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자전거, ‘진정성’ 마케팅

‘돈 되는’ 전기자전거 올인 않고 일반 자전거도 공들여
전국 1400여개 대리점들에 상생을 위한 진정성 보여
매년 110개 이상 신제품 내놔 고객 니즈 충족
영어 ‘사이클’(cycle)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자전거, 다른 하나는 주기다. 자전거 판매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주기가 있다. 그래서 ‘사이클(자전거 판매)이 사이클(주기)을 탄다’고 할 수 있다.

2012~2016년엔 한강에 나가면 자전거 탈 자리가 없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당시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자전거 업계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자전거 회사 매출은 2016년말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었다.자전거 업계에선 대략 5년 주기로 성장과 쇠퇴가 반복된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지난해 코로나19로 자전거가 비대면 이동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업계의 예상보다 일찍 호황이 시작됐다.

국내 1위 자전거 회사인 삼천리자전거는 지난해 매출 1200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38.7%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109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키움증권은 올해 삼천리자전거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자전거 시장에서 점유율 45%(아동용 90%)를 기록중인 삼천리자전거의 성공 마케팅 비결을 알아보자.

상황 1 “전기자전거가 돈 된다”
도전 1 ‘진정성 마케팅’으로 승부

자전거 업계에선 전기자전거가 ‘돈 되는’ 상품으로 통한다. 단가가 비싸서 마진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삼천리자전거도 지난해 전기자전거 판매가 전년 대비 104% 증가하며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다. 그러나 전기자전거에 사실상 ‘올인’하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일반 자전거와 어린이 자전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삼천리자전거 송치정 계장은 “일반 자전거는 지방 소도시나 농촌 지역 소비자들처럼 자전거 구매에 많은 돈을 쓸 수 없는 고객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 회사 마저 발을 빼면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느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반 자전거 개발과 생산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린이 자전거는 안전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손이 작고 힘이 약한 어린이도 어려움 없이 브레이크를 조작할 수 있도록 브레이크 레버와 핸들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또 쉽게 파손되지 않고 파손되더라도 큰 부상을 막을 수 있게 연성 재질의 바구니를 장착했다.

송 계장은 “KS인증을 훨씬 넘는 자체 기준을 마련해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다”며 “한 때 위협이 됐던 중국산 저가 자전거, 그 중에서도 어린이 자전거는 딱 보면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삼천리자전거를 선호한다”고 전했다.그는 “삼천리자전거를 공공재를 만드는 공공기업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며 “1등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라서 ‘진정성’을 다해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 2 “브랜드 이미지 촌스럽다?”
도전 2 “대리점과 상생해야 한다”

삼천리자전거는 전국 대리점 수가 1400여개에 달한다. 대리점주들 중엔 수 십년간 대리점을 운영해 나이가 많은 사람이 꽤 있다. 일각에선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 온라인 판매에 익숙하지 않으신 대리점주들이 많다”며 “최신 판매 트렌드를 따라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삼천리자전거 경영진은 “오랫동안 우리 회사를 성장시켜준 분들인데 그런 이유로 대리점 계약을 해지해선 안 된다”며 대리점주 존중 입장을 분명히했다. 더 나아가 “영업이익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제품을 싸게 공급하고 판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대리점들이 불황에도 버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대리점과의 상생을 강조했다. 사업 동반자로서 대리점주들을 ‘진정성’있게 대하는 것이다.

삼천리자전거 공식 온라인스토어 ‘삼바몰’도 대리점과의 상생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삼바몰은 자전거 업계 최초로 ‘프리미엄 배송 및 픽업 서비스’를 선보였다. 자전거 전문가가 고객이 선택한 수령지로 제품을 완전 조립해 배달하거나, 고객이 원하는 일정에 지정한 대리점에서 제품을 받아갈 수 있다.

송치정 계장은 “삼바몰은 대리점과의 상생을 위한 사이트”라며 “삼바몰은 온라인 판매가 대리점과 연계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후, 대리점들을 대신해 자전거를 판매하고 그로 인한 수익을 대리점과 나눈다”고 설명했다.

전기자전거에 익숙치 않은 대리점주들을 위한 교육도 실시한다. 경기도 의왕시 삼천리자전거 연구소에서 겨울철 비수기 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봄·가을엔 본사 AS 담당자가 전국 대리점을 찾아가 교육하기도 한다.

상황 3 퍼스널 모빌리티 대중화
도전 3 “고객의 모든 니즈를 충족시키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퍼스널 모빌리티 트렌드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전기자전거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해 삼천리자전거는 지난해 전기자전거 라인업을 15종으로 대폭 확대했다.

올해는 전기자전거 브랜드 ‘팬텀’ 라인업에 오토바이처럼 레버를 돌리는 ‘스로틀’방식을 확대 적용했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스로틀 방식의 전기자전거가 자전거 도로를 주행할 수 있게 된 점을 감안했다.

송치정 계장은 “전기자전거에선 국내 업체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전기자전거는 AS가 중요한데 대리점 수나 교육수준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퍼스널 모빌리티가 이동 수단을 넘어 짐을 나르는 목적으로 확대되는데 맞춰 전동스쿠터와 삼륜 전기자전거 라인업도 다양화하고 있다. 전동스쿠터는 배달, 장보기 등의 수요를 겨냥했다. 기존 삼륜자전거에 전기구동장치를 추가한 삼륜 전기자전거는 많은 짐을 싣고 이동할 수 있다.

송 계장은 “매년 110개 이상의 신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어린이용 세발자전거부터 선수를 위한 퍼포먼스 자전거까지 모든 라인업을 갖췄다”며 “이를 통해 고객의 모든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삼천리자전거는 B2C 고객인 소비자를 대상으론 ‘진정성 마케팅’, B2B 고객인 대리점주들에겐 ‘진정성 있는 상생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그런 진정성 덕분에 불황기엔 적자폭이 크지 않고, 호황기엔 매출 성장성이 더 커지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게 회사측 판단이다.

자사 제품만 바라보는 고객들을 위해 마진이 낮은 제품이라도 소홀히 다루지 않고, 오랜기간 함께 한 사업의 동반자들을 배려한 덕분에 불황을 더 잘 견디고 호황에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삼천리자전거가 ‘진정성을 인정받으면 사업 성과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이치를 증명하는 듯하다.

장경영 선임기자 longrun@hankyung.com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어떤 사람의 내면적 생각과 외부로 표출되는 행동의 차이가 작을수록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진정성’을 느낀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다. 기업의 마케팅 활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브랜드가 (1)외부로 내세우는 가치와 (2)소비자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가치의 차이가 작을수록 진정성 높은 브랜드로 인식된다. 즉 진정성(Authenticity)의 핵심은 ‘진실성, 정직함, 믿을 수 있음, 가공되지 않음’ 등이다.

최근 진정성 마케팅(Authentic Marketing)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요즘 가짜, 혹은 진실성 없는 마케팅 활동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매체의 등장과 빅데이터, AI 기술 등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마케팅 메시지는 때로는 소비자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진정성 마케팅’은 이 때 다소 투박해 보일지라도 소비자에게 진실한, 가공되지 않은 마케팅 활동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진정성 마케팅의 원조(?)로 AVIS 렌터카 사례를 들 수 있다. 1962년 당시 렌터카 업계 2위였던 AVIS는 1위 업체인 Hertz를 따라잡기 위해 다음과 같은 광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Avis is only No.2 in rent a cars. So why go with us? We try harder. (Avis는 렌터카 업계 2위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이용하냐구요? 우리는 더 열심히 합니다.)” 자사의 단점을 솔직히 인정하는 이 광고 메시지로 인해 당시 320만 달러 손실을 손실을 기록하던 AVIS는 1년도 안 되어 120만 달러 이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하였다.

최근에는 LUSH, Kiehl’s, 무인양품 등이 대표적인 진정성 마케팅 브랜드로 꼽힌다. 예를 들어, 생활용품 회사인 LUSH는 자연, 가공되지 않는, 천연 재료라는 ‘자연성 진정성(natural authenticity)’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전달한다. 마치 시장에서 신선 식품을 고르듯이 날 것의 제품을 직접 체험하며 고르는 방식은 LUSH만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다. 신문지에 대충 싸서 주는 듯한 투박한 포장 역시 오직 제품에만 집중하는 LUSH만의 진정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삼천리자전거 역시 어쩌면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일반 자전거, 어린이 자전거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생산을 통해 기업의 진정성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리점주와의 상생 프로젝트 역시 국내 대표 자전거 브랜드로서의 정통성과 대표성, 그리고 ‘상생’이라는 사회적 대의를 추구하는 ‘영향력 진정성(influence authenticity)’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 진정성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에게 진정성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아무리 진정성을 호소해도 소비자, 그리고 기업의 외부인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 때 많은 마케팅 연구자들은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 과정, 혹은 소비 과정에서 기업이 제시하는 진정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단서를 적극적으로 제시할 것을 추천한다. 또한 마케터들은 우리 브랜드의 진정성을 구체적으로 어떤 차원(ex. 자연성, 독창성, 특별함, 연관성, 영향력:『진정성의 힘(Authenticity: what consumers really want』, 길모어, 파인2세 저서 참고)에서 어필할 것인 것인지 등을 사전에 계획해야 한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삼천리자전거는 소비자와 대리점주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진정성은 상대방이 이 회사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갖게 만든다. 그 결과 불황기엔 적자폭이 크지 않고 호황기엔 매출이 더 늘어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진정성이 소비자와 대리점주들로부터 인정받아 좋은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하니 모범적인 사례로 꼽을만하다.

다만 이 사례를 참고하려는 마케터들은 소비자의 ‘양가감정’(ambivalence)을 눈여겨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여기는 브랜드이더라도 소비자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상반된 감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양가감정은 어느 대상에 대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 공존하는 것을 가리킨다. 흡연을 예로 들어보자. 예전보다 흡연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려워졌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흡연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애연가들은 담배를 피우면 정서적 안정감을 생기고 흡연 공간에서 사회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흡연의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면서도 흡연의 유해성과 흡연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염려한다. 흡연에 대해 긍정적 태도와 부정적 태도를 동시에 보이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양가태도’라고 한다.

소비자도 기업과 브랜드에 대해 양가태도를 갖기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 브랜드 불매운동이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밀레니얼세대 소비자들이 일본 브랜드에 대해 고급스러움, 실속있음 같은 긍정적 감정과 일본 상품을 구매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동시에 느꼈던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의 의사결정은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적 감정에 따라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연구들이 많다.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혼재하는 양가감정 상태에서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태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엔 양가감정의 정도나 수준이 중요하다. 양가감정이 강하거나 수준이 높을수록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에 대해 불안정한 태도를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마케터는 우선 소비자들이 자사 브랜드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갖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양가감정을 가진 소비자라면 그 강도를 약화시키거나 수준을 낮춰 자사 브랜드에 대해 안정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삼천리자전거처럼 자사의 이익보다는 고객, 즉 소비자와 대리점주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이에 발맞추고자 하는 ‘진정성’으로 무장하는 것이야 말로 자사 브랜드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갖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진정성’은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전하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