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ODA 30년] ① 최빈국에서 공여국 탈바꿈 1호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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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113개국에 6조6천583억 원 지원, ODA 세계 15위
인력 파견·초청 위주에서 개발협력 선도국으로 발돋움 정부의 개발협력 전문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4월 1일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한국은 1945년부터 공적개발원조(ODA) 주요 대상국이었고, 한국전쟁 후 1950년대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는 17억 달러로 당시 정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다.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기까지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빈국으로 국제사회 도움을 받던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첫 번째자 유일한 국가로 성장했다.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그 경험을 전하며 ODA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 '신흥공여국'에서 '선진공여국'으로 성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공적개발원조(ODA)를 '개도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해 지원되는 공적자금으로 상업·군사 목적의 지원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정의한다.
ODA를 포함한 여러 지원을 흔히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한다. 1950∼1960년대 국제사회 원조를 받던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비약적 경제성장 덕분에 1995년 세계은행의 유상차관 졸업국이 됐다.
사실상 ODA 수원 대상국에서 벗어난 것이다.
1996년에는 선진국 진입의 관문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고 1999년에는 원조를 받은 지 54년 만에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됐다. 2009년에는 OECD 산하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는 등 명실상부하게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
한국의 ODA 사업은 1963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원조계획과 자금지원으로 협력대상국 연수생을 초청해 훈련하는 '협력대상국 연수생 위탁훈련'에서 시작했다.
1980∼1990년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위상이 높아지자 책임 분담에 국제사회의 기대도 높아졌다.
이에 그동안 산발적으로 진행하던 개발협력 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대외원조 전담기관이 필요해졌고, 1991년 1월 '한국국제협력단법'이 공포되면서 같은 해 4월 1일 코이카가 설립됐다.
'한국국제협력단법'에 따르면 코이카는 설립목적에 대한민국과 개도국 간 우호 협력관계 구축과 상호교류를 증진하고 개도국의 빈곤 감소와 삶의 질 향상, 지속가능한 발전과 인도주의 실현을 위해 각종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코이카 전신인 한국해외개발공사 당시부터 근무한 김진오 사업기획전략실장은 "경제개발을 위해 국내 인력을 해외에 보내는 기관이었는데 ODA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명칭과 사업내용이 바뀌게 됐다"며 "당시에는 봉사단파견 사업 위주로 운영됐다"고 기억했다.
한국은 '신흥공여국'으로 미국·일본 등 '선진공여국'의 사례를 배우고 벤치마킹해왔다.
설립 당시 174억 원이던 ODA 규모가 지난해 9천722억 원으로 56배 늘었고 캐나다·아르헨티나 등에 6곳만을 뒀던 해외 사무소는 44곳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120개 협력국에 7개 협력기구는 183개국에 90개 기구로 늘었고 201명이던 인력도 563명으로 3배 가까이 불어났다.
초창기 주력사업은 '사람을 데려오고, 사람을 내보내는' 형태였다.
개도국 공무원을 초청하거나 직업훈련을 지원하고 전문가·청년 해외봉사단·의료단·태권도 사범을 파견했다.
현재는 국가별 협력 프로젝트 사업, 연수, 인도적 지원, 인재 양성, 혁신적 개발협력, 시민사회 협력, 국제질병퇴치기금 등 사업 유형도 다양화했다.
우리의 ODA 지원액은 OECD DAC 29개 회원국 가운데 15위에 해당한다.
DAC 회원국 공적원조 실적에 따르면 2019년 현재 한국은 유무상 통틀어 25억2천만 달러(약 1조9천553억 원)에 이른다.
DAC에 가입한 이래 지난 10년간 연평균 ODA 증가율이 11.9%로 회원국 1위를 지켰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0.3% 수준이다.
이는 최대 원조국인 미국의 346억 달러에 비하면 14분의 1 수준이다. ◇ 방한 연수 8만여 명…해외봉사 파견도 8만여 명
코이카는 30년간 개도국의 공공행정, 교육, 기술환경교육, 농림수산, 보건의료, 긴급구호 등에 다양한 물적·인적 자원을 지원했다.
2019년까지 113개국에 6조 6천583억 원을 투입했다.
아시아가 3조1천756억 원으로 전체 누적 지원금액의 39%를 차지했고, 이어 아프리카 1조5천664억 원, 중남미 8천773억 원, 중동 5천963억 원 순이다.
사업별로는 국가별 프로젝트에 3조3천455억 원을 들여 41%를 차지했고 이어 봉사단 파견 1조3천501억 원, 연수생 초청 7천37억 원, 개발컨설팅 4천605억 원, 국제기구 협력사업 4천24억 원, 무상원조 3천990억 원, 개발인식 증진 2천78억 원, 인도적 지원 1천128억 원, 전문가 파견 623억 원 순으로 집행됐다.
연수생 초청사업으로는 개도국의 정책 입안자, 공무원, 분야별 전문가 등을 국내에 초청해 우리나라의 개발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2021년 3월 말 현재 한국을 방문한 연수생은 모두 8만여 명으로 1991년 362명에 비해 221배 수준이다.
이 중 개도국 공공부문 종사자 초청 연수는 총 4천454명에 이르며 현재 23개 대학 42개 석사학위 과정에 780명의 연수생이 국내 대학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알제리 내무부 인사팀장으로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공공행정을 전공 중인 하카마 헬라프 씨는 "최근 ODA 공여국 초청으로 선진국의 경험을 배우려는 공무원이 늘고 있는데 인기 있는 유학국이 한국"이라며 "한국의 우수한 지방자치 행정 사례를 연구해 알제리에 도입하는 게 목표"라고 소개했다. 코이카 해외봉사단은 1991년 37명으로 시작했다.
1997년 7월 대학생 해외봉사단을 처음 파견했고, 2001년에는 IT(정보기술) 봉사단을 20개국에 보냈다.
해외봉사단 1기로 파푸아뉴기니에 파견됐던 성백주 씨는 "현지인들이 처음 보는 동양인이라 대화는 고사하고 경계만 하길래 그냥 곡괭이를 들고 밭으로 가서 농사짓는 방법부터 시연했더니 점차 농민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며 "일본 등 선진국은 자동차와 물품 등 물적 지원도 같이했는데 우리는 그럴 형편이 아니라서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성 씨는 덕분에 봉사활동은 일방적으로 퍼주는 게 아니라 나누고 섬기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고 회상했다.
2009년 정부는 해외 봉사단을 '월드 프렌즈 코리아'라는 단일 브랜드로 만들었고 예산 등 집행을 코이카로 통합했다.
코이카는 강원도 영월에 월드 프렌즈 영월교육원을 개원해 파견 통합교육을 시작해 장단기 파견을 보내게 됐고 2013년 파견 봉사자가 누적 1만 명을 돌파해 현재 8만여 명에 이른다.
2016년 시작된 글로벌 협력 의사 프로그램에는 우리나라 의사 총 29명이 참여해 개발도상국에서 현지 의료인력의 역량 강화와 의료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코이카는 올해부터 해외 봉사단 운영과 개도국 인사 초청 연수에도 온라인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조기 귀국한 봉사단원들이 온라인을 활용해 28개국에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봉사를 마무리했다.
개도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국내 초청 연수도 디지털 수업으로 대체해 43개국에서 1천450명이 교육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디지털을 활용한 원격 봉사와 연수 대상·분야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코이카는 또 2007년 아프리카 지역의 빈곤과 질병 퇴치를 위해 국제선 출국 항공권 1매당 1천 원의 '국제 빈곤퇴치 기여금 제도' 위탁기관이 돼 개발 재원 마련에도 앞장서고 있다.
/연합뉴스
인력 파견·초청 위주에서 개발협력 선도국으로 발돋움 정부의 개발협력 전문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4월 1일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한국은 1945년부터 공적개발원조(ODA) 주요 대상국이었고, 한국전쟁 후 1950년대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는 17억 달러로 당시 정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다.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기까지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빈국으로 국제사회 도움을 받던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첫 번째자 유일한 국가로 성장했다.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그 경험을 전하며 ODA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 '신흥공여국'에서 '선진공여국'으로 성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공적개발원조(ODA)를 '개도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해 지원되는 공적자금으로 상업·군사 목적의 지원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정의한다.
ODA를 포함한 여러 지원을 흔히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한다. 1950∼1960년대 국제사회 원조를 받던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비약적 경제성장 덕분에 1995년 세계은행의 유상차관 졸업국이 됐다.
사실상 ODA 수원 대상국에서 벗어난 것이다.
1996년에는 선진국 진입의 관문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고 1999년에는 원조를 받은 지 54년 만에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됐다. 2009년에는 OECD 산하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는 등 명실상부하게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
한국의 ODA 사업은 1963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원조계획과 자금지원으로 협력대상국 연수생을 초청해 훈련하는 '협력대상국 연수생 위탁훈련'에서 시작했다.
1980∼1990년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위상이 높아지자 책임 분담에 국제사회의 기대도 높아졌다.
이에 그동안 산발적으로 진행하던 개발협력 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대외원조 전담기관이 필요해졌고, 1991년 1월 '한국국제협력단법'이 공포되면서 같은 해 4월 1일 코이카가 설립됐다.
'한국국제협력단법'에 따르면 코이카는 설립목적에 대한민국과 개도국 간 우호 협력관계 구축과 상호교류를 증진하고 개도국의 빈곤 감소와 삶의 질 향상, 지속가능한 발전과 인도주의 실현을 위해 각종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코이카 전신인 한국해외개발공사 당시부터 근무한 김진오 사업기획전략실장은 "경제개발을 위해 국내 인력을 해외에 보내는 기관이었는데 ODA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명칭과 사업내용이 바뀌게 됐다"며 "당시에는 봉사단파견 사업 위주로 운영됐다"고 기억했다.
한국은 '신흥공여국'으로 미국·일본 등 '선진공여국'의 사례를 배우고 벤치마킹해왔다.
설립 당시 174억 원이던 ODA 규모가 지난해 9천722억 원으로 56배 늘었고 캐나다·아르헨티나 등에 6곳만을 뒀던 해외 사무소는 44곳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120개 협력국에 7개 협력기구는 183개국에 90개 기구로 늘었고 201명이던 인력도 563명으로 3배 가까이 불어났다.
초창기 주력사업은 '사람을 데려오고, 사람을 내보내는' 형태였다.
개도국 공무원을 초청하거나 직업훈련을 지원하고 전문가·청년 해외봉사단·의료단·태권도 사범을 파견했다.
현재는 국가별 협력 프로젝트 사업, 연수, 인도적 지원, 인재 양성, 혁신적 개발협력, 시민사회 협력, 국제질병퇴치기금 등 사업 유형도 다양화했다.
우리의 ODA 지원액은 OECD DAC 29개 회원국 가운데 15위에 해당한다.
DAC 회원국 공적원조 실적에 따르면 2019년 현재 한국은 유무상 통틀어 25억2천만 달러(약 1조9천553억 원)에 이른다.
DAC에 가입한 이래 지난 10년간 연평균 ODA 증가율이 11.9%로 회원국 1위를 지켰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0.3% 수준이다.
이는 최대 원조국인 미국의 346억 달러에 비하면 14분의 1 수준이다. ◇ 방한 연수 8만여 명…해외봉사 파견도 8만여 명
코이카는 30년간 개도국의 공공행정, 교육, 기술환경교육, 농림수산, 보건의료, 긴급구호 등에 다양한 물적·인적 자원을 지원했다.
2019년까지 113개국에 6조 6천583억 원을 투입했다.
아시아가 3조1천756억 원으로 전체 누적 지원금액의 39%를 차지했고, 이어 아프리카 1조5천664억 원, 중남미 8천773억 원, 중동 5천963억 원 순이다.
사업별로는 국가별 프로젝트에 3조3천455억 원을 들여 41%를 차지했고 이어 봉사단 파견 1조3천501억 원, 연수생 초청 7천37억 원, 개발컨설팅 4천605억 원, 국제기구 협력사업 4천24억 원, 무상원조 3천990억 원, 개발인식 증진 2천78억 원, 인도적 지원 1천128억 원, 전문가 파견 623억 원 순으로 집행됐다.
연수생 초청사업으로는 개도국의 정책 입안자, 공무원, 분야별 전문가 등을 국내에 초청해 우리나라의 개발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2021년 3월 말 현재 한국을 방문한 연수생은 모두 8만여 명으로 1991년 362명에 비해 221배 수준이다.
이 중 개도국 공공부문 종사자 초청 연수는 총 4천454명에 이르며 현재 23개 대학 42개 석사학위 과정에 780명의 연수생이 국내 대학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알제리 내무부 인사팀장으로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공공행정을 전공 중인 하카마 헬라프 씨는 "최근 ODA 공여국 초청으로 선진국의 경험을 배우려는 공무원이 늘고 있는데 인기 있는 유학국이 한국"이라며 "한국의 우수한 지방자치 행정 사례를 연구해 알제리에 도입하는 게 목표"라고 소개했다. 코이카 해외봉사단은 1991년 37명으로 시작했다.
1997년 7월 대학생 해외봉사단을 처음 파견했고, 2001년에는 IT(정보기술) 봉사단을 20개국에 보냈다.
해외봉사단 1기로 파푸아뉴기니에 파견됐던 성백주 씨는 "현지인들이 처음 보는 동양인이라 대화는 고사하고 경계만 하길래 그냥 곡괭이를 들고 밭으로 가서 농사짓는 방법부터 시연했더니 점차 농민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며 "일본 등 선진국은 자동차와 물품 등 물적 지원도 같이했는데 우리는 그럴 형편이 아니라서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성 씨는 덕분에 봉사활동은 일방적으로 퍼주는 게 아니라 나누고 섬기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고 회상했다.
2009년 정부는 해외 봉사단을 '월드 프렌즈 코리아'라는 단일 브랜드로 만들었고 예산 등 집행을 코이카로 통합했다.
코이카는 강원도 영월에 월드 프렌즈 영월교육원을 개원해 파견 통합교육을 시작해 장단기 파견을 보내게 됐고 2013년 파견 봉사자가 누적 1만 명을 돌파해 현재 8만여 명에 이른다.
2016년 시작된 글로벌 협력 의사 프로그램에는 우리나라 의사 총 29명이 참여해 개발도상국에서 현지 의료인력의 역량 강화와 의료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코이카는 올해부터 해외 봉사단 운영과 개도국 인사 초청 연수에도 온라인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조기 귀국한 봉사단원들이 온라인을 활용해 28개국에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봉사를 마무리했다.
개도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국내 초청 연수도 디지털 수업으로 대체해 43개국에서 1천450명이 교육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디지털을 활용한 원격 봉사와 연수 대상·분야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코이카는 또 2007년 아프리카 지역의 빈곤과 질병 퇴치를 위해 국제선 출국 항공권 1매당 1천 원의 '국제 빈곤퇴치 기여금 제도' 위탁기관이 돼 개발 재원 마련에도 앞장서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