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전공식 바꿨다…'비슷포크' 쏟아져도 삼성이 빛나는 이유
입력
수정
지면A25
원조는 다르다…삼성전자 비스포크의 자신감과거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은 백색가전으로 불렸다. 청결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흰색으로 출시된 제품이 많았다. 이후 메탈, 블랙 등과 같은 소재 및 색상이 나왔지만 제품 생김새는 대동소이했다.
디자인은 베낄 수 있어도 물류·기술 혁신은 모방 못해
반제품 제조해 패널·본체 투트랙 제조…삼성이 '유일'
디지털 프린팅으로 360色 구현…"경험의 차별화 줄 것"
그런데 최근 2~3년 새 가전매장 풍경이 확 달라졌다. 알록달록한 색상이 넘쳐난다. 다양한 색을 선택할 수 있는 삼성전자 비스포크 등장 이후 ‘가전도 인테리어의 일부’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나타난 변화다. 요즘 소비자 사이에선 비스포크와 비슷한 디자인으로 쏟아져 나온 가전을 ‘비슷포크’로 부르기도 한다.
기능도 맞춤형으로
맞춤형 가전을 선도해온 삼성전자의 비스포크가 진화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디자인뿐 아니라 기능에도 소비자 취향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비스포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생활습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기능을 고를 수 있는 신제품을 준비 중”이라며 “디자인에 내부 옵션까지 포함하면 수천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비스포크는 지난해 가전업계에서 가장 히트한 제품라인으로 꼽힌다.2019년 5월 비스포크 냉장고를 첫 출시한 뒤 제품군을 인덕션, 식기세척기 등으로 넓혔다. 이들 제품의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출하량은 100만 대를 넘어섰다. 이날 기준 인테리어 전문 앱 ‘오늘의 집’에서 역대 가장 많이 판매된 가전 1·2위가 모두 비스포크 냉장고다.삼성전자는 소비자 선택의 폭을 더 넓히기로 했다. 외부 디자인과 내부까지 맞춤형으로 고를 수 있는 비스포크 냉장고 신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육류를 좋아하는 소비자는 숙성(에이징)칸과 기능을 선택하고, 채식주의자는 채소 보관이 편리한 신선 독립칸을 구성할 수 있다. 냉동실 얼음도 각얼음뿐 아니라 취향에 따라 위스키용 구형 얼음, 자잘한 얼음 등으로 선택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냉장고 외 다른 가전에도 다양한 기능의 옵션을 도입할 방침이다.
‘생활가전=소품종 대량생산’ 공식 깨
가전산업은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을 100년 이상 고수해왔다. 상품 기획 단계에 다음 시즌에 유행할 디자인과 색상을 예측한 뒤 완제품을 제조해 놓고 마케팅과 판촉 활동을 했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소비자 취향이 세분화하면서 대량생산만으로는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게 어려워졌다.삼성전자가 ‘나만의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데 주목해 비스포크를 2018년 기획한 배경이다. 이런 사업 모델이 가능하려면 다품종 소량생산체제가 필요했다. ‘맞춤형 가전’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소비자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적정한 가격대를 맞춰야 했다.이를 위해 고안한 게 ‘투 트랙’ 제조 방식이다. 반제품을 준비해놓고 소비자 주문에 따라 본체와 패널을 각각 다른 곳에서 동시에 제작하는 게 비스포크 제조의 핵심이다. 이후 물류창고에서 10분 만에 완제품을 조립한 뒤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맞춤형 주문인데도 가격이 크게 비싸지 않고, 2주 안에 배송이 이뤄지는 비결이다.
위훈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이 같은 제조 방식이 가능한 가전회사는 세계에서 삼성전자가 유일하다”며 “디자인뿐 아니라 무엇이든 맞춤형으로 제조할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프린팅으로 색 무한 확장
삼성전자는 최근 디지털 프린팅 방식을 통해 맞춤형 패널 생산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였다. 이전까지는 가전에 색을 입히려면 안료를 섞은 잉크를 미리 제작해 인쇄해야 했다. 필요한 색이 20가지라면 20가지의 잉크가 필요했다.디지털 프린팅은 4~6가지의 색상을 고해상도 점으로 촘촘히 인쇄해 다양한 색상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색상코드만 있으면 무한정 많은 수의 색을 표현할 수 있다. 최근 360가지의 냉장고 패널 색상을 공개한 것도 이 기술 덕이었다.삼성전자는 올해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전 품목으로 비스포크를 확대하고, 가전 매출 중 비스포크 비중을 80%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위 상무는 “현재 190만 가지의 소비자 취향을 분석 중”이라며 “보이는 차별화뿐 아니라 사용 경험의 차별화까지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