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불복 극심한 혼란 겪은 미…이번엔 투표권 제한 '정면충돌'

공화당, 우편투표 제약 추진…조지아주에서 첫 입법 성공
우편투표 제한은 민주당에 불리…정치공방 속 법정분쟁 비화 작년 11월 치러진 대선의 승복 문제를 놓고 극심한 혼란을 겪은 미국이 이번엔 유권자 투표권 제한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직후부터 부정투표로 인해 패배했다고 주장해 1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때까지 두 달 넘게 정치적, 법적으로 큰 혼돈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 그런데 이젠 공화당이 개별 주에서 우편투표 제약을 추진해 또 다른 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포문은 조지아주가 열었다.

지난 25일 공화당 주도로 주 의회에서 우편으로 부재자투표 시 신분 증명 강화, 부재자투표 신청 기한 단축 등을 담은 법안을 처리해 주지사 서명까지 마쳤다. 28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기준 미국의 50개 주 중 최소 43개 주에서 투표권을 제약하는 250건 이상의 법안이 제출돼 있다.

작년 같은 시기 제출된 법안의 7배에 해당한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와 위스콘신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다. 이들 법안이 제출된 주에는 조지아를 비롯해 애리조나,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등 바이든 대통령이 근소한 표 차로 이긴 경합주가 대부분 들어가 있다.

공화당은 본인 확인 절차 미흡 등 우편투표 문제점을 해소하고 투표 신뢰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면에는 득표 유불리라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표소 현장투표는 공화당 지지층이 선호하는 반면 우편투표는 민주당 지지층이 더 많이 참여하고 실제로 지난해 전염병 대유행과 맞물려 민주당이 우세한 유색인종의 투표 편의성 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년 대선 개표 때 바이든 대통령이 초기 현장투표가 먼저 개표된 경합주에서 뒤지다가 이후 극적인 역전승에 성공한 것은 나중에 개표된 우편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을 낳았다.

이런 개표 흐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기투표, 불법선거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됐으며, 불복 정국은 지난 1월 트럼프 지지층의 의사당 난동으로 5명이 숨지는 참사를 낳았고 민주당의 트럼프에 대한 '2차 탄핵' 추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우편투표 제약은 공화당 입장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 참여 저하 요인으로 작용해 유리한 선거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민주당은 극력 저지할 수밖에 없는 사안인 셈이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은 조지아주 입법에 대해 "헌법과 양심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라며 '21세기의 짐크로'라고 비난했다.

짐 크로법은 과거 미국 공공시설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도록 만든 차별 법률을 망라하는 용어로 사용돼 왔다.

민주당은 지난 3일 다수석인 연방 하원에서 우편투표 기회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국민을 위한 법'을 통과시키며 공화당과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이는 개별 주 차원에서 투표권 제약법을 처리하더라도 이를 무력화할 근거를 만들려는 것이지만, 문제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이 50 대 50인 상원 통과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향후 정치권의 논란이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개별 주 차원으로 내려가면 플로리다, 애리조나의 경우 조지아처럼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에 주지사까지 맡고 있어 민주당이 입법을 저지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들 주는 공히 경합주다.

이 논란은 법정 분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지아주 시민단체들은 벌써 조지아 법이 투표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CNN방송은 공화당의 조지아주 법 통과가 그간 흑인, 히스패닉 등 당 지지층의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에 거슬러 올라가는 '뺄셈의 정치'라면서 공화당 의원들이 '시민권 박탈'에 동조할지 결정해야 할 갈림길에 섰다고 평가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민주당은 조지아 법을 투표권과의 전쟁에서 공화당이 기습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바라본다며 다른 주에서도 다음 입법은 자신의 차례라는 민주당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