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특집 : 생활 속의 한시> 眼瞼手術(안검수술), 강성위

1.
眼瞼手術(안검수술)

姜聲尉(강성위)眼瞼下垂比人甚(안검하수비인심)
生來初臥手術床(생래초와수술상)
鼓鼓腫脹還瘀靑(고고종창환어청)
恰如貉眼橫向張(흡여학안횡향장)

[주석]
* 眼瞼(안검) : 눈꺼풀. / 手術(수술) : 수술.
* 眼瞼下垂(안검하수) : 눈꺼풀이 아래로 처지다. 눈꺼풀이 아래로 처져서 시야를 가리는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 比人甚(비인심) : 타인(남들)에 비해 심하다.
生來(생래) : 태어나, 난생. / 初(초) : 처음, 처음으로. / 臥(와) : ~에 눕다. / 手術床(수술상) : 수술대.
鼓鼓(고고) : 부풀어 오른 모양. 퉁퉁. / 腫脹(종창) : (염증 따위로 말미암아 인체의 국부가) 부어오르다. / 還(환) : 다시, 또. / 瘀靑(어청) : 멍이 들다.
恰如(흡여) : 흡사 ~와 같다. / 貉(학) : 너구리.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너구리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 眼(안) : 눈. / 橫向(횡향) : 가로로, 가로 방향으로. / 張(장) : 펴다, 늘리다.

[번역]
눈꺼풀 수술안검 하수가 남들보다 심하여
태어나 처음 수술대에 누웠다
퉁퉁 붓고 다시 멍까지 드니
흡사 너구리 눈 가로로 늘인 듯

2.
眼瞼手術後(안검수술후)

手術畢後朔餘過(수술필후삭여과)
腫消瘀滅聊可觀(종소어멸료가관)
但恐身登九原日(단공신등구원일)
兩親不識吾面顔(양친불식오면안)[주석]
* 後(후) : 뒤, ~ 뒤에, ~한 후에.
畢後(필후) : 끝난 뒤. 朔餘(삭여) : 한 달쯤, 한 달 남짓. / 過(과) : 지나가다.
腫消(종소) : 부기가 가라앉다. / 瘀滅(어멸) : 멍이 사라지다. / 聊(요) : 애오라지, 그럭저럭. / 可觀(가관) : 볼만하다.
但恐(단공) : 다만 ~이 두렵다. / 身登(신등) : 몸이 ~에 올라가다, 내가 ~에 올라가다. / 九原(구원) : 저세상, 저승. / 日(일) : ~하는 날.
兩親(양친) : 양친, 부모님. / 不識(불식) : ~을 알지 못하다. / 吾(오) : 나, 나의. / 面顔(면안) : 얼굴.

[번역]
눈꺼풀 수술 후에

수술 마친 후로 한 달쯤 지나자
부기 빠지고 멍 사라져 그럭저럭 볼 만한데
그저 걱정인 것은 내가 저 세상 가는 날
양친께서 내 얼굴 못 알아보실까 하는 것

[한역 노트]
어느덧 사월 초입이 봄의 끝자락처럼 여겨지는 시절이 되었다. 제아무리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이라고는 해도 너무 얼척 없이 빠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필자는 올 봄이 빚어지고 여문 2월과 3월 두 달을, 필자의 생애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고 바쁘게 보냈다. 오늘은 그 괴롭고 바쁘게 보냈던 나날 가운데 괴로웠던 날들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아빠! 아빠가 쌍수했다며? 도대체 뭔 일이래? 아빠가 그걸 왜 해?”
직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우리집 큰 애가 호들갑을 떨며 한 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적어보았더니 ‘쌍수’가 도대체 뭔 말이냐고 반문할 독자가 계실 듯하다. ‘쌍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말인 ‘쌍꺼풀 수술’을 줄인 말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쌍꺼풀 수술과 눈꺼풀 수술은 좀 다른데도 대부분이 별 구분 없이 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 집 큰 애가 그렇게 표현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 두 수술의 차이를 모를 리 없는, 현직 간호사이기 때문이었다.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딸아이의 파상적인 질문과 잔소리를 언제까지고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필자는, 딸아이의 이런 ‘공격’을 한 마디로 차단할 수 있을 정도의 지혜(?)는 이미 진작에 터득한 나이이다.
“잠깐! 니가 돈 낼 거 아니면 제발 조용히 해라, 응?”
딸아이가 깨갱하는(?) 소리가 폰 너머에서 바로 들려오는 듯하였다. 이렇게 나이가 주는 훈장 하나를 꺼내 딸아이의 수다를 잠재운 필자는 2월 어느 날에 눈꺼풀 수술을 하였더랬다. 앞서 얘기를 꺼낸 ‘괴로움’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필자는 수술한 당일 날 문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며 귀가하였다. 그 피눈물은 정말이지 견디기가 힘들 정도로 고약했다. 필자가 소개한 첫 번째 시는 그나마 그 피눈물이 마른 직후에 거울을 보다가 불현듯 시상이 떠올라 지은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눈이 사람의 눈이 아니라 너구리 눈 같다는 생각이 든 건 그 때가 난생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시 한 수를 짓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괴로움은 사실 그 뒤에 시작되었다. 수술한 부위의 통증 때문이 아니라, 눈물이 자주 나고 시력이 일시적으로 매우 떨어져 컴퓨터 모니터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업해야 할 분량은 만만치 않은데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더디면 마음은 더 바빠지는 법이다. 그 마음을 달래고자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싶어도 또 음주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기간이었기에, 그 ‘술을 억지로 참음’ 역시 고스란히 고통으로 변환되었다. 그러니 그 괴로움이 오죽했겠는가?
그런 나날이 그럭저럭 흘러 한 달 쯤 지나자 그제야 눈이 사람 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내가 내가 아닌 듯하다는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었다. 수술을 괜히 했나 하는 생각이 심하게 든 것도 바로 이때쯤이었는데,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모니터를 볼 때 수술전보다 눈이 다소 덜 피곤한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치질을 하면서 거울을 보노라니 불현듯 ≪효경(孝經)≫의 구절이 떠올랐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요” 여기까지 외우다 보니, 문득 내가 저 세상에 가서 부모님을 뵐 때 두 분께서 혹시 날 못 알아보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칫솔을 입에 문 상태로 핸드폰에 시상을 메모해두었다가 위에 소개한 두 번째 시를 지었다. 부모님께서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못난 놈!”하시며 혀를 차시더라도, 기껏해야 100년인 인생을 살며 더러 이런 너스레도 떨어보아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 사진을 남기는 대신에 이 시를 남기기로 했다. 2월과 3월의 그 ‘바쁨’이 어지간만 했다면 좀 더 멋있는 시를 짓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지금에야 남는다. 과연 그랬을까?
두 수의 한시 모두 칠언고시(七言古詩)이며, 짝수 구에 압운하였다. 첫 번째 시의 압운자는 ‘床(상)’과 ‘張(장)’이며, 두 번째 시의 압운자는 ‘觀(관)’과 ‘顔(안)’이다.
2021. 4. 6.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