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그 고운 발, 다시 한 번 만져보고 싶네

참 예쁜 발
고두현

우예 그리 똑 같노. 하모, 닮았다 소리 많이 듣제.
바깥 추운데 옛날 생각나나.
여즉 새각시 같네 그랴.

기억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아들 오빠 아저씨 되어
말벗 해드리다가 콧등 뜨거워지는 오후.
링거 줄로 뜨개질을 하겠다고
떼쓰던 어머니, 누우신 뒤 처음으로
편안히 주무시네.

정신 맑던 시절
한 번도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
가지런하게 펴고 무슨 꿈 꾸시는지
담요 위에 얌전하게 놓인 두 발
옛집 마당 분꽃보다 더
희고 곱네. 병실이 환해지네.---------------------------


병실에 도착해서 처음 들은 말이 “어쩌믄 이리 닮았누. 꼭 우리 아덜 같네”였습니다. 독한 약과 주사에 지친 탓이라 생각은 했지만, 아들까지 못 알아보시다니 명치끝이 아릿해 왔습니다. “접니다. 어머니” 하고 거듭 말씀드렸는데도 계속 딴소리만 하셨지요.

나중에는 “오빠” “아저씨”라는 호칭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렇게 사오정 같은 대화가 몇 번 오갔지요. 기가 막히고 억장 무너지던 기분이 차츰 가라앉고 나자 저는 어머니의 ‘오빠’가 되고 ‘아저씨’가 되어 함께 맞장구를 치며 놀았습니다. “하모, 닮았단 소릴 많이 듣제. 오늘은 새각시 같네 그랴….”

그러면 어머니는 정말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으셨습니다. 점심 때쯤엔 병원 복도까지 들릴 정도로 함박웃음을 터뜨렸지요. 어머니는 임파선 암을 앓았는데, 암세포가 뇌를 건드려서 가끔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곤 했습니다.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제 손을 포개 잡고는 흐뭇해 하셨지요. 그러다가 뜨개질을 한다며 링거 줄을 이리 감고 저리 풀곤 하셨습니다.

당신의 일생을 필름처럼 되감아 보는 중이었을까요. 일흔네 해의 생애가 한 편의 비디오로 재생되는 동안 병실에서는 몇 번의 웃음꽃이 피고 눈물바다가 이어지고 또 소꿉놀이가 계속됐습니다. 오후 들어 햇살이 따뜻해지자 어머니는 낮잠에 드셨지요. 담요 위에 두 다리를 가지런하게 펴고 잠든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습니다. 정신 맑은 시절에는 한 번도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 평생 가난 속에서 혹 사람 도리 못할까 가슴 졸이며 헤쳐 온 굽이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머니는 행여 ‘애비 없는 자식’ 소리 듣지 말라고 각별히 당부하셨지요. 그러면서 발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습니다.

제가 자란 남해는 섬이어서 쌀도 귀하고 돈도 귀했습니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객지 공부를 시키면서 어머니의 발톱은 얼마나 많이 닳았을까…. 삶의 끝자락에 누우신 뒤 처음으로 편한 잠 주무시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저는 병실 창가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공연히 콧등이 시큰해져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다보니 아, 무슨 꿈을 꾸는지 어머니가 가뭇가뭇 웃으셨습니다. 저도 따라 웃다가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발을 살며시 만져보았지요. 햇살을 받아 눈부신 두 발이 옛집 마당가의 분꽃보다 더 희고 고왔습니다. 그 환한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저는 침대 발치에 엎드려 시를 썼습니다. 어머니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더욱 생각나는 어머니. 오늘 그 예쁜 발을 다시 한 번 만져보고 싶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