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유품 27점 통해 제주 4·3 역사와 개인의 삶 되짚는다

허은실 시인·고현주 사진작가 '기억의 목소리' 출간

제주지법은 지난 16일 제주 4·3사건 당시 억울하게 수감됐던 수형인 33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날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과 및 특별재심을 통한 명예 회복 등을 골자로 한 4·3사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 기간 적게는 1만4천 명, 많게는 3만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아픔은 73주년인 올해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허은실 시인과 고현주 사진작가는 '기억의 목소리'에서 사진과 시, 인터뷰를 통해 희생자들의 삶을 조명한다.

유족들이 간직한 유품 22점과 수장고 속 신원불명 희생자 유품 5점 등 27점의 사물을 중심으로 4·3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살핀다.

저자들은 쌀 포대로 안감을 댄 저고리, 사후 영혼결혼식을 치른 젊은 남녀의 영정 사진, 토벌대를 피해 산에서 지낼 때 밥해 먹은 그릇, '한국의 쉰들러'로 불린 아버지의 성경책 등 당시 제주 곳곳에서 말없이 참혹한 현장을 지켜봤던 사물들을 소개한다.
사물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학살의 순간에 대한 증언으로 이어진다.

윤만석(78)씨는 아버지가 집에 있던 멀구슬나무로 궤를 짜던 중 군인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목포형무소로 끌려가 내란죄로 형을 살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징집돼 다치고 돌아왔다고 말한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윤씨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7남매의 맏이로서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4·3을 겪은 사람들은 집안 자체가 풍비박산된다.

좌파나 우파나 할 것 없이 제주도에서는 너나없이 다 피해자"라고 강조한다.
책은 안순실(74)씨 시아주버니 내외의 영혼결혼식 사연도 전한다.

안씨는 4·3 당시 아버지와 함께 희생된 시숙이 어머니 꿈에 나타나 '내 일기장에 보면 뭐가 있다'고 말해 일기장을 찾아보니 시숙의 연애편지가 있었다고 한다.

안씨는 편지를 보낸 사람을 추적했지만, 그 집안도 4·3으로 몰살된 후라고 말한다.

이에 하나 남은 그 집안의 조카에게 사진을 받아 영정 사진으로 영혼결혼식을 올려주고 선산으로 모셔와 한 무덤에 합장했다고 덧붙인다.
8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삼 형제, 고모의 학살을 겪었다는 강중훈(80)씨는 저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은 그렇게 간단했다.

어머니가 재봉틀질해서 우리를 키웠는데 재봉틀 때문에 살았다"고 말한다.

강씨는 일본에서 장사할 때 아버지가 쓴 가계부 속 이름의 주인들에게 혹여 해가 될까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찢었다고 한다.

책은 "이토록 무자비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상상 가능치를 넘어서는 참혹 속에서도 끝끝내 살게 하는 삶이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또 "사소한 물건을 꺼내 봄으로써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 어머니 등을 소환해 조우한다.

70년 넘게 이 사물과 함께한 시간은 그렇게 스스로 상처를 걷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강조한다. 문학동네. 252쪽. 1만7천5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