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코로나 피해 중소 사업자에 금융지원 더 해야 하나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을 향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로 신용등급이 떨어진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업무에서 신용도를 깎지 말라고 요구했다. 쉽게 말해 매출이 줄거나 이익이 급감해 신용도(평가)가 떨어져도 대출을 계속 해주고 기존 빚도 회수하지 말라는 요구다. 이런 지침은 금융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위원회가 은행장들을 불러 모은 ‘간담회’에서 전해졌다. 금융위원장은 “불가피하게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한도, 금리 등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은행은 부실 사업자에 계속 자금을 빌려주고 금리도 올리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관치금융은 늘 말은 우아하고 그럴듯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런 것도 하나의 한국적 전통이다. 문제는 가계든 기업이든 신용평가는 금융업계 자율 사항이라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신용평가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없다. 어떤 대상에, 얼마만큼, 어느 정도 금리로 빌려줄 것인가가 금융업의 핵심인데 이 모든 게 신용평가에 달려 있다. 금융업 본질에 정부가 개입한 것이다. 물론 코로나 쇼크라는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큰 요인이다. 하지만 금융업계 자율로 판단할 신용업무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데 비판이 적지 않다.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돼 부실한 사업자에게도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계속 자금을 빌려주라는 정부 개입은 정당한가. 예금자는 이에 동의할까.

[찬성] '블랙 스완'처럼 닥친 위기 다소 무리해도 지원해줘야

코로나 쇼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례적 상황이다. 이런 위기에서 웬만한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는 견디기 어렵다. 여행과 이벤트, 외식과 숙박업 등을 비롯해 여러 산업 분야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졌다. 대형 항공사나 여행사만이 아니다. 식당이나 커피점 등 수많은 서비스 사업자가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코로나 위기’는 특정 분야의 산업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다. 한국만의 애로도 물론 아니다. 서로 맞물린 채 돌아가는 경제가 어느 날 정지되고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산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이런 상황은 누구도 예상 못한 것이었다. 초대형 여행 항공사들이 도산 위기에 처해 정부 지원을 받았고, 수많은 식당업 등은 아직도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한계 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그렇게 행해졌다. 위기의 사업자들 가운데는 스스로의 경영 부실 때문에 벼랑으로 몰린 곳도 있겠지만, ‘블랙 스완’처럼 이례적으로 닥친 충격적 상황으로 인해 갑자기 궁지에 몰린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자는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그러자면 지원 방식도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기존 방식으로는 지원에 한계가 있다. 확실하게 도움이 될 정도로 제대로 지원해줘야 한다. 그래야 재기가 가능해진다.

없는 기업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할 상황이다. 정부의 창업 정책도 그런 것 아닌가. 기업과 사업자를 새로 만들어내고 육성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사업체가 지속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지원 비용도 적게 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기존의 사업체에 대한 지원을 극대화하는 게 맞다. 금융지원뿐 아니라 세금 감면도 못할 이유가 없다.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 등을 통해 특례보증을 확대하고, 한계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신용평가의 기준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반대] 금융의 자율성과 건전성도 봐야 통상적 구조조정까지 막아선 안돼

코로나로 인한 충격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더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금융감독 당국이 이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지원을 늘려 가는 것은 필요하다. 자영업자들은 부실이 확대되고 빚도 늘어났을 것이다. 이 위기가 바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부채가 과도한 고위험 자영업 가구가 2020년 3월 10만9000곳에서 12월에는 19만2000곳으로 늘어났다.그렇다고 모든 한계사업자를 다 끌고 갈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부실을 키우면 나중에는 커진 부실을 어떻게 감당하나. 종래에는 대출 은행을 비롯해 금융권 전체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나라 경제가 총체적으로 뒤흔들렸던 1997년 외환위기가 바로 그런 경제난이었다. 부실을 덮고 키우는 게 위기의 사업자 당사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해 부실을 키우면 나중에는 재기가 어려울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앞서 금융감독 당국이 대출 회수 등에서 유예 조치를 이미 했던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 충격에도 어음부도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코로나 충격을 이유로 정부가 대출 환수를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이미 문을 닫아야 할 사업자나 한계 상황에 몰린 중소기업까지 다 살려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지금도 옥석(玉石) 구분을 않겠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나. 부실 처리, 구조조정 등 모든 악역을 다음 정부에 넘기겠다는 심산인가.

사업자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있다. 금융의 작동원리는 수익을 좇아가면서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래야 금융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장기 발전할 수 있다. 부실의 정도를 파악해 심한 곳은 우선 힘들어도 정리해야 한다. 은행 등 금융회사에 맡기면 알아서 해낸다. 감독당국은 부실 사업자 무작정 감싸기에 나설 게 아니라, 금융회사가 고유의 업무를 해나가도록 독려하는 게 중요하다.

√ 생각하기 - 금융산업 경쟁력 유지도 중요…'한시적 별도 대출기준'도 생각해볼 만

또 다른 형태의 관치금융이 문제가 되고 있다. 금융회사 고유의 핵심 업무에 금융감독 당국이 개입하면서 비롯된 논란이다. 코로나 쇼크로 인한 어려움을 외면한 채 대출금을 무조건 회수하라는 것도 능사는 아니지만, 당장 어려우니 계속 자금을 빌려주라는 것도 무책임하다.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시한을 정해놓고 대출심사를 일시 유예하거나 중소 개인 사업자에 대한 신용평가 방식을 달리하면서 그 기준을 완화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계 산업이나 ‘좀비 기업’까지 껴안고 가는 게 당장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처리해야 할 부실이고, 미룰수록 어려움이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상처를 치료하면서 가야 새살이 돋듯이 한계 사업자를 정리해야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새 기업도 나올 수 있다. 대출 심사나 집행 등은 은행의 고유 업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은행 경영의 기본 원칙을 훼손해서 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버리면 금융의 선진화는 요원해진다. ‘저신용 고금리, 고신용 저금리’라는 만국 불변의 금융 원리도 지켜져야 한다. 부실기업을 자연스럽게 떨어내는 구조조정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지도 관심사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