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정밀의료, 의료의 새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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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상은 서울대 의대 핵의학교실 교수(비아이케이테라퓨틱스 대표)정밀의료는 유전체 정보, 의료 임상정보, 생활습관 정보 등 건강정보를 활용하여 개개인에게 최적의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보건의료 패러다임이다. 이를 통해 질병의 예측, 예방, 조기진단, 효율적이고 부작용 없는 치료, 신약 개발 등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의료 질 향상과 의료비 절감을 가져올 수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국가에서는 정밀의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2015년부터 2억1500만 달러(약 2380억 원)를 투자해 정밀의료 이니셔티브(PMI)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도 국가와 민간이 함께 나서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등 정밀의료 기술 기반 구축, 정밀 의료 서비스 개발 및 제공, 정밀의료 인프라 구축, 정밀의료 생태계 조성 등 관련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생명공학정책연구 센터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정밀의료 시장은 2017년 474억7000만 달러(약 52조5500억 원)에서 연평균 13.3% 성장해 2023년에는 1003억 달러(약 111조3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더 빠르고 정밀해진 진단,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 제공 가능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4년에 걸쳐 38억 달러(약 4조2000억 원)를 투입해 수행한 휴먼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30억 쌍의 염기서 열로 구성된 사람 유전체 정보를 해독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의 유전체 염기서열은 99.97%가 동일하지만 0.03%의 염기서열 차이가 생물학적·의학적 표현형의 차이를 유발한다. 즉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이용하여 개인의 생화학적 특성,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성, 특정 약물에 대한 작용 및 부작용 등 개인 특이적 의료 정보를 얻어 질병의 예측, 예방, 조기진단, 개인 맞춤형 치료 등에 이용할 수 있다.또한 신약의 임상시험에서 약물 반응성이 높은 피험자군을 예측, 선정함으로써 임상시험의 성공률을 높이고 임상시험의 소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유전체 정보를 이용한 정밀의료가 의료 현장에서 실현되기까지는 유전체 정보 해독 기술, 빅데이터 분석 기술, 빅데이터 활용 기술 등의 발전이 크게 기여했다. 유전체 정보 해독(DNA 시퀀싱) 비용은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종료될 무렵인 2000년대 초 1억 달러에 달했으나 불과 10년 후에 5000달러로 낮아졌으며 현재는 1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13년이나 걸렸던 해독 기간도 이제는 하루면 끝낼 수 있다. 유전체 정보 해독 기술과 함께 30억 개에 달하는 염기서열 데이터 처리 기술, 개인 염기서열 차이의 생물학적·생화학적·의학적 의미를 도출하기 위한 데이터 분석 및 활용 기술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유전체 정보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료 임상정보, 생활습관 정보도 정밀의료의 중요한 요소다. 유전체 정보와 함께 이들 정보를 활용해 일상적인 건강관리뿐만 아니라 질병을 예측, 예방, 조기진단할 수 있으며 개인 맞춤형 치료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무기록과 스마트폰,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모바일 헬스 기술의 발전이 정밀의료를 위한 의료 임상정보와 생활습관 정보의 활용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기술 발전에 힘입어 미국 정밀의료 이니셔티브에서는 100만 명의 지원자로부터 유전체 정보, 의료 임상정보, 생활습관 정보를 수집해 이를 정밀의료에 활용하고자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All of Us Research Program).
우리나라도 올해까지 2만 명 규모의 임상정보와 유전체 데이터를 구축하는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9년까지 100만 명 규모의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할 예정이다.이와 같이 정밀의료는 의료·의학뿐만 아니라 유전체 정보 해독 기술, 빅데이터 분석 및 활용 기술, 전자의무기록 기술, 모바일 헬스 기술 등 의생명과학, 생물정보학, 정보통신기술 등이 융합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정밀의료, ‘융합’이 본질인 4차 산업혁명의 쾌거
정밀의료는 4차 산업혁명이 사람과 사회의 문제 해결에 접목된 가장 훌륭한 모델 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지식, 기술, 아이디어를 융합해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 서비스, 문화를 창출하는 과학기술과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전의 산업혁명이 기계, 에너지, 컴퓨터, 인터넷 등 뚜렷한 핵심기술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4차 산업혁명은 특정 기술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축적된 지식, 기술, 아이디어의 융합에 의한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밀의료는 의료·의학, 의생명과학, 생물정보학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초기 핵심 기술인 지능정보 기술이 융합하여 이뤄낸 산물이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융합에 있으며 정밀 의료도 융합의 성과다. 융합의 개념은 서로 다른 아이디어, 개념, 문화 등이 교차하며 만날 때 창조와 혁신이 싹튼다는 ‘메디치 효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과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개별 전문 학문 및 기술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과 기술이 융합함으로써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과학기술 간의 융합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사람과 사회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과 인문학, 사회과학, 법제도, 문화예술, 디자인 등이 융합하는 이른바 거대융합이 필요한 이유다.
즉 거대융합을 통해 과학기술은 사람 중심의 사회적 가치를 지니게 되며 사람의 가치를 높이게 된다. 개개인 대상으로 하는 정밀의료에서는 더욱 필요한 개념이자 접근 방법이다.
정밀의료의 글로벌 리더로 도약할 가능성 충분해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의 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의생명과학 분야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전자의무기록 및 정보통신기술(ICT)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선진국보다 먼저 융합의 과학기술 연구 및 산업 현장 적용을 강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결과 융합 교육 및 연구기관이 양적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융합 교육 및 연구의 질적 성과를 토대로 융합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정밀의료의 핵심 요소기술과 융합 생태계를 토대로 우리나라가 정밀의료의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저자 소개>
김상은 서울대 의대 졸업 후, 내과와 핵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서울대 의대 핵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 최초로 ‘신경화학영상’을 도입했고, 세계 최초로 ‘의약품 영상’을 신약 개발 현장에 실용화했다. 오랫동안 질병 진단과 치료를 위한 분자표적 연구에 헌신했다. ELITE 약물전달기술 플랫폼을 개발했으며, 이를 활용해 항암제 등을 개발 중인 비아이케이테라퓨틱스의 대표로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