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부동산 규제책 계속 들고 갈 수밖에 없는 이유 [여기는 논설실]
입력
수정

부산은 몰라도, 박원순 전 시장이 거의 10년간 시정(市政)을 이끈 서울시의 변화는 상당할 것이다. 서울시의회 의원 109명 중 101명, 25개 서울 구청장 중 24명이 민주당 소속이어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가시밭길을 걸을 것이란 반론도 없지는 않다. 한편에선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서울시 재정이 투입·지원된 각종 사업과 이권에 관련된 인사들이 하나둘 알아서 짐싸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民心)의 향배를 액면 그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민주당 후보를 30~40% 밖에 지지하지 않은 민심의 정체를 파고들지 않고서는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대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앞에선 '공정'을 외치고 뒤로는 호박씨 까는 '내로남불' 정권, 수사(修辭)와 구호만 화려할 뿐 허점투성이인 각종 경제·사회정책들에 대한 반감이 컸지만, 역시 집값 급등과 전세난을 불러온 부동산 실책(失策)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라 보는 게 맞다.

집값이 체감하기로는 거의 3~4년간 '더블'로 뛴 바람에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고지서에 찍힐 세액의 크기는 이미 유주택자들을 단단히 긴장시켜 놓았다. 결정적 한방이 바로 정부가 말하는 공시가격 현실화, 즉 공시가격 시세반영률 인상이다. 종부세도 공정시장가액비율이라는 지렛대를 살짝 건드리니 다락 같이 오른 집값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세금고지서 열어보기가 겁부터 날 지경이다. 기자가 사는 집의 공시가격도 올해까지 최근 3년간 87.9% 급등해 어떻게 세금 납부액을 마련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린다.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미 서울 강남 일대에선 은퇴한 이자소득 생활자, 수입·지출이 빠듯한 중산층들을 중심으로 전세금이 저렴한 곳으로 이사를 가고, 강남 집은 전월세(일부 전세+일부 월세)로 놓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전세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데에도 이런 전세매물 증가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강남 집을 팔고 강남 외곽으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끝없이 오를 것만 같았던 국내 부동산시장, 주택시장의 열기를 식혀줄 결정적 한방인 것이다.
한편으론 이른바 '퍼주기' 복지정책과 코로나 재난지원금 때문에 2000조원에 육박한 나랏빚(국가부채) 문제를 늘어난 부동산 관련 세금(국세 기준)이 조금이나마 숨통 틔워줄 수 있다. 작년 코로나 여파로 기업들이 납부한 법인세가 16조원 넘게 급감했지만, 부동산 비중이 큰 양도세 수입이 23조6000억원, 종부세 수입 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40%씩 늘었다. 이런 국세 수입 없이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적 복지정책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코로나 재난지원을 위한 추경 규모를 그나마 줄일 여지 또한 생기는 것이다.
결국 규제 일변도 주택정책과 세금 폭탄 등에 수정을 가하겠다는 민주당의 그간 움직임은 그냥 선거용이었을 뿐이란 얘기다. 좀더 집값이 빠지도록 기존 규제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선거를 하루 앞두고도 마음속 깊은 솔직한 생각을 숨기기는 어려웠나 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