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장만의 꿈이 신기루라면 텐트살이는 판타지일까…한계효용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소의 선택

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45) 소공녀 (下)
2018년 개봉한 ‘소공녀’는 고전 소설 《소공녀(A little Princess)》와 달리 젊은 가사도우미 미소(이솜 분)의 고달픈 삶을 그린 영화다. 몇 푼 안 되는 일당에도 담배 한 갑과 몰트바에서의 위스키 한 잔을 즐기던 미소는 갑작스레 월세와 담뱃값이 오르자 최소한의 짐만 싸서 나와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산다. ‘에쎄’를 500원 더 싼 ‘디스’로 바꾸면서도 담배 또한 놓지 못한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소비를 비교하면서 ‘한계소비성향’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한계소비성향이란 추가로 발생한 소득 중 소비되는 금액의 비중을 뜻한다. 저소득자일수록 한계소비성향이 크다고 케인스는 정의한다. 늘어나는 소득이 생필품이나 식음료를 사는 데 곧장 지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고소득자는 증가한 소득의 상당액을 저축하거나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소득이 많은 사람은 자산이 더 빨리 늘어나게 된다.

경제학 법칙 무너뜨린 부동산 폭등

그러나 케인스도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케인스는 한계효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경제 주체가 소비를 늘리는 요인으로 △자산 증가 △물가 하락 △이자율 감소 △미래 소득 증가 등을 들었다. 이 같은 요인이 맞아떨어질 때 개인이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는 설명이다. 미소의 삶에는 이들 중 어떤 것도 없다. 집이 없으니 자산이 증가할 일은 없다. 물가는 해마다 오르고 비정규직인 가사도우미 월급도 크게 늘 리 없다. 그래도 미소는 마지막까지 담배 한 개비에 몰트 위스키 한 잔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미소가 ‘현재의 소비’를 택한 건 아등바등 살아봤자 자신의 힘으로 ‘집’이라는 자산을 얻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근 사회적 흐름으로 대두된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문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차피 열심히 돈을 벌어도 집을 사기는 어려우니 차라리 포기하고 현재를 즐기겠다는 태도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 등도 그런 일환이다. 부동산 폭등 때문에 경제학 법칙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된 셈이다.

천정부지 집값에 청년들의 좌절감은 커져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은 웹툰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 “5000만원을 벌어 돌아와 집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영화에서 그는 더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한솔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둘은 새 집에서 행복하게 재회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집값이 그 사이 천정부지로 더 올랐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2014년이다. 국내 부동산 가격은 2014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오름세를 보였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이 계기였다. 현 정부 들어서는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 2017년 6월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KB부동산시세 기준)은 3.3㎡당 1967만원에서 2019년 12월 2845만원까지 올랐다. 2년 반 만에 44.6%나 급등했다.
정부가 각종 규제를 쏟아내는데 부동산 가격은 왜 계속 오르는 걸까. 정부는 대출을 조이고 조세 부담을 높이는 방식으로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대책을 통해 <그림>의 주택 수요 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 경우 부동산 가격은 떨어진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의 약발은 매번 ‘반짝 효과’에 그쳤다.

공급을 늘리지 않은 채 수요만 억제하는 방식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초과이익환수제 등으로 재건축·재개발을 억제하고 있다. 서울시는 재건축 때 층수 제한도 강화했다. 이 때문에 공급은 계속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내집 마련’을 하고자 하는 수요는 줄지 않았다. <그림>에서 수요 곡선은 정부의 기대와 달리 반대로 이동했다.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공급 곡선만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가격은 더욱 오른 것이다.세금 인상은 다른 부작용까지 수반한다. 집주인이 세금 상승분을 고려해 전·월세 가격을 올려 세입자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 그런 사례다. 경제학원론에서는 이를 ‘조세부담의 귀착’이라고 부른다. 수요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더 걷는 정책이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솔의 ‘내집 장만’의 꿈도 신기루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약속대로 5000만원을 벌어왔다고 하더라도 단칸방 전세조차 들어가기 어려운 금액이기 때문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를수록 청년들의 좌절감은 그만큼 커진다. 이들에게는 영화보다 영화 밖 현실이 어쩌면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텐트 속에서도 포기 못할 기호품 소비…판타지일까

영화 속 미소는 결국 친구들의 집을 영영 떠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소는 한강변에 텐트를 치며 산다. 텐트 속에서 백발이 된 채 서울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텐트를 전전하면서도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못하는 미소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다. 그러나 현실의 청년들에게는 잡지도 못할 만큼 오른 서울 집값 역시 판타지이긴 매한가지일 듯하다.정소람 한국경제신문 기자 ram@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새로 증가한 소득 중 소비에 쓰인 비율을 뜻하는 한계소비성향이 물가가 상승하는 시기에 더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②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리는 등 수요를 억제하는 방안과 신축 아파트 등 공급을 늘리는 방안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까.

③ 내 집 마련이나 노후 보장 등을 위해 저축하는 것, 현재에 만족하는 소비 및 작은 사치 등 두 선택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의 성향에 더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