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크놀로지' 社名 싸움…세종, 골리앗을 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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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vs 로펌지난해 12월 29일 열린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지주사) 임시 주주총회. 이날 열린 주총에서는 사명 변경 안건이 결의됐다. 이전까지 써오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신 ‘한국앤컴퍼니’로 회사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 결과 “한국테크놀로지는 2012년부터 우리가 써온 이름”이라며 ‘원조 한국테크놀로지’임을 주장한 한 자동차 부품 중소기업은 회사 이름을 지키게 됐다. 법무법인 세종은 한국테크놀로지라는 회사명을 두 회사가 동시에 쓸 경우 업계에 얼마나 큰 혼동이 있을지를 두고 벌어진 치열한 다툼에서 ‘역혼동’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중소기업의 승리를 이끌었다.
'역혼동' 법리 파고들어
큰 기업이 작은 회사 상호 베끼면
원조 업체가 대기업 명성에
무임승차한다는 오해받을 우려
“대기업이 中企와 비슷한 이름 쓰는 건 부당”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한국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이 관련 업계에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지 △유사한 사명을 사용함으로써 동종 영업 부문에 혼동 가능성이 있을지 여부였다. 상호가 널리 알려져 있으면 있을수록 시장에서 소비자가 느낄 혼란은 더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두 쟁점을 동시에 입증할 법리가 필요했다.세종은 ‘상호의 역혼동’이라는 법리를 이용했다. 해당 상호를 먼저 쓰고 있던 기업보다 뒤에 쓰는 기업의 영업 규모가 크면 시장에서 ‘규모가 작은 선(先)사용자가 후(後)사용자의 명성과 신용에 무임승차해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선사용자가 소비자를 기망한다’는 오해를 살 경우 이른바 역혼동에 의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세종의 주장이었다.
한국앤컴퍼니 측은 “한국테크놀로지라는 상호는 식별력이 없고 자동차 부품업계에서도 크게 알려지지 않아 혼동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종은 “법원 등기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한국테크놀로지라는 상호로 등기한 사례는 3~4건밖에 없다”며 “그 자체로도 식별력이 있는 표지임이 증명된다”고 반박했다.이 다툼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5월 한국테크놀로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일반인들의 경우 의사결정을 하는 등의 과정에서 비슷한 상호를 가진 채권자(한국테크놀로지) 및 채무자 회사(한국테크놀로지그룹)를 서로 혼동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자동차 부품류 제조·판매를 영위하는 회사 및 지주회사의 간판·선전광고물·사업계획서·명함·책자 등에 해당 상호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명령했다.
세종, ‘역혼동’ 법리 내세워 승리
한국테크놀로지 상호를 두고 벌어진 법적 다툼은 2라운드까지 이어졌다. 한국앤컴퍼니가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의 신청 사건을 담당했던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현재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주회사 및 종속회사들이 자동차 부품류 제조·판매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며 소송을 이어갔다. 하지만 법원은 다시금 한국테크놀로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상호가 유사해 오인·혼동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며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세종에선 변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임보경 변호사(사법연수원 30기)가 승리의 주축이 됐다. 임 변호사는 전체 사건을 지휘하며 소송 전략을 수립했고, 상호 혼동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는 등 증거조사 방법을 발굴했다.임 변호사는 “이 판결은 그간 묻혀 있던 역혼동 법리를 활용해 피해 사례를 인정받은 최초의 사건”이라며 “애초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말을 들은 소송이었지만 해외 판례 연구 등을 성실히 한 끝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 상호명 사건은 규모가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의 상호를 따라 써 혼동을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이 사건은 반대의 경우”라며 “업계에서도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봤는데 결국 한 중소기업의 정체성을 지키는 결과를 도출해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 외에 이숙미 변호사(연수원 34기)가 함께 가처분 변론 전략을 세웠다. 이 변호사는 로펌 평가매체 체임버스앤드파트너스가 선정한 송무 분야 전문 변호사다. 황지원(변호사시험 4회), 김소리(변시 8회) 변호사 등도 실무를 도왔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