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범죄' 거론도 안된 TV토론…"보궐선거 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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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지난 30일 KBS에서는 서울시장 후보 2차 TV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함께 이수봉 민생당 후보 간 3자 공방이 펼쳐졌다.
두차례 토론서 주제에 안 올라
피해자에 2차 가해 이어지는데
후보 입장·방지대책 알 수 없어
조미현 정치부 기자
대한민국 수도에서 전임 시장의 성범죄 의혹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인데도 토론에서는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원인과 대책은 주제에 오르지 않았다.사회자의 첫 번째 공통 질문은 ‘서울시장 임기는 1년으로 임기가 짧은 만큼 최우선으로 추진할 정책이 무엇인가’였다. 이어진 두 번째 질문은 ‘주거 안정 대책이 무엇인지’였다.
후보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주도권 토론에서도 권력형 성범죄는 주제에서 빠졌다. 주도권 토론의 첫 주제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로 인해 문제가 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박 후보가 오 후보의 내곡동 땅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에 대한 후보들의 제대로 된 답변은 듣지도 못했다. 사회자는 박 후보에게 “가급적 본인 발언 시간 1분을 지켜 달라”고만 했을 뿐 주제에서 벗어난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다음 주제는 ‘저출산 해법’이었다. 사회자는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64명으로 불명예스럽게도 전국 꼴찌”라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저출산 위기를 극복할 해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어 ‘노인·청년 일자리정책’ ‘코로나19 지원책’ ‘육아·보육 대책’ 순이었다. 29일 MBC에서 열린 첫 토론 상황도 비슷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서울 시민이라면 권력형 성범죄 대책에 대한 서울시장 후보 의견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시민인 기자는 박 후보에게는 같은 당 출신에다 친(親)여성을 주창해온 박원순 전 시장이 왜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는지 묻고 싶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저지른 여당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게 놔두는 이유 역시 궁금하다. 남인순·고민정·진선미 등 민주당 여성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 초기 ‘피해호소인’이란 단어를 창조했고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박 전 시장 사건을 ‘소모적 페미니즘 논쟁’이라고 주장했다.
오 후보에게는 서울시장을 지낸 인사로서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한 서울시 조직의 구조적 문제가 무엇이고, 오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재발 우려는 없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하지만 두 차례 TV 토론에선 이에 대한 후보 주장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문구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일반 선거인이 선거 실시 사유를 잘 알고 있는 게 이번 보궐선거의 특수성”이라고 위반 근거를 밝혔다. 이미 국민이 다 아는데 묻는 것으로, 투표 행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위법이란 것이다. 정말 말문이 막히는 일이다.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