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란 석달, 이제야 나선 정부…업계 "美 뛰어넘는 지원 절실"

산업부, 업계와 대응책 논의
업계 "美 뛰어넘는 지원 절실"

각국 정부 '쩐의 전쟁'
美56조· 中175조· EU67조원 지원
미국선 시설투자액 40% 세금면제

속 타는 업계, 전폭 지원 호소
"투자세액 공제율 50%로 올리고
반도체 학과 신설, 정원 늘려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이 9일 열린 반도체산업협회(회장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의 반도체산업 지원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정부와 반도체산업협회 회장단의 간담회가 열렸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정배 협회장(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등 주요 기업 경영진이 마주 앉았다. 주무부처 장관과 반도체 기업인들의 대면은 연초 반도체 대란이 본격화한 지 석 달 만이다.

간담회는 예정보다 20분 늦게 끝났다. 행사 후 공개된 협회 명의의 대(對)정부 건의문엔 반도체 패권 전쟁에 내몰린 기업들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협회는 반도체산업지원특별법 제정을 통한 투자 인센티브 확대 등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을 요청했다.

“시설투자 50% 세액공제 필요”

이날 만남은 산업부의 요청에 따라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반도체협회는 지난달 취임한 이 협회장과 회장단 상견례를 겸해 조찬행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성 장관이 참석 의사를 전해옴에 따라 서둘러 건의문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초 시작된 반도체 품귀 현상이 전(全)산업으로 확산 중이다. 미국 중국 등의 반도체 패권 경쟁은 나라로 격화되고 있다. 그 사이 업계와 학계에선 “우리 정부가 기업 지원에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성 장관이 뒤늦게 나선 이유도 이런 비판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협회는 이날 크게 네 가지를 정부에 요청했다. 우선 국내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 확대를 위해 전폭 지원해달라고 했다. 간담회의 주요 화두도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방안이었다. 참석자들은 정부에 “연구개발(R&D) 및 제조설비 투자비용에 대해 50%까지 세액공제가 필요하다”며 “양산용 제조설비 투자비용도 세액공제 대상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못 미치는 반도체 지원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대기업의 시설투자세액공제는 기본 1%다. 정부는 올해부터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지능형 마이크로센서 등 ‘신성장기술분야’ 시설투자에 대해 공제율을 기본 3%로 올렸다.

하지만 지원 수준이 미국, 유럽연합(EU) 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반도체 설비투자액의 40%를 세금에서 공제해주는 등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을 마련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500억달러(약 56조원) 규모 반도체산업 육성 방안도 발표했다.

중국 역시 2025년까지 총 170조원을 반도체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EU도 67조원 규모 이상의 ‘반도체 제조기술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협회장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의) 전방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프라 건설 총력 지원”

간담회에선 “반도체 제조시설 인프라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신속하고 원활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경기 평택과 용인에 100조원 이상을 투자해 최신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다. 문제는 전력 및 용수 조달 방안이다. 공장 인근 지자체들이 송전선로나 용수로 통과를 반대하며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반도체 전문 인재 양성·공급 방안도 화제에 올랐다. 협회는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신설 및 정원 확대 △반도체 인력아카데미 설립 △석박사 과정 인력양성사업 등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산업부는 ‘총력지원’ 의사를 밝혔다. 성 장관은 “업계의 건의사항을 반영해 종합정책을 수립하고 곧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반도체산업지원특별법 제정, 세제지원 등 업계의 건의 사항이 정책에 충분히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세제 지원은 기획재정부, 수도권 반도체학과 신설은 교육부 등이 주무부처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패스트트랙’을 통해 반도체산업을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패권전쟁에서 K반도체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정수/이수빈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