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코로나 백신여권' 도입 초읽기…안전하고 효과 있을까?

블록체인 기반 백신여권 개발 완료
미접종자 차별, 표준화 문제 풀어야

변이 바이러스, 감염 전파 우려 여전
"해외여행은 집단면역 형성 후 가능"
"뒤바뀐 일상생활 복귀 효과 클 것"
사진=블록체인랩스 홈페이지
백신여권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14일 정부와 개발회사 등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정부의 백신여권 프로그램은 개발이 완료된 상태로 알려졌다. 당장 서비스를 시작해도 될 정도로 완성도를 갖춘 상태라는 설명이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4차 대유행 위기만 잘 넘긴다면 예정대로 이달 안에 백신여권이 도입될 것으로 여행업계와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백신여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실을 증명하는 디지털 방식의 인증서다. 모바일 앱과 QR코드 등을 이용한 전자문서 형태가 일반적이다. 현 시점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최선의 의료적 조치인 백신접종 여부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일상을 되돌리고 국경폐쇄 조치를 부분적으로나마 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백신여권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희망섞인 기대가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큰 상황. 상용화와 표준화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곧 출시를 앞둔 정부 백신여권의 특징과 도입에 따른 기대와 우려를 짚어봤다.

블록체인랩스 백신여권 기술 무상 제공

정부가 개발을 마친 백신여권 프로그램의 정확한 명칭은 '코로나19 예방접종 인증 시스템'이다. 질병관리청이 개발과 도입을 추진하면서 '여권'이라는 표현은 빠졌다. 국경을 통과할 때 쓰이는 국제 신분증인 여권은 관할부처가 법무부와 외교부이기 때문이다. 인증서가 여권으로서 기능을 하려면 국가 간 협약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명칭에서 여권이라는 표현은 제외됐지만 기능은 여권과 동일한 수준이다. 이름과 생년월일, 국적, 여권번호 등 입국과 출국 시 필요한 개인정보를 담고 있다. 전용 모바일 앱에 전자문서 형태로 저장된 개인별 백신접종 기록을 QR코드 스캔을 통해 불러오는 방식이다. 접종여부는 접종 시기와 횟수, 접종 국가와 기관, 백신종류(제조사)가 고유번호(로트번호)를 필수 정보로 제공한다. 이름과 생년월일과 국적은 필요에 따라 쓰는 추가정보로 분류돼 있다. 정부의 백신여권 프로그램은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 블로체인랩스가 무상으로 관련 기술을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자체 개발한 '인프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국내 의료용 대마 관리 및 유통사업을 맡고 있다. 인프라 블록체인은 가상자산(암호화폐)을 발행하지 않고 누구나 이용가능한 퍼블릭 블록체인 구조로 운영이 가능해 공공서비스에 최적화된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엄지용 블록체인랩스 대표는 "현재 리눅스재단을 비롯해 여러 국가들로부터 블록체인 기반 백신여권 개발 관련 기술제휴 요청을 받은 상태"라며 "정부 측에 관련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한 것은 블록체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 블록체인랩스는 백신여권을 통해 어떠한 암호화폐 거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입을 앞둔 백신여권 '코로나19 백신접종 인증 시스템' 모바일 앱 페이지 / 블록체인랩스 홈페이지

개인정보 유출, 미접종자 차별 우려

개인 의료정보 유출, 미접종자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은 백신여권 개념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제기된 문제다. 미국 텍사스주 그랙 애보트 주지자는 "일상생활을 위해 개인의 건강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며 백신여권 도입에 반대했다. 미국 플로리다 걸프코스트대 제이스 램지 교수도 "개인의 건강정보가 단긴 백신여권이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와 텍사스주는 조례 제정을 통해 아예 백신여권 도입을 제도적으로 금지했다.

블록체인랩스는 블록체인 기반 백신여권은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사용이력이 서버에 남지 않아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보호한다는 입장이다. 분산신원증명(DID) 기술을 이용해 데이터를 중앙서버에 두지 않고 암호화해 분산 저장해 놓았다가 원하는 정보만 불러내는 방식이라는 것.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와 세계경제포럼(WEF) 커먼프로젝트재단, 국제상공회의소(ICC)도 백신여권 프로그램에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체인랩스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인증 외에 성인 인증 등 여러 목적의 인증 시스템으로 사용이 가능하고, 기술 호환성이 높아 해외에서도 인증서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정보보안 문제와 별개로 미접종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백신여권이 풀어야 할 또다른 숙제다. 많은 전문가들은 특정 계층과 인종 더 나아가 국가 간 차별을 초래해 새로운 사회경제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마크 에클스턴 영국 킬대 법학과 교수는 "백신접종이 가능한 고소득자나 선진국만 해외여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차별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론 데산티스 미국 플로리다주지사는 "백신여권이 시민을 두 종류로 갈라놓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관광여행협회(WTTC)는 백신접종을 전제로 한 백신여권은 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내놨다. 영국 정책자문기구인 평등인권위원회, 독일 윤리위원회도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리아 구에바라 WTTC 회장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이나 전 연령대가 백신을 접종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백신 미접종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WHO "백신 접종자도 바이러스 전파 가능"

한국을 비롯해 유럽과 일본, 중국 등 여러 국가들이 백신여권 도입에 나서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백신의 효능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접종 사실만으로 방역을 완화하는 것은 성급한 조치라는 게 의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제이 바트차랴 스탠포드대 의대 교수는 "백신여권은 국민 건강을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중보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백신여권 도입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냈다. 백신이 접종자의 감염 가능성을 낮추고 감염자가 중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지만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이유에서다. WHO는 "현재 공급 중인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에 얼만큼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백신여권은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때문에 영국은 백신 접종자라 할지라도 입국과 출국 최소 이틀 전에 반드시 PCR(유전자증폭)검사를 받도록 했다. 다음달 백신여권 도입을 예고한 영국 정부는 여행지를 3개 등급(녹색·황색·적색)으로 나누고 입국과 출국 전 그리고 귀국 후 2일과 8일째 진단검사를 의무화했다. 그랜트 샵스 영국 교통부 장관은 "백신 보급으로 어렵게 얻은 성과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여행을 재개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사진=블록체인랩스 홈페이지

해외여행은 집단면역 형성된 이후 가능할 것

백신여권이 도입되더라도 해외여행 재개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백신접종이 중증 감염 우려가 높은 고령자와 의료계 종사자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접종률도 2% 수준으로 낮기 때문이다. 현재 접종 중인 백신의 효과 지속기간, 변이 바이러스 억제 효과 등이 입증되기 전까지 해외여행 재개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가별로 제각기 추진 중인 백신여권 프로그램을 어떻게 표준화하고 인증 정보를 서로 신뢰할 것인지도 해외여행 재개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 약 36억명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고 11억명 이상이 공식적인 신원 증명이 불가능하다. 디지털 방식의 백신여권 상용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메리 세브란스 듀크대 의대 박사는 "백신여권이 국제적으로 실용적인 도구가 되기 위해선 현재의 여권 시스템과 같은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표준화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행업계에선 백신여권 소지자에 대한 14일 격리조치가 완화되면서 해외여행이 부분적으로나마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아웃바운드 여행사 대표는 "입국비자 등 사증제도의 기본 원칙이 국가 간 상호주의인 만큼 백신여권 소지자에 대한 비격리 입국이 허용될 경우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해외여행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 등 자국에서 생산한 백신을 접종한 국가의 백신여권을 인정할 것인가도 문제다. 백신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이를 둘 경우 외교 갈등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강윤식 경상대 예방의학과 교수(한국관광공사 안심관광지 방역자문위원)는 "이스라엘과 영국 등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들 사례에서 보듯이 인증서는 일상생활 복귀 측면에서 효과가 더 빠르고 클 것"이라며 해외여행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집단면역이 어느정도 형성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정부는 올 9월까지 국민 70%가 백신접종을 마친다는 전제 하에 11월이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지난 6일 "아무런 사회적 논의와 견제, 감시 없이 정부가 국민들 모르게 기술을 개발한 백신여권 도입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현재 8200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