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후 兆단위 실탄 확보…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동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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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대어' 현대엔지니어링 하반기 상장 추진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에 나서자 재계에서는 중단됐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재개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이번 상장을 통해 조(兆)단위 자금을 마련한 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계열사 지분 매입에 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를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 재개 시점이 내년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엔지니어링 정 회장 지분 11.7%
사실상 지주사인 모비스 지분
정의선 회장 0.3%만 보유
1兆 실탄으로 지분 늘릴 가능성
상속·증여 재원으로 쓸 수도
지배구조 개편은 내년 이후?
3년 前 엘리엇 반대에 올스톱
분할·합병 신중하게 접근할 듯
10兆 규모 회사 상장된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다음달 초 상장 주관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미 국내 주요 증권사를 상대로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서(RFP)를 보냈다. 상장 일정은 유동적이지만, 이르면 올 3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상장은 2019년 현대오토에버 이후 2년 만이다.IB업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를 10조원 안팎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장외거래 기준 시가총액은 8조원 수준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플랜트 사업과 건축 사업, 인프라 개발 등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다. 1974년 설립됐고, 한라엔지니어링과 현대중공업 엔지니어링센터 등을 흡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1999년 현대건설에 합병됐다가 2년 뒤 다시 분사했다. 2014년 현대엠코를 흡수합병하며 플랜트, 건축, 인프라 사업 전문 회사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매출은 7조1884억원으로 전년 대비 5.3% 늘었다. 작년 영업이익은 2587억원이다. 전년 대비 36.6% 감소했다.
멈춰선 지배구조 개편 재개될까
재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하면 정 회장은 1조원대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11.7%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 최대주주는 현대건설(38.6%)이다. 현대글로비스(11.7%)와 기아(9.4%), 현대모비스(9.4%), 정몽구 명예회장(4.7%) 등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이 전체 지분의 약 90%를 갖고 있다.경제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 현대모비스 지분을 0.3%만 보유하고 있다”며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거나 상속·증여에 필요한 재원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올해 말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도 지배구조 개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개정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인 상장사에서 20% 이상인 상장사로 확대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29.9%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이 회사 지분 10% 이상을 연내 매각해야 한다. 재계에서는 지분 매각을 통해 오너 일가가 1조원 가까운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차례 무산…서두르지 않을 것” 관측도
현대차그룹은 2018년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다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등의 반대에 밀려 중단한 적이 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모듈 및 애프터서비스(AS) 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을 그룹 지배회사로 두는 개편안을 내놨다. 시장에서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 및 합병 비율에 대해 이견이 많았다.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재개하더라도 3년 전과 크게 방향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대모비스를 지배구조 정점에 두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 합병 또는 분할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다만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연내 재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미 한 차례 시도가 무산된 상황이라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는 이유다. 또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미래자동차 시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도병욱/전예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