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 단종은 누구를 닮았나…'어진 제작에 숨겨진 비밀'

태조의 골상에 왕위 찬탈한 숙부 세조의 유순한 용모로 재탄생

"'조선 비운의 왕' 단종은 과연 누구를 가장 많이 닮았을까. "
조선 6대왕 단종의 어진이 14일 일반에 공개되면서 태조 이성계의 무인다운 골상에 왕위를 찬탈한 숙부 세조의 유순한 용모로 재탄생한 어진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도 화제다.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莊陵)에 봉안된 단종 어진은 '머루진상도'다. 이 그림은 1927년 이규진이 불교 탱화기법으로 그린 것으로 수라리재에서 흰말을 타고 태백산 신령이 되어가는 단종에게 추익한이 머루(다래)를 바쳤다는 전설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훼손된 것을 1960년대 김기창 화백이 복원했다.

2009년 김호석 화백이 단종 어진 반신상이 제작됐으나 역시 표준영정은 아니다. 최명서 영월군수는 이날 강원도청 브리핑룸에서 "'머루진상도'는 단순 상상도이고, 또 다른 단종 어진이 혼재해 있어 표준영정으로 어진을 제작해야 한다는 시급성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이에 올해로 제54회째 단종문화제를 이어가는 영월군은 2019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선현 영정 제작 심의 신청서를 제출하고 어진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후 제작 기간만 1년, 준비기간까지 포함해 꼬박 2년여 만에 권오창 화백에 의해 단종 어진이 탄생했다. 이 어진은 지난 1일 국가표준영정 제100호로 공식 지정됐다.

권 화백은 "단종 어진이 그려졌다는 기록은 실록에 없다"며 "어진 제작을 시작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과연 단종은 누구를 가장 많이 닮았을까 하는 점이었다"고 밝혔다.

제작에 앞서 실록에 나타난 용모 기록과 당시 복식 연구에 나선 권 화백은 국보 317호인 태조 어진 용안에서 무인의 골상에 영감을 얻었다.

여기다 2016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표한 세조 어진 초본 용안을 어렵게 찾아낸 권 화백은 태조의 각진 얼굴 골격에 세조의 둥그스름한 모습을 참조해 단종의 용모를 그려냈다.

결국 비운의 왕 단종 어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한 숙부 수양대군 즉, 세조의 얼굴이 스며들어 있는 셈이다.

권 화백은 "지금까지 태조 어진만 7점을 그렸기 때문에 무인의 풍모가 있는 태조의 용모를 기본 골상으로 삼았다"며 "가장 가까운 혈육인 세조의 어진 초본에 나타난 유순한 모습의 골상을 참고해 단종의 용모를 그려냈다.
단종은 세종 30년인 1448년 8세에 왕세손에 책봉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이어 15세 때인 1455년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했다.

권 화백은 어진의 추사(追寫) 시기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단종이 상왕으로 있을 때인 15세 때 모습과 노산군으로 강봉 된 17세 때의 모습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며 "결국 총기 있는 왕 다운 풍모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15세 때 모습으로 추사했다"고 밝혔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 왕의 어진은 도사(圖寫) 후 모사(模寫)된 태조 어진, 영조 어진, 불에 탄 채 발견된 철종 어진 단 3점뿐이다. 이번 단종 어진 제작은 어진뿐만 아니라 오봉병, 의궤, 반차도가 함께 제작됨으로써 어진 제작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