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사퇴 후 첫 공개일정서 함구…무언 속 메시지는

선거법상 사전투표소 인근서 투표독려 금지조항 고려한 듯
'사실상 국힘 지원' 해석 속 당분간 정치권과 거리두기 전망
사퇴 후 첫 공개 일정에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윤 전 총장은 2일 오전 부친인 윤기중(90) 연세대 명예교수와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했다.

지난달 4일 총장직에서 사퇴한 지 29일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만큼 정치권의 시선은 그의 입에 쏠렸다.

윤 전 총장은 차기 대권 주자 지지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정국의 분수령이 될 이번 선거에 참여하며 내놓는 정치적 메시지의 무게감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관심을 뒤로 한 채 윤 전 총장은 "아버님께서 기력이 전 같지 않으셔서 모시고 왔습니다"라고만 말하고 투표소를 떠났다.

사전투표를 한 소감을 비롯해 '첫 공개 행보를 사전투표로 선택한 이유', '국민의힘 입당 의향' 등을 묻는 말에는 일절 답하지 않았다. 당장은 공직선거법상 별도의 메시지를 내놓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 있다.

공직선거법 58조2항은 사전투표소 또는 투표소로부터 100m 안에서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정치적 발언을 하기에는 때가 이르다고 봤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윤 전 총장의 지인은 통화에서 "공개적 활동을 삼간 채 아직은 생각을 정리 중일 것"이라면서 투표 현장에서 메시지를 내기에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말을 아낀 것과 달리 이날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모습이 공개된 자체가 모종의 메시지라는 견해도 있다.

윤 전 총장은 한 달 전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사퇴의 변을 밝힐 때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현 정권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윤 전 총장의 투표 행위는 결국 정권심판론을 들고나온 국민의힘에 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아울러 여론조사 상의 우위를 득표율로 이어가고자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상황에서 이날 투표는 야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사전투표 후 기자들과 만나 "(윤 전 총장의) 투표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투표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에 앞서 기자들에게 "윤 전 총장이 사전투표한다는 자체에 커다란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재·보선 후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하면 야권 재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부각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분분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윤 전 총장은 다시 공개 행보를 자제한 채 정치권과 거리두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대선 당시 준비 부족으로 조기에 낙마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례를 거울삼아 구상을 가다듬으며 본격적인 정치활동의 시기를 저울질할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