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국민은행 '알뜰폰'…혁신 사업도 발목 잡는 노조

국민은행이 금융위원회 규제 특례를 통해 금융권에서 첫 삽을 뜬 알뜰폰(MVNO·가상이동통신사업자) 사업이 2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노조의 반발 때문에 일선 영업점으로 판매 채널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빅테크와 은행간 업권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혁신을 가로막는 노조의 행위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영업점 정식 개통 1% 뿐

30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이 은행의 알뜰폰인 '리브엠'(LiiV M)의 이용자 수는 이달 기준 9만3500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중 영업점을 통해 고객이 직접 가입한 경우는 전체 가입자의 1%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으로 본인 확인이 어려운 고객(신용카드 미소지자, 미성년자)의 리브엠 가입을 영업점에서 도와준 경우도 전체 가입자 중 10%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국민은행 관계자는 "전국 점포에 리브엠 전담 파트너 130명을 나눠 배치해 비대면 가입을 어려워하는 통신 취약 계층 위주로 지원하고 있다"며 "현재 은행 영업점을 통한 판매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가입자를 더 늘리고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리브엠은 2019년 4월 금융위가 포문을 연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1호 사업이자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통신 사업이다. 2019년 4월 서비스를 승인받아 같은해 12월 16일 사업을 정식으로 시작했다. 무제한 데이터와 최신 휴대폰 기종을 쓸 수 있으면서도 반값 요금제, 지인 할인 요금제, 비대면 셀프 개통 시스템, 무료 보험 서비스 등을 선보여 업계 주목을 모았다. 또 국민은행의 전용 유심을 탑재해 휴대폰을 통해 금융 업무 등을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새로운 시도로 평가됐다. 국민은행은 당초 2년간 1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모으는 것을 내부 목표로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개통은 목표의 10분의 1을 채 채우지 못했다. 약 10만명 중 국민은행 임직원 가입자가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당초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 셈이다. 은행 노조가 영엽점에서 리브엠 가입 권유를 하지 못하도록 극심하게 반대하고 있는 탓이다. 통신상품 권유가 영업점 채널로 적용될 경우 직원들의 업무가 과중해지고 실적 과당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노조 측 논리다.노조 측은 또 알뜰폰과 연계한 전용 금융상품을 판매하도록 종용하거나, 리브엠 권유 실적을 핵심평가지표(KPI)에 넣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단 은행 측은 실적 경쟁을 유도하거나 평가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대립 때문에 국민은행 노조는 서울 여의도 은행 본점 앞에 리브엠 판매와 관련한 반대 팻말을 거는 등 연중 시위를 벌여 왔다. 지난 22일에는 금융위 앞에서 리브엠 사업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가입자들은 저렴한 요금제와 금융 업무 편의성 등 장점에 만족하고 있다"면서도 "은행의 최대 강점인 영업점 판매 채널을 전혀 활용하고 있지 못하니 가입자를 더 늘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혁신 발목 잡다가 빅테크에 미래 빼앗겨"

은행은 이같은 부분 때문에 리브엠 사업이 규제 특례를 연장받지 못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금융규제샌드박스는 2년간 한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준 뒤, 심사를 통해 추가로 2년간 특례를 연장하는 형태다. 오는 4월로 예정된 재심사에서 사업을 추가 연장하지 못한다면 10만명에 가까운 통신 고객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노조가 '혁신 사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결국 제 '밥그릇'을 걷어차는 행위라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은행과 빅테크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타 업권 기업들이 금융권의 영역에 파고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도 금융상품 판매 등 기존의 사업을 벗어나 혁신을 하지 않으면 생존하기가 점점 어렵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국민은행이 통신쪽으로는 금융사 중 처음 진출한 것이고, 결과가 좋으면 다른 은행들도 추후 후발주자로 참여할 수 있는 만큼 관심이 많았다"며 "은행이 신사업을 통해 변신을 해야 하는 시대에 새로운 사업을 무조건 반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생존의 발판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