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11주기…"우리에게 필요한 건 낙인이 아니라 명예"

전준영 천안함예비역전우회장·김승섭 고려대 교수 인터뷰
'장애의 역사' 번역 김승섭 "19세기 남북전쟁과 21세기 천안함 사건 다를 바 없어"
전준영 "나라 지킨 군인을 군에서도 사회에서도 지켜주지 않아"
"천안함 사건, 정쟁에 이용되지 않기를"
2010년 4월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의 함수를 인양하고 있다. 46명이 전사한 천안함 폭침 사건은 26일 11주기를 맞았다. 4년 만에 서해수호의 날과 날짜가 겹쳤다. 한경DB
“전쟁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그 장애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장애를 가진 퇴역군인들은 연금을 신청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승인될 확률 역시 낮았다. 전쟁으로 생겨난 신경 시스템 손상, 뇌 손상, 그리고 오늘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불리는 상태는 퇴역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종종 낙인이 되었다.”

킴 닐슨 미국 톨레도대 교수의 저서《장애의 역사》(동아시아)에서 남북전쟁(1861~1865년)에 참전했다가 정신 관련 장애를 얻은 군인들이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에 대해 서술한 대목이다. 남북전쟁에서 팔·다리가 절단된 것처럼 ‘눈에 보이는 장애’를 입은 군인들은 사회에 돌아왔을 때 비(非)장애인 퇴역군인과 거의 비슷하게 취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철저히 소외됐다. 저자는 장애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몸의 정의, 정상성의 정의에 대해 묻는다. 21세기 한국에서도 이와 매우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벌어진 천안함 폭침 사건과 관련해서다. 당시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했고, 58명이 살아남았다. 생존 장병들은 PTSD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에선 아직도 이들에게 ‘패잔병’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천안함이 북한 어뢰의 공격으로 폭침되었다는 사실이 공식 증명됐는데도 여전히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
전준영 천안함예비역전우회장(왼쪽)과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천안함 11주기는 진정한 군인의 명예가 무엇인지 한국 사회에 되물은 중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천안함예비역전우회장을 맡고 있는 전준영 씨와 《장애의 역사》를 번역한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를 최근 고려대에서 만나 함께 인터뷰했다. 두 사람은 2018년 천안함 생존자의 PTSD 현황 조사로 만난 인연이 있다. 전씨는 “나라를 지킨 군인들을 군에서도, 사회에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복무하다가 다친 군인들에게 ‘네가 잘못했다’고 몰아가는 군대가 과연 건강하게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천안함 사건 11주기입니다. 올해는 서해수호의 날과 날짜가 겹쳐졌습니다. 천안함 사건 생존자들은 “보수는 우리를 이용했고 진보는 외면했다”고 말했지요. 어떻게 보십니까. ▶(김승섭)“천안함 장병들이 자부심을 가졌으면 해요. 군 복무를 성실히 수행하다가 마음을 다쳤는데, 군 부대 안에서 생각하는 ‘능력 있는 몸’에서 벗어났다는 취급을 받았죠. 아직까지 한국의 군대 문화가 그런 것 같아요.《장애의 역사》에선 남북전쟁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지금의 현실에 대입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전준영)“그런 푸대접을 가장 심하게 겪은 분이 최원일 함장님입니다. 군에서 엘리트 집단에 있다가 천안함 사고 후 한직으로 밀려났습니다. 함장님은 그 상처를 나름대로 극북하셨지만 너무나도 힘들어하셨죠. 저희 생존자들에게 ‘내가 만일 다른 배의 함장이 된다면 너희들 다 데리고 배 타고 싶다’고 하셨는데 끝내 배를 타지 못하셨어요. 사고 후 10년 동안.(당시 중령이었던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34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지난 2월 28일 대령으로 전역했다.)
▷천안함 사건 당시 생존장병에 대한 초기 대응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전준영)“그 때 저는 고참 병장이었습니다. 최 함장님께서 당시 시신 감별을 하셨어요. ‘시신 감별 현장에 너는 안 갔으면 좋겠다’고 지시하셔서 가지는 않았어요. 나중에 시신 감별 현장에 다녀온 천안함 군인들에게 그 당시 상황을 들었어요. 군에선 저희를 ‘빨리 일을 시켜야 할 인력’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고난 지 하루 만에 언론 인터뷰를 해야만 했어요. 사고 원인을 왜 저에게 물어보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김승섭)“수십만명이 일하는 군대에서 그렇게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사자들에게 ‘네가 잘못했다’라고 한다면 과연 군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생존 장병들을 너무 빨리 언론과 외부에 노출시켰어요. 그게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타인을 지켜주는 군인을 정작 보호해 주지 않은 것이죠. 한국 사회의 언론, 인터넷 포털 댓글들이 너무 예의가 없어요. 함부로 말하고 책임은 지지 않죠. 육안 부검은 법적 효력이 없어요. 사건 당사자의 마음이 매우 혼란스럽고, 냉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유전자 검사, 치아 검사 등 법의학적 확인을 해야 합니다.”

▷현재 생존장병에 대한 처우는 어떻습니까. ▶(전준영)“생존 장병 중 12명만 국가유공자로 지정됐어요. 제 경우 군대에서 ‘패잔병’이란 말을 듣고 제대했어요. 문제는 제대 후 어떤 제도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군에서 관련 안내를 전혀 해 주지 않았거든요. 60만 장병 중 한 해에 의병 제대 하는 군인이 200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제대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는 게 현실입니다. 군에서 현역들에게도 관련 제도 안내를 꼭 해 줘야 해요.”

▷앞으로 어떤 점이 개선됐으면 좋겠습니까.

▶(전준영)“천안함 용사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천안함은 서해 최전선을 지키다가 북한 어뢰에 당했어요. 우리의 아픔이 잊히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건 진영논리에 묻힐 사안이 아닙니다. 정쟁에 이용되지 않았으면 해요. 음모론과 낙인이 아니라 명예가 필요해요. 너무도 당연한 것을 11주기가 될 때까지도 이 말을 계속 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그리고 아픈 것을 숨기지 마세요. 우리는 나라를 지킨 용사들입니다.”

▶(김승섭)“‘바람직한 몸’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군대는 언제든 부상과 장애에 노출된 공간입니다. 복무 중에 다쳤는데 이를 지켜주지 못할 망정 군과 사회에서 이들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