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쏟아지는 빛을 바라보다…봄을 닮은 화가, 모네[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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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빛의 경이로움을 화폭에 담아낸 프랑스 출신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작품도 떠오르곤 합니다. 모네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응시하고, 그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그렸습니다. 화사하고 부드러운 화풍 덕분에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등과 함께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가로도 손꼽히죠. 관련 전시도 자주 열립니다. 제주에서도 디지털 전시 '모네, 르누아르…샤갈'전이 오는 23일 개막합니다.
모네는 식료품 장사를 하는 아버지와 가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해진 틀에 맞춰 행동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감옥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죠. 그런 모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15살 때부터 공부 대신 인물 캐리커처를 그렸습니다. 뛰어난 실력 덕분에 주변에서 돈을 주며 작품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18살이 되던 해, 그는 풍경화가 외젠 부댕을 스승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부댕은 모네의 예술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모네는 그로부터 새로운 작업 방식을 배웠는데요. 화실을 실내가 아닌 자연으로 옮기는 것이었죠. 이전엔 화가들이 풍경화를 그리더라도, 야외에서 스케치만 간단히 하고 색칠은 화실로 들어와 했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에 풍경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분리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작품엔 실제 풍경이 고스란히 담기지 않고, 작가의 기억 속에 있는 풍경이 그려졌습니다. 모네는 이런 관습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빛과 자연을 실시간 바라보며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후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요한 바르톨드 용킨트를 만나 순간의 빛을 포착해 빠르게 그리는 법도 배웠죠. 그리고 마침내 모네는 그만의 방식으로 빛을 화폭에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이 작품을 본 저널리스트 루이 르루아는 '그리다 만 것 같다'는 의미로 "인상밖에 없는 그림"이라고 비난했는데요. 여기서 '인상파'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미술사에 길이 남은 단어가 신랄한 비판과 조롱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이 조롱들을 견뎌내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자만이 비주류에서 주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수련' 연작인데요. 모네는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수련 연작을 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정원도 직접 만들어 20년 넘게 수련을 그렸죠. 그 수는 250여 점에 달합니다. 최근 공개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소장품에도 모네의 '수련'이 포함돼 화제가 됐습니다. 모네는 오랜 세월 빛을 바라보며 작업을 한 탓에, 시력이 나빠져 결국 백내장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반복과 변주 속에서 작지만 새로운 한 걸음을 떼었을 때 비로소 탄생한다고 하죠. 모네 또한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극한의 노력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네는 다른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접목하기도 했습니다. 모네를 비롯해 인상파 화가들은 일본의 '우키요에'의 매력에 빠졌는데요. 우키요에는 화려하면서도 단순한 구성의 일본 풍속화를 가리킵니다. 목판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량 생산됐고, 당시 유럽에 수입된 도자기의 포장지로도 활용됐습니다. 이를 발견한 인상파 화가들은 이색적인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우키요에가 일본 작품이라서 관심을 가졌다기보다, 동양의 미술 자체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인상파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화가들에 비해 인상파 화가의 이름을 쉽게 떠올리곤 하는데요. 모네 뿐 아니라 그와 이름이 비슷한 에두아르 마네, 폴 세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이름을 잘 알고 기억하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히트 메이커스>의 저자 데릭 톰슨은 이들의 뒤에 있었던 구스타브 카유보트라는 인물에 주목합니다. 카유보트도 인상파 화가였는데요. 그는 군수 사업을 했던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카유보트는 부를 활용해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보다, 동료 인상파 화가들을 도왔습니다. 그들의 밀린 화실 임대료를 내주고 작품도 사줬죠.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작품만 일부러 골라 사들이는 '최후의 구매자' 역할도 자처했습니다. 그 수도 많았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인상파 작품의 90%가 카유보트의 기증품일 정도입니다. 모네처럼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예술가,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발견하고 돕는 든든한 후원자. 이들이 있기에 예술은 발전할 수 있고, 또 영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