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고수 열전] 김명환 비엔에이치 대표 “좋은 투자는 기업을 살리지만 나쁜 회수는 기업을 죽입니다”

비엔에이치인베스트먼트는 김명환 대표가 2015년 이노폴리스파트너스에서 독립해 설립한 1세대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털(VC)이다. 비엔에이치라는 이름도 ‘바이오(bio)’와 ‘헬스케어(healthcare)’의 앞 글자에서 따왔다. 김 대표에게 투자 철학을 물었다.

“프리 IPO(상장 전 투자)가 안전하고 좋은 투자라고요? 그건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얘기일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유통시장 분위기가 좋을 때만 들어맞는 이야기이지요.”김명환 비엔에이치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최근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프리 IPO 투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프리 IPO 투자는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은 투자 방식이었다. SK바이오팜의 몸값이 상장 후 뛰어오르자 비상장 바이오 기업에 대한 기대 가치가 커져서다. 투자 대상이 곧 IPO를 앞둔 회사인 만큼 성장세도 안정궤도에 올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면서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지난해 프리 IPO 투자를 받은 대표적 기업은 항암제 개발업체 피노바이오(200억 원), 조기진단업체 베르티스(160억 원) 등이다.

김 대표는 “프리 IPO가 단순히 나쁘거나 위험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라는 인식이 정말 옳은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IPO 시기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IPO를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바이오 기업 디앤디파마텍과 엑소코바이오는 코스닥시장 상장 절차를 중단했다. 유통시장에서 바이오 종목의 주가 흐름이 꾸준한 약세를 보일 경우 프리 IPO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 일정이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도 변수다. 그는 “초기 기업은 투자자끼리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 치열한 데다 프리 IPO 대비 기대수익이 커 비엔에이치는 초기 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환 비엔에이치인베스트먼트 대표 / 사진=강은구 기자
바이오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VC
김 대표는 1997년 기술보증기금에 입사한 뒤 2000년 KTB네트워크로 자리를 옮기며 투자업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이후 이노폴리스파트너스를 거쳐 2015년 비엔에이치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바이오 및 헬스케어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을 세우고 싶어 이노폴리스에서 독립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13년께 바이오 기업을 담은 펀드들의 수익률이 좋아 이 분야만 전문적으로 투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비엔에이치는 설립 초기부터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된 VC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기 VC는 펀드 설립 후 첫 청산까지 이렇다 할 수익이 나지 않아 자금난에 허덕이기 쉽지만 비엔에이치는 이 시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넘겼다.

김 대표는 “이노폴리스에서 직접 운영하던 펀드를 독립 당시 가지고 나왔는데 이 펀드를 통해 투자한 보툴리눔톡신 제조기업 휴젤에서 큰 수익이 났다”며 웃었다. 비엔에이치는 독립 후 528억 원을 추가로 얹어 휴젤에 총 678억 원을 투자했다. 비엔에이치는 이후 휴젤에서 1985억 원을 회수(수익률 193%)했다.비엔에이치는 초기 바이오 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2015년엔 비임상 CRO 기업 노터스에 30억 원을 투자해 148억 원을 회수했다(수익률 395%). 또 2016년엔 치매 조기진단업체 피플바이오에 10억 원을 투자해 상장 후 64억 원을 회수했다(수익률 533%).

비엔에이치의 바이오섹터 전문 심사역은 김 대표를 포함해 총 4명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박사급 심사역 1명, 사모펀드(PE) 출신 회계사 1명, 바이오를 전공한 변리사 1명 등으로 구성했다. 시장의 유행과 관계없이 바이오 기업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기 위한 인적 구성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바이오 시장 상황이 나빠지기라도 하면 앞으로 어떡할 거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우리 같은 소규모 VC는 한 전문 분야에만 집중하는 게 더 승산이 있다고 보고 바이오 섹터에만 집중투자하는 방침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기술력과 팀 구성 갖춘 기업에 투자
기술력과 인적 구성을 갖춘 기업. 김 대표가 찾는 투자 1순위 초기 기업이다.

기술력 면에선 플랫폼 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를 선호한다고 했다. 소수의 파이프라인 임상 진도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고 확장성이 우수해서다. 라이선스아웃(LO)도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다. 물론 기술 자체도 독창적인 부분이 있어야 한다.

김 대표가 말하는 인적 구성이란 안정된 팀 구성을 가리킨다. 그는 “1인 창업보다는 기술전문가와 경영전문가, 임상전문가 등으로 안정적인 팀이 구성된 기업을 최우선으로 본다”며 “초기 기업인 만큼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주변의 조언과 지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기업에 투자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비엔에이치는 ‘적극관리형’ VC다. 국내 VC 업계는 투자한 뒤에 믿고 기다리는 부류와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관리하는 부류로 나뉜다. 비엔에이치는 후자에 속한다.

김 대표는 “가령 시험 전 모의고사를 보듯 기술성 평가를 준비하는 기업에겐 모의평가를 진행하기도 하고 이미 알려진 평가기준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것 같으면 이에 맞는 해결책을 권하기도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대표의 최종학력 때문에 전문성 평가에서 감점이 예상될 경우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것을 추천하는 식이다.

김 대표는 “시리즈B, C 투자를 받을 단계에선 유망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지는 만큼 발 빠르게 좋은 회사를 발굴해 시리즈A 단계에서 투자하는 게 순리대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사실 진짜 어려운 건 투자가 아닌 회수”라고 강조했다.

투자보다 회수가 10배는 더 어렵다
“좋은 투자는 회사를 살리고, 나쁜 회수는 회사를 죽인다.”

이것이 바로 김 대표가 투자에 비해 회수가 더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가령 휴젤에 투자한 원금 회수를 앞두고 비엔에이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2015년 12월 휴젤의 상장 이후 비엔에이치는 이 회사의 지분 15%를 보유한 2대 주주가 됐다. 약 2000억 원어치에 해당하는 물량이었다. 비엔에이치가 이를 섣불리 장내 매도를 했다간 휴젤의 주가가 곤두박질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매도 않고 지분을) 마냥 들고 있다 해도 오버행 이슈 때문에 회사의 주가 상승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비엔에이치의 선택은 해외 기관투자가에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이었다. 김 대표는 “모건스탠리 등 우리보다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외국계 기관투자가에 지분을 넘겼다”며 “우리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고 휴젤 입장에서는 외국인 지분율이 오르는 데다 유통시장에 주는 충격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통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오르는 것은 호재로 통한다.

이후로도 비엔에이치는 휴젤과 꾸준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엔 휴젤이 투자한 기업에 비엔에이치가 후속투자를 하기도 했다”며 “상장 첫날 보유한 주식을 모두 매도하는 VC들도 간혹 있는데 우리가 그랬더라면 휴젤과 지금 같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수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도의적이 아닌 실리적인 이유다. 상장 첫날 물량을 ‘패대기’치는 VC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전도유망한 기업 입장에선 투자자로 받아들이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결국 비엔에이치가 좋은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선 회수할 때도 기업과의 의리를 꾸준히 지켜야 한다”며 “결국 의리를 지키다 보면 좋은 기업에 투자할 수 있고 펀드 수익률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고 언급했다.

또 “펀드 수익률이 높다 보니 우리 펀드의 투자자(LP)들은 비엔에이치의 단골이 됐다”며 “펀드를 만들면 3개월 만에 오버부킹이 될 정도로 투자금을 수월하게 끌어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엔에이치가 2016~2018년에 청산한 펀드 3개의 수익률은 각각 50%, 115.7%, 29.9%였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