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마지막에 웃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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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가 없어지니 전부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했어!”
얼마 전 만난 60대 여성이 한 말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이 활동했던 조직에서 이제 존재 자체가 없어졌다고 허탈해했다. 20년 세월을 돌아보면 수고와 눈물밖에 남은 게 없는데 이제 와보니 ‘뒷방 늙은이(?)’ 취급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자신처럼 되지 말라며 ‘뭐든 나서서 하지 마!’라는 나름 처방전(?)을 내놓았다. 또 다른 60대 여인이야기다. 전화가 왔다.
“지수 씨! 이번에 내가 피아노 반주해도 될까?”
“그럼요! 너무 감사하지요.” 5분 후 다시 그 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해.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가 지금도 현역인줄 알아.” 하며 자신의 속 이야기를 풀었다. 평생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삶을 벗어나지 못해 아직도 피아노에 대한 욕심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싫어서 기회만 있으면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 마음이 더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을 주책바가지(?) 노인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지인들 중 60대들을 만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 은퇴자들이다. 이들 중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은 은퇴 후 삶을 미리 준비한 사람들이었고 반면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다소 낮은 느낌을 받았다.
또,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한 것은 돈 즉 재정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재정이 탄탄하게 준비된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것은 돈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문제였다. 한마디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며칠 전 ‘쓸모 있게 나이 들기’ 라는 방송을 봤다. 한 남성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모습이었다. 직접 요리해 남에게 대접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다재다능한 모습에 아주 오래전 방송된 “혼자서도 잘 할 거야”라는 어린이 프로그램 제목이 떠올랐다.
필자 역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부류이지만 이 방송을 보면서 한편 씁쓸한 여운도 남았다. 곧 다가올 60대 삶을 위해 지금 보다 더 쓸모 있는 자기계발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은퇴 후 우리네 인생을 산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령 산 정상을 50대로 보았을 때, 60대 이후 삶은 ‘등산(登山)’ 보다 ‘하산(下山)’이다. 내리막길에 서있는 셈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산행에서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앞만 보고 오르기만 해도 산 정상에 도달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전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몸에 힘을 빼고 발 디딜 곳을 앞뒤 좌우 살펴야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다.
서양 속담에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제일 잘 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마지막이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여 마무리할 때가 되기도 하고 인생 끝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만약 인생에서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라면 그 얼마나 가치 있는 웃음이 아닐까 싶다. 오르고 내려온 삶을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참다운 웃음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니 산에 오르는 이들이 많아졌다. 매일 아침 산행을 하는데 함께 가자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부쩍 더워진 날씨에 다이어트가 목적이란다. 필자 역시 다이어트를 해야 하지만 이번 봄 산행은 <몸 관리>를 위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맘 관리>를 위해서 열심히 오르내리기를 다짐해 본다.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되기 위해…
Ⓒ20190424이지수(jslee30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