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진가 몰라본 투자자들…숱한 경험이 되레 毒 됐다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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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함정
로빈 M. 호가스 / 엠레 소이야르 지음
정수영 옮김 / 사이 / 324쪽│1만6500원
지식에 갇히면 창의성 발휘하기 힘들고
새로운 아이디어 성공 가능성 못 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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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은 물론 의학 전문가들까지 왜 오랫동안 사혈을 만병통치약으로 믿었을까. 사혈은 처음부터 인체 구조와 질병의 원리에 관한 부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데 필요한 도구도 방법도 없던 당시에는 ‘질병은 체액의 불균형 때문에 생기며 사혈이 그 균형을 찾아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경험의 오류였다. 사혈로 죽은 자들은 말이 없기에 치료 경험에서 배제됐다. 반면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생생히 담긴 회복의 집단 경험은 사혈요법을 맹신하게 했다.경험은 우리 삶 대부분의 측면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데 분명 많은 도움을 준다. 문제는 사혈의 경우처럼 경험이 항상 믿음직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 의사결정학과 교수인 로빈 M 호가스와 행동과학자 엠레 소이야르는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학습하고 사고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인터넷과 검색엔진 분야 전문가들의 경험은 구글의 잠재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제록스 경영진의 경험 역시 개인용 컴퓨터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데 길잡이가 되지 못했다. 출판사들의 경험 또한 오늘날 《해리포터》의 세계적 돌풍을 앞서 읽어내지 못했다. 모두 한 분야에서 경험이 많을수록 새로운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저자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이 많고 지식이 깊어질수록 시야와 접근 방법은 경직돼 예상치 못한 기회를 알아보는 데 방해가 된다”며 “혁신 그 자체가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불러오는 주요 동력이기 때문에 획기적 아이디어일수록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재단할 경우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또 경험이 쌓일수록 ‘능숙함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한다. 아이디어 하나로 기업의 운명이 뒤바뀌는 정보기술(IT) 분야처럼 변화가 빠른 분야일수록 경험에 갇혀 늘 하던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의외의 독창적 요소를 알아차리고 기회로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된다.경험과 그 경험을 얻는 환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험의 틀 밖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들은 “경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속일 수 있다”며 “의사결정 주체로서 경험에서 얻는 교훈을 ‘결론’이 아니라 차차 검증해야 할 ‘가정’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경험을 통해 놓친 것은 무엇인지, ‘무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항상 의문을 제기하고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