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죄와 벌' 그리고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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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집 가진 사람을 죄인 취급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은 것은 고등학생 시절 어느 겨울이었다. 몸이 아파 병석에서 그 책을 읽었는지 아니면 그 책을 읽자 몸이 아파졌는지는 분명치 않은데 그 책을 읽는 내내 고열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 책 속 주인공이 자신의 범죄 사실이 드러날까봐 고심하며 고열로 신음하던 장면과 사회 정의에 대해 심각해지기 시작하던 시절의 혼돈이 중첩돼 이 책은 정말 기억이 생생하다. 줄거리는 잘 알려져 있듯이 가난한 대학생인 주인공이 탐욕스러운 전당포 주인 노파를 살해하고 고민 끝에 자수하는데, 매춘부인 여자의 헌신적 사랑에 회개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여러 개의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익을 빼앗아 벌하겠다는 정책
범죄면 사법제도로 처벌해야지
왜 '세금폭탄'을 사용하는가
부동산 혼란 탓 손해보게 된
사람들은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
이인호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첫째, 전당포 주인 노파의 탐욕은 죄악인가? 둘째, 탐욕이 죄악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사적으로 처벌해도 되는가? 셋째, 탐욕스러운 사람을 벌하여 얻은 금전을 자기 자신과 사회가 차지해도 되는가? 넷째, 탐욕스러운 사람을 벌하는 중에 무고한 사람을 죽여도 되는가?첫째, 탐욕이 범죄인가는 정도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잘 아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는 자신의 탐욕을 후회한다. 그가 잘못한 게 아니라면 회개할 필요가 없을 텐데 회개하는 것으로 미뤄 탐욕이 잘못된 일인 것 같다. 그런데 탐욕을 죄악시한다면 모든 국민이 잘살고자 한, 물질적 탐욕의 결과인 한국의 경제적 성취에 대해 우리 모두 크게 회개하고 이를 되돌리려 애써야 할 것이다.
둘째, 탐욕을 사적으로 처벌해도 되느냐는 게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주인공은 나폴레옹 같은 영웅은 그래도 된다고 전제하고 자신이 그런 영웅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이라고 사적으로 탐욕스러운 사람을 처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권력에도 폭력적인 면이 있지만 이때의 폭력은 분명히 개인의 사적 처벌과 다른 정치적 정당성이 부여된 절차다.
셋째, 주인공은 노파의 소유물을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노파가 살해돼 잃는 후생이 자신과 사회가 노파의 소유물을 차지해 얻는 후생보다 작다고 결론 내릴 근거가 무엇인가?마지막으로, 주인공은 노파를 죽이며 범죄를 감추기 위해 노파 동생을 살해한다. 노파 동생의 죽음은 누구 책임인가? 만일 노파를 죽이는 행위가 바른 것이었다면 주인공이 이를 숨기기 위해 무고한 동생을 죽일 필요 없이 자신이 바른 행동을 하고 있음을 동생에게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죄와 벌》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을 상기시켜준다. 탐욕스러운 강남 집주인들을 벌주려는 게 부동산 정책의 원래 목적이었다는 것이 이제는 명백해졌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보유세는 올리더라도 양도세를 낮춰 주택을 팔 유인을 마련해주고, 주택 공급을 늘리라는 전문가들의 충고는 애초 전혀 소용없는 주문이었다. 서울 강남에 집을 보유한 사람들은 죄인이므로 그들을 벌하려면 강남 집에서 나온 모든 이익을 빼앗아야 한다. 집의 보유에 대해 세금을 물리고, 양도하려 한다면 양도세도 부과한다. 만일 집세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면 임대차법을 강화해 벌을 회피할 여지를 없앤다. 물론 정책 담당자들이 집세를 올린 뒤에 법을 통과시켜야 자신들이 무고한 피해자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럼 강남에 집을 소유한 것이 범죄인가? 최근 정책 담당자들의 행태를 볼 때 그들의 관점에서도 이를 범죄라고 하기에는 거북할 것 같다.만일 범죄라면 정당한 사법제도를 통해 처벌해야지 왜 세금이란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는가? 강남 집주인을 처벌하기 위해 그들이 얻은 이익을 세금으로 빼앗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옳은 일인가? 마지막으로 부동산 시장의 혼란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된 무고한 사람들은 왜 벌을 받아야 했는가?
《죄와 벌》의 주인공은 자수하지만 이는 자신의 형량을 줄이려는 계산된 사과였고 나중에야 사랑하는 여자를 통해 회개하게 된다. 그것은 매춘부인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낮춘 뒤에야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