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대재해처벌법, 위헌 시비 없애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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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책임자 범위서 CEO 제외‘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26일 공포됐다. 공포 1년 후 시행이므로 법 적용까지 10개월도 남지 않았다.
하한형 처벌은 상한형으로 변경
법 시행 전 보완…매뉴얼도 필요
김상수 < 대한건설협회 회장 >
법이 워낙 포괄적이고 처벌 또한 과도하다 보니 기업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아우성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의 혼란과 우려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범법자를 양산하는 건 물론 기업 경영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법 시행 전에 반드시 보완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건설업계는 지난달 31일 한자리에 모여 정부에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는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의견을 바탕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에 관해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처벌 대상인 책임자 범위에서 최고경영자(CEO)는 제외해야 한다. 건설업체가 보유한 현장이 수십, 수백 개에 달하고 여기에 투입되는 근로자만 해도 하루에 수천, 수만 명에 이른다. 대형 업체는 토목 공사 등 여타 공사를 제외하고 아파트 현장만 상시 50개 내외가 가동된다. 아파트 1개 현장당 하루에 500~1000명의 근로자가 투입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하루에 2만5000~5만 명의 근로자가 투입되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근로자의 안전을 본사에 있는 CEO가 일일이 챙기는 건 불가능하다.
사고 한 번 나면 건설업체가 겪는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어느 CEO가 사고 나기를 바라겠는가. 건설현장에 늘 지시하고 당부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직접적 행위자가 아닌 CEO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그것도 1년 이상 징역이라는 중벌로 다스리겠다고 하니 누가 기업을 맡아 경영하려 하겠는가. CEO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옳다. CEO가 안전조치를 하지 말도록 지시하는 등 고의성이 있다면 이는 형법 등 다른 법률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둘째, 하한형(1년 이상 징역)의 형벌을 상한형으로 바꿔야 한다. 하한형은 고의범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현장의 사고는 모두 과실에 의한 것임은 불문가지다. 산재 사고를 살인죄에 가까운 중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산재 발생 억제 이전에 기업 경영 자체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태가 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도 기업에 대한 처벌(벌금)만 있을 뿐 CEO 개인에 대한 처벌은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상한형으로 바꾸되 CEO는 직접적 행위자가 아닌 점을 감안해 2년 이하 징역 수준으로 조절함이 적정할 것으로 생각된다.셋째, 중대재해의 개념을 ‘동시에 3명 이상 사망자가 1년 내 반복 발생한 경우’로 바꿔야 한다. 현재 ‘1명 이상 사망’에 대해 1년 이상 징역이라는 처벌을 두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1명 이상 사망에 대해 7년 이하 징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형량이 다른 만큼 요건도 달라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이 강하므로 요건도 더 엄격해야 하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법 시행 전에 정부가 매뉴얼을 마련·보급할 필요가 있다. 법의 모호함으로 인한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흔히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 때도 법 시행 전에 국민권익위원회가 200여 쪽 분량의 매뉴얼을 보급한 바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체계와 내용이 매우 엉성하고 과도하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법이 시행되면 곧바로 위헌 시비에 휘말릴 소지도 농후하다. 책임주의 원칙을 비롯해 헌법상 평등권 침해 등 헌법과 배치되는 조항이 산재한다. 기존 법 체계와의 정합성을 충족하도록 정비해야 한다. 법 시행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도록 보완입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이번 기회에 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을 만들어 내길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