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코앞인데 민심 불질러…'부동산 역린' 건드린 재벌저격수 퇴출

靑, 오전에 김상조 경질…오후에 반부패정책 회의

21개월…文정부 최장수 정책실장
靑 "문제 안돼"서 하루만에 경질
여당 압박·재보선 감안한 듯
< 고개숙인 김상조 >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퇴임사를 낭독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주요 정책을 총괄해온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물러났다.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임대차 신고제) 시행 직전 전셋값 인상 논란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이뤄진 전격 교체다. 정책 실패, 여당과의 불협화음 등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변함 없는 신임을 받았지만 정권 최대 ‘역린’으로 꼽히는 부동산 ‘내로남불’에 발목이 잡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간 끌수록 정권에 부담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김 실장 전격 경질 사실을 밝혔다. 김 실장은 “국민들께 크나큰 실망을 드리게 된 점 죄송하기 그지없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이날 경질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하루 전 전셋값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만 해도 청와대는 “크게 문제가 될 것 없다”는 분위기였다. 김 실장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 금호동 아파트의 전셋값이 올라 어쩔 수 없이 올린 것이고, 여전히 청담동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불법은 아니라도 법 시행 이틀 전 본인 소유 주택의 전세 보증금을 대폭 인상한 계약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30년 된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등 물욕 없는 이미지로 각인돼온 김 실장이어서 국민의 배신감은 더 컸다. 김 전 실장은 어쩔 수 없이 전셋값을 올렸다고 해명했지만 예금만 14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김 실장은 전날 밤 유 실장에게 사의를 밝혔고, 이날 아침 대통령에게도 직접 보고했다.

재·보선 앞두고 빠른 결정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심 이반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청와대가 빠른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흑석동 부동산 투기 의혹, 노영민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의 다주택 보유 등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 실장 사임은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4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고, 백신 접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김 실장이 역할을 다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문재인 정부 최장수 정책실장이다. 2019년 6월부터 지금까지 21개월 근무했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18개월), 김수현 전 정책실장(7개월)보다 길다. 김 실장은 지난해 말부터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여당의 입김도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재난지원금 등에서 다른 입장을 보여온 김 실장의 교체를 계속 요구해왔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부동산 적폐청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말했다.

수요 억제론자 퇴장…정책 변화 기대

이호승 신임 정책실장의 취임은 문재인 정부 들어 지속돼 온 학자 출신 청와대 정책실장의 계보가 일단락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김 실장의 낙마를 불러온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큰 변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초대 정책실장인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와 뒤를 이은 김수현, 김상조 전 실장은 모두 교수 출신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공급보다는 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를 강조했다. 특히 김수현 전 실장은 《부동산은 끝났다》는 책에서 “부동산으로 얻은 수익은 불로소득인 만큼 환수해 공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시점에서 이들의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이 실장은 기존과는 다른 부동산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2·4 대책’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선보인 주택 공급 기조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대출 및 세금 관련 규제가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다양한 정책을 섭렵한, 경험 있는 인물로 시장을 안정시킬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영연/노경목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