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셀프 평가로 연임하는 금융권 사외이사들

‘고액연봉, 거수기, 철밥통.’

포털사이트에 ‘사외이사’를 치면 따라 나오는 연관 키워드다. 상당수가 큰 업무 부담 없이 경영진의 보조 역할에 머무르면서도 적지 않은 보상을 받아온 관행 탓일 것이다. 특히 연봉이 높은 금융권 사외이사들은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지난해 펀드 손실 사태 등 금융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졌다. 감시와 견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올 들어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했던 변화는 없었다.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지난달 말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된 사외이사 26명 중 22명을 재선임했다. 80%가량이 자리를 지킨 셈이다. 새 사외이사를 선임한 곳도 신한금융과 하나금융뿐이었다. 디지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면서 금융업계 혁신이 요구되고 있지만 변화는 미미했다.

금융회사가 경영진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만 골라 연임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4년간(우리금융은 2019년 1월 출범 이후) 4대 지주 이사회에 올라온 안건 가운데 부결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KB금융과 우리금융, 농협금융에서는 부결 안건이 하나도 없었고, 하나금융과 신한금융도 각각 1, 2건에 그쳤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국민연금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최근 일부 금융지주 사외이사 연임을 반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견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사외이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리다.

논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사외이사 평가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통상 금융권 사외이사 평가는 자기 자신과 동료 사외이사, 내부 직원 등 세 항목을 합산해 이뤄진다. 그나마 ‘셀프 평가’와 ‘동료 평가’의 비중이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내 구성원의 생각은 평가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며 “재임 기간에는 아무런 견제 장치가 없으니 ‘셀프 연임’에 힘이 실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사외이사 외부 평가를 주기적으로 실시할 것을 권고했으나 강제성은 없다. 지주사별로 사외이사에 대한 직원·외부 평가 비중을 명문화하고 명확한 평가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 중 사외이사를 뽑을 때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도 선임 이후에는 방관하는 곳이 많다”며 “재임 도중 역할에 대한 제3자의 평가 점수를 반영해 연임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의 꿈은 유튜버, 직장인의 꿈은 ‘사외이사’”라는 비아냥을 단순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금융사 주총 시즌 때마다 매년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을 때도 됐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