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 베트남 결제시장, 韓 중기가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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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결제서비스社 알리엑스일본 최대 통신그룹 NTT 등 세계 주요 기업이 진출하려다 번번이 실패한 베트남 시장을 국내 중소기업이 뚫었다. 토종 금융 서비스 공급업체 알리엑스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지난달 공동 카드 결제 단말기 사업을 시작했다. 현지에 진출한 해외 기업 중 유일한 사례다.
은행마다 각각 결제 단말기 운영
日 NTT 등 진출 번번이 좌절
8년 공들인 '동반자 전략'으로
한국형 모델 적용한 1호 사업자
베트남에 ‘K결제 시스템’ 구축
2013년 설립된 알리엑스는 베트남 카드 결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2016년 하노이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했다. 베트남은 1억 명의 인구와 젊은 노동 인력, 높은 경제성장률 덕분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신흥시장이다.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의 다양한 기업이 베트남 결제 인프라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그 ‘1호 테이프’를 알리엑스가 끊은 것이다. 한국형 VAN(밴·부가가치통신망) 모델을 적용해 다른 한국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알리엑스는 베트남 전국에 다양한 카드 발급 은행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말기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체크·신용카드 결제뿐 아니라 모바일 결제와 마일리지·포인트 적립 등 각종 결제 부가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알리엑스의 비현금 결제 인프라를 여러 은행과 결제 서비스 제공사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은행들이 각각의 결제 단말기를 설치해 운영했다. 슈퍼마켓에 가면 여러 은행의 단말기가 어지럽게 놓인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은행마다 결제 인프라를 중복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로 베트남에선 가맹점 확대가 더딘 상황이다. 새로운 결제 서비스가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실제 적용에도 제약이 많다.알리엑스는 여기에 착안해 공동 카드 결제 단말기 사업을 추진했다. 알리엑스가 제공하는 단말기와 결제 인프라를 활용하면 하나의 단말기로 다양한 은행의 비현금 결제가 가능하다. 베트남 정부의 의지도 강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카드 결제 문화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베트남 국민의 외국 여행이 늘면서 카드 결제 경험도 축적되고 있다. 베트남의 가파른 경제 성장과 젊은 급여 소득자 증가가 맞물리면서 카드 결제 소비자층도 두터워지는 추세다.
“시장 침입자 아닌 동반자”
알리엑스는 오랜 시장조사와 분석을 통해 베트남 정부가 해외 기업의 단기적인 사업 제안보다 베트남 기업과의 지속적인 협업과 파트너십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병건 알리엑스 대표(사진)는 “베트남 현지 은행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준 게 사업 승인을 받는 데 유리했다”며 “공동 단말기로 확보한 가맹점에 대해 특정 은행에 선별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도 시장에서 빠른 신뢰를 얻은 배경”이라고 말했다.알리엑스는 2019년 베트남 국책은행인 비에틴은행, 민간 은행인 사콤은행과 계약을 진행했다. 지난해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발생으로 일정이 지연되긴 했지만 올초 시스템 구축을 완성하고 3월 정식 서비스를 출시했다. 베트남투자개발은행과 아그리은행 등으로 거래 은행을 확대할 계획이다.다음 과제는 신규 가맹점 개발이다. 이미 베트남 운송업체인 비나선과 계약을 체결해 1000대의 택시에 단말기를 설치했다. 연내 6000대까지 설치 단말기를 확대하기로 했다. 병원, 약국, 학교, 주유소, 소형 잡화점 등 신규 가맹점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알리엑스는 올해 20만 대 이상의 공동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고 2025년까지 베트남 전국에 100만 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