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미국 주도 글로벌 법인세 개편, 한국도 동참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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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기업에 대한 국제 과세 체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형 카드를 꺼내들었다. 내용은 두 가지다. 다국적 기업 법인세를 매출이 발생한 곳, 즉 영업·수익 활동이 일어난 곳에 내도록 하자는 게 하나다. 지금까지는 대개 본사가 있는 곳에서 법인세를 내므로 많은 다국적 기업이 세 부담이 적은 곳으로 이동하는 요인이 됐다. 다른 하나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 촉구다. 각국 정부가 연대해 법인세를 일정 세율 이상으로 받자는, 일종의 정부 간 담합을 제안한 것이다. 둘 다 기업 이익에 대한 과세, 즉 법인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세금 부담은 기업의 투자와 직결되고, 일자리 문제로 귀결된다. 세계적인 투자 유치 대전, 일자리 전쟁에서 미국이 앞서 나간 것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지출한 지원금에 대한 정부의 청구서가 발급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세금은 국방만큼이나 개별 국가의 고유한 주권사항이다. 그러면서도 세금은 국제사회 양자 간 혹은 다자간의 조세협약과 상호주의 원칙 등에 따른 변수도 많아 주권국가라고 해서 한 국가만 완전히 따로 갈 수는 없다. 국방에 동맹, 전략적 제휴가 있는 것과 비교할 만하다. 미국 제안에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찬성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국 주도 법인세제 개편에 한국도 적극 동참해야 할까.
[찬성] 바이든 정부의 계획 외면 어려워…'포스트 코로나' 재원도 필요
무엇보다 새로운 형태의 ‘미국 우선주의’ 전략을 외면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미국 주도의 정책, 더구나 새로 출범해 힘이 잔뜩 실린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에 우리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더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요 대기업은 이미 다국적 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어 미국이 작정하고 나선 이번 정책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자칫 잘못되면 기업의 경영전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바이든 정부는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행 21%인 법인세를 28%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한 적 있다. 일단 이 방향으로 가거나, 이른바 ‘국가 간 법인세 평준화’ 구상에 따라 최저 법인세율이 현재 13%에서 21%로 간다 해도 한국에 바로 미칠 영향은 크지 않기도 하다. 한국은 이미 2018년 법인세 최고 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려놓았고, 여기에 붙는 지방소득세(지방자치단체가 별도로 걷는 법인세의 10%)를 합치면 27.5%에 달한다.그 결과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2위였던 한국의 법인세율은 2020년 9위로 올라간 상태다. 법인세율 인상이든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국가 제휴’든 미국 주도의 법인세 개편에 동참해도 당장 별다른 손해는 없는 형편이다. 다만 투자세액공제 등 세금 감면 프로그램과 투자에 따른 지원금의 계산과 포함 여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영업 발생지에서 법인세 징수는 ‘디지털세’ 논란 때 이미 나왔던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주로 다국적 빅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한국 기업계에 미칠 영향은 충분히 계산하고 그에 따른 치밀한 대응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법인세 인상 논의를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재원과 급증하는 복지예산 마련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접근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반대] 무조건 찬반보다 신중하게 국익 계산 중소기업 실효세율 높아질 수도
미국의 제안에 무조건 찬성이나 반대하기보다 신중한 행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무조건 반대하는 것만큼이나 무턱대고 찬성하며 앞장서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미국발 법인세 흔들기는 전 세계적으로 산업과 투자, 일자리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미국 의도대로 국제 공조가 조기에 원만하게 이뤄진다면 세계 조세제도는 새로운 틀에 들어서는 것이 된다.법인세 최저세율에 글로벌 기준을 세우자는 것도 이것만 따로 가는 사안이 아니다. 소득이 발생하는 곳에서 과세하자는 제안과 함께 가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공식(법률상) 법인세율을 보면서 미국 제안 선보다 높으니 안전하다는 식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처럼 국내 매출이 해외에서의 매출과 비교가 안 되는 기업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글로벌 사업장과 해외 매출이 많은 기업들로서는 생산과 판매 전략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대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중요한 움직임에 무턱대고 서명했다가 그 후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두 제안이 동시에 가든, 차례대로 일정 로드맵에 따라 따로 가든 수출에 기대는 한국의 기업, 한국 경제에는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해진다. 한국의 법인세율이 대기업에는 세율 그대로 높지만 중소기업에는 실효세율(13.4%)이 낮은 점도 대응 전략이 필요한 부분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예외 조치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국내 중소기업은 세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의 법인세제 개편에 독일·프랑스 재무부가 환영 의사를 밝혔고, 경제 관련 국제단체도 찬성하고 나선 것은 모두 사전협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게 협의 대상이 될 수 있나. 협의에 동참하더라도 한국 기업의 이익을 충분히 따져보고, 국가적 손익을 제대로 계산한 뒤에 우리의 요구 조건을 명확히 하면서 해나가야 한다. 국가 이익을 지킬 지혜가 절실하다.
√ 생각하기 - '반도체 대전' '글로벌 조세전쟁' 동시 진행…정부 역량 평가될 것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서 출발한 ‘반도체 세계대전’이 펼쳐지는 와중에 ‘글로벌 조세전쟁’이 불거질 조짐이다. 수익을 내는 곳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지적에서, 또 조세피난처에 본사를 두면서 이익 규모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낸다는 비판에서 나온 ‘디지털세’가 법인세에 대한 정부 간 공동 대응으로 전선이 확대됐다. 구글 등 다국적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디지털세 부과 논의가 유럽 쪽에서 나온 지도 한참 됐지만, 그동안 한국 정부가 치밀한 대응을 준비해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법인세 문제에서 ‘최저 세율 설정, 공동 인상’을 제안한 미국의 행보를 보면 유럽 주요국 및 경제 관련 국제기구와 협의도 상당히 진행된 게 확실하다. 이래저래 힘겨운 환경 변화다. 조세는 기업 경영에 매우 중요한 요인 변수이지만, 개별 기업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국제 조세에서는 특히 정부의 역량이 중요하다. 세금에서 정면 대응이 안 된다면, 다른 산업규제의 개선 등으로 난관 극복을 우회할 수 있다. 고용과 노동 제도의 개혁도 그런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