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발본색원하되 3기 신도시는 지속해야 [여기는 논설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계기로 공공 주도의 ‘2‧4 공급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대책의 공급 확대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던 마당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아 사업을 추진해야할 LH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민간 주도의 주택공급 활성화로 방향을 전면 전환하지 않으면, 좌초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그런데 2·4 대책에 대한 여러 비판들 가운데 한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3기 신도시를 전면 취소하라”는 주장입니다.

서울시민 절반이 “취소해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 언론사가 여론조사한 결과 서울시민의 47.8%는 “사업을 취소해야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17.2%에 달했습니다.

이 같은 여론은 아직까지 ‘3기 신도시 원안 추진’을 굽히지 않고 있는 정부 입장에도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지율에 민감한 정부인만큼 내년 대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정말 신중히 처리해야할 문제입니다. ‘숫자놀음’ 가득한 2‧4대책 가운데 그나마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정책인 만큼 득(得)보다 실(失)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LH 주도로 서울에서 앞으로 5년간 11만7000가구와 9만3000가구를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이번 사태가 없었어도 실현 여부가 불투명했을 사업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원들의 주택 소유권을 넘겨받고, 땅주인‧건물주들의 동의 없이 토지를 수용하는 방식이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3기 신도시를 포함한 신규 공공택지 사업은 사정이 다릅니다. 준공 시기가 문제이지 정부가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면 목표로 한 84만5000가구를 공급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는 만성적 공급부족으로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주택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물량입니다.

이런 3기 신도시를 행여나 전면 취소한다면 일시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집값에 기름을 부을 공산이 큽니다. 올해 7월로 예정된 사전청약(6만2000가구)만 기다리고 있는 무주택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기도 합니다.

임대비율은 낮춰야

물론 3기 신도시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큰 전제가 있습니다. 투기 발본색원이 그것입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투기의 전모를 밝혀낸 뒤에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해보입니다. 3기 신도시를 비롯한 신규 택지 사업은 큰 틀에서 방향을 유지하고, 2‧4 대책의 실효성 떨어지는 다른 축들(공공주택 복합사업‧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민간 재건축‧재개발로 전면 전환하는 것입니다.

다만 3기 신도시를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임대아파트 비율은 확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청약 대기자들의 ‘입맛’을 최대한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월 초 시작된 LH사태는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최대 위기요인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내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지닌 서울‧부산 보궐선거의 무게추까지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 기울어져 버렸으니, 그 파괴력은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간 문재인 정부가 지지층을 의식해 결단하지 못했던 주택정책의 대전환을 이뤄낼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과연 그 결단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용기가 없음은 명백해 보입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