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는 흰 꽃잎만…눈물 속 세월호 7주기 선상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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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해역 마주하자 유족 오열…"꿈에서라도 나와줬으면""우진아 사랑해!" "보고 싶어!" "꿈에 자주 나와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에서 남쪽으로 약 3.3㎞ 떨어진 곳. 꼭 7년 전 이날 생때같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스러져간 사고해역을 찾은 부모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세월호 참사 7주기가 된 16일. 새벽부터 경기 안산에서 출발한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유가족 22명은 목포해경이 준비한 3015 경비함을 타고 세월호가 침몰한 시각에 맞춰 오전 10시 30분부터 선상추모식을 진행했다.
유가족들은 3015함 탑승이 시작된 오전 7시께만 하더라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해경 전용부두를 출발하고 약 96㎞ 항로를 이동해 사고해역에 도착할 즈음에는 흰 장갑이 눈물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고(故) 이호진군 아빠이자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대변인인 이용기(52) 씨는 추모사에서 "오늘은 특별한 게 우리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던 요일도 겹치고 날씨도 사고 난 날과 비슷하다"며 "목이 메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이씨는 이어 "세월호는 진실규명이 하나도 되어있질 않고 아직도 진행형"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하루속히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추모식 진행을 맡은 이씨가 단원고 2학년 25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동안 유족들은 세월호 사고지점에 떠 있는 부표를 응시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곧이어 헌화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유족들은 경비함 갑판 난간에 붙어 국화꽃 한 송이를 쉽사리 던져버리지 못하고 꼭 쥐고 있다가 끝내 던지고선 꽃잎이 파도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 이들은 차가운 물 속에서 숨이 꺼져갔을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바닷속으로 연신 "사랑해"를 외쳤다.
일부 유족들은 갑판에 주저앉아 오열했고, 서로를 위로하듯 어깨를 토닥여주고 안아주기도 했다.많은 부모가 헌화를 마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세월호 침몰 장소를 바라봤다.
이날 선상추모식에는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단식을 한 '유민아빠' 김영오(53)씨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3년 전 광주에 정착한 김씨는 선상추모식 참석이 이날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속에 유민이가 느껴져 사고해역을 가까이서 보는 게 두려웠는데 유민이가 언제부턴가는 꿈에도 나오질 않아 오게 됐다"며 "여기 와서 보면 유민이 생각이 더 나고, 생각을 더 하면 꿈에라도 나와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가 침몰한 지 7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의혹으로만 남아있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권이 바뀌면 세월호 진상규명이 어마어마하게 힘들어질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고 박정슬 양의 외할아버지 장모(67)씨는 아내와 함께 외손녀의 7주기를 배 위에서 맞았다.
장씨는 "지금도 (손녀딸이) 잊히질 않고 같이 있는 것 같다"며 "꿈에라도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지윤 양의 아버지 박영배(59)씨는 "딸이 가끔 꿈에 나타나는데 위험한 데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없어지고 그러다가 깨곤 한다"며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를 위해 선상추모 배에 탄 완도 주민 김모(44)씨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가 미비했던 것 같다.
참사가 날 때까지 말 그대로 (승객들을) 내버려 둔 것 아닌가"라고 정부의 구조 대응을 지적하며 "단원고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같이 뛰어놀던 아이들인데 지금도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은 사고해역을 배로 한바퀴 선회한 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앞에서 다시 추모식을 열었다.
7주기를 맞아 선체 견학을 온 일반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유족들은 선상추모식때와 달리 담담하게 세월호를 주변을 둘러봤다.
피해자들의 심리 안정을 돕는 안산온마음센터 관계자는 "유족들이 사고해역은 자주 못 가지만 배는 선체조사위원회 때도 그렇고 자주 봐서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아라양 아버지는 녹 덩어리가 된 배를 둘러본 뒤 "아이가 사고 당시 저 배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연합뉴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에서 남쪽으로 약 3.3㎞ 떨어진 곳. 꼭 7년 전 이날 생때같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스러져간 사고해역을 찾은 부모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세월호 참사 7주기가 된 16일. 새벽부터 경기 안산에서 출발한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유가족 22명은 목포해경이 준비한 3015 경비함을 타고 세월호가 침몰한 시각에 맞춰 오전 10시 30분부터 선상추모식을 진행했다.
유가족들은 3015함 탑승이 시작된 오전 7시께만 하더라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해경 전용부두를 출발하고 약 96㎞ 항로를 이동해 사고해역에 도착할 즈음에는 흰 장갑이 눈물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고(故) 이호진군 아빠이자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대변인인 이용기(52) 씨는 추모사에서 "오늘은 특별한 게 우리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던 요일도 겹치고 날씨도 사고 난 날과 비슷하다"며 "목이 메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이씨는 이어 "세월호는 진실규명이 하나도 되어있질 않고 아직도 진행형"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하루속히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추모식 진행을 맡은 이씨가 단원고 2학년 25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동안 유족들은 세월호 사고지점에 떠 있는 부표를 응시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곧이어 헌화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유족들은 경비함 갑판 난간에 붙어 국화꽃 한 송이를 쉽사리 던져버리지 못하고 꼭 쥐고 있다가 끝내 던지고선 꽃잎이 파도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 이들은 차가운 물 속에서 숨이 꺼져갔을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바닷속으로 연신 "사랑해"를 외쳤다.
일부 유족들은 갑판에 주저앉아 오열했고, 서로를 위로하듯 어깨를 토닥여주고 안아주기도 했다.많은 부모가 헌화를 마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세월호 침몰 장소를 바라봤다.
이날 선상추모식에는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단식을 한 '유민아빠' 김영오(53)씨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3년 전 광주에 정착한 김씨는 선상추모식 참석이 이날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속에 유민이가 느껴져 사고해역을 가까이서 보는 게 두려웠는데 유민이가 언제부턴가는 꿈에도 나오질 않아 오게 됐다"며 "여기 와서 보면 유민이 생각이 더 나고, 생각을 더 하면 꿈에라도 나와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가 침몰한 지 7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의혹으로만 남아있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권이 바뀌면 세월호 진상규명이 어마어마하게 힘들어질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고 박정슬 양의 외할아버지 장모(67)씨는 아내와 함께 외손녀의 7주기를 배 위에서 맞았다.
장씨는 "지금도 (손녀딸이) 잊히질 않고 같이 있는 것 같다"며 "꿈에라도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지윤 양의 아버지 박영배(59)씨는 "딸이 가끔 꿈에 나타나는데 위험한 데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없어지고 그러다가 깨곤 한다"며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를 위해 선상추모 배에 탄 완도 주민 김모(44)씨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가 미비했던 것 같다.
참사가 날 때까지 말 그대로 (승객들을) 내버려 둔 것 아닌가"라고 정부의 구조 대응을 지적하며 "단원고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같이 뛰어놀던 아이들인데 지금도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은 사고해역을 배로 한바퀴 선회한 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앞에서 다시 추모식을 열었다.
7주기를 맞아 선체 견학을 온 일반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유족들은 선상추모식때와 달리 담담하게 세월호를 주변을 둘러봤다.
피해자들의 심리 안정을 돕는 안산온마음센터 관계자는 "유족들이 사고해역은 자주 못 가지만 배는 선체조사위원회 때도 그렇고 자주 봐서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아라양 아버지는 녹 덩어리가 된 배를 둘러본 뒤 "아이가 사고 당시 저 배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