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발레단 김기민 내한 무산…2주 자가격리 면제 불발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주역 대체 캐스팅 발표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인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29)의 내한이 결국 무산됐다. 2주 자가격리 면제가 불발돼 다음 달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국립발레단은 지난달 9일 김기민과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 올가 스미르노바(30)를 '라 바야데르'의 남녀 주인공으로 초청한다고 공식 발표를 했지만, 공연 시작 한 달을 앞둔 31일 캐스팅 취소 사실을 공지했다.

국립발레단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계속되고 두 무용수의 자가격리 또한 불가피하게 돼 연습 기간 등 공연 진행에 차질이 생겨 김기민과 올가 스미르노바 (초청) 취소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김기민과 올가 스미르노바는 원래 4월 29일과 5월 1일 '라 바야데르'의 남녀 주인공 '솔로르'와 '니키아' 역으로 두 차례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국립발레단은 이들을 대신해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신승원·허서명(4월 29일)과 김리회·박종석(5월 1일)이 한 차례씩 더 무대에 오른다고 대체 캐스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18년 11월 '돈키호테' 공연 이후 약 2년 반 만에 국내 무대에서 김기민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발레 팬들은 실망하고 있다. 김기민은 2011년 마린스키 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로 입단했다.

입단 두 달 만에 주역으로 발탁됐고, 2015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2016년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고 남성 무용수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무용수로서 활약하고 있다. 김기민은 지난해 10월 마린스키 발레단과 내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 무대도 성사되지 못했다.

올해 역시 김기민을 국내 무대에서 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립발레단은 "캐스팅 변경 회차에 한해 취소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겸 예술감독도 "캐스팅 변경에 따른 관객들의 실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더욱 완벽한 무대로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발레계에서는 이미 올가 스미르노바의 러시아 공연 일정 등을 근거로 이들의 내한이 취소될 거라는 예상이 있었다.

올가 스미르노바 공식 홈페이지엔 다음 달 22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리는 '아나스타샤, 끔찍한 이반' 공연에 아나스타샤 역으로 출연한다고 나와 있다.

발레계는 전막 발레의 특성상 무용수가 2주의 자가격리를 하고 무대에 오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당사자의 몸이 굳을 뿐만 아니라 다른 출연진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문제 등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팬들은 비판의 화살을 국립발레단에 돌리고 있다.

국립발레단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무용수의 상황과 여러 여건을 살펴 확실한 내용을 토대로 캐스팅 등을 진행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국립발레단의 업무 처리를 지적하는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10일 주역 캐스팅을 공지하며 "추후 불가피하게 캐스팅 변경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지만, 자가격리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번 논란의 내막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측에서는 처음부터 특정 무용수의 2주 자가격리 면제는 어렵다는 입장이 확고했다"며 "국립발레단이 4월이 되면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고 기다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건강을 위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격리기간 단축이 입법화되지 않는 이상 일부 예술인에게만 자가격리를 면제하거나 기간을 줄여줄 근거가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 26일 자가격리 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감염병예방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이 시행령이 통과되면 질병관리청장이 최대잠복기 내에서 자가격리 일수를 정할 수 있는데, 자가격리 대상자가 일괄적으로 2주 자가격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김기민의 경우 시간이 촉박해 개정 시행령을 적용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다음 달 15일까지 이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받은 뒤, 국무회의 상정·의결 등 절차를 거쳐 시행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