려주는 대신
정치권의 복지열차서 내려
지속가능한 복지화에 힘써야

강석훈 <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
가장 역동적인 사람 이야기 중 하나는 1958년과 1970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부머 스토리일 것이다. 베이비부머는 1955년부터 1974년까지 20년간 연평균 94만 명, 전체 1875만 명이 태어났다. 현재 베이비부머는 47세부터 66세인 중년인데, 전체 인구 약 세 명 중 한 명이다.

다른 나라에도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지만,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청장년 시대에는 산업화의 역군이 됐다. 산업화의 고난을 겪었지만, 산업화 진전의 혜택도 받으면서 그 이전 어느 세대도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경제적 성장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는 토양이 됐고, ‘87년 체제’라는 제도적 민주화를 달성하기도 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나 베이비부머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소득분배가 개선되는 시기를 살았던 행운의 세대이기도 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해 지금까지 일곱 번이나 대통령을 바꿔 본 짜릿한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다.베이비부머의 삶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변화했다. 이 시기부터 한국은 경제 성장률 저하와 소득분배 악화라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의 완성이라는 과제를 뒤로 한 채, 복지가 전면에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로 전환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17년 사이에 한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증가율은 11.6%로, OECD 국가 평균 증가율 5.2%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정부의 사회복지재정은 2000년 35조원에서 2020년에는 181조원으로 5.2배 증가했다. 타 분야를 압도하는 높은 증가율이다. 한국은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복지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하겠다.

주목되는 점은 산업화, 민주화의 당사자이면서 수혜자가 베이비부머였듯이 복지화의 최대 수혜자도 베이비부머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첫 베이비부머인 1955년생이 2020년에 노인이 됐고, 마지막 베이비부머인 1974년생이 2039년에 노인이 될 것이다. 이 20년 기간 중 매년 평균 82만 명, 전체 1634만 명의 베이비부머가 새롭게 노인이 될 것이다. 이들은 마치 메뚜기떼가 들판을 모조리 휩쓸어 가듯이 한국의 복지제도를 초토화시킬 것이다.

노인이 급증하고 인구가 감소하면서 국민연금은 마지막 베이비부머인 1974년생이 수급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2042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83세가 되는 2057년 고갈된다. 그야말로 베이비부머를 위한 국민연금이다. 매년 노인이 되는 베이비부머는 수조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되고, 보장률을 높인 건강보험의 최대 수혜자도 베이비부머가 될 것이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공무원연금도 베이비부머가 최고 수혜자다. 향후 5년 동안 여섯 번의 전국 단위 선거를 거치면서 정치권의 복지경쟁이 펼쳐지고, 최대의 유권자인 베이비부머는 멋져 보이는 복지열차에 올라타게 될 것이다.베이비부머로서는 그들이 향유할 복지가 젊은 시절의 기여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가 얻는 높은 수익률과 복지혜택은 다름 아닌 그 자녀의 노동의 대가를 부모세대가 미리 앞당겨 소비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는 동안 베이비부머 자식세대는 부모보다 못살게 되는 첫 번째 세대가 된다. 베이비부머가 부모세대를 부양했던 것처럼, 베이비부머는 자식 부양을 받는다. 그 부양이 끝나는 무렵에 베이비부머는 세상에 없고, 그 자식은 빚덩이 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공동체의 불안 공유라는 복지화의 참된 뜻이 복지 포퓰리즘으로 변형되고, 향후 선거를 통해 더욱 극단적인 복지 포풀리즘으로 폭발할 상황이 눈에 선하다. 산업화, 민주화를 만든 자랑스러운 역사가 복지 포퓰리즘에 처참하게 무너진다면, 그 자리엔 산업화도 없고, 민주화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베이비부머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복지화를 이루는 것을 역사적 책무로 여겨야 한다. 후대에게 복지를 갉아먹은 메뚜기떼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