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째 틈만 나면 파업"…노조에 발목 잡힌 르노삼성차 [김일규의 네 바퀴]

노조, 한 달째 틈만 나면 파업
강성 집행부, 2년 간 575시간 파업 주도
중도·실리 노조원 "파업의 결과가 뭐냐" 반발
사진=연합뉴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으로 현대자동차, 기아, 한국GM,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차질을 빚는 가운데 '다른 이유'로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있다. 르노삼성차다. 이 회사는 한 달째 틈만 나면 파업을 벌이는 노동조합에 발목이 잡혔다.

○파업하자는 강성 노조 집행부

19일 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 16일 간부 중심으로 또 8시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지난달부터 한 달째다. 노조는 잔업과 특근마저 거부하고 있다. 아직도 끝내지 못한 작년 임금·단체협상에서 투쟁을 통해 기본급 인상 등을 완전(?) 쟁취하겠다는 게 노조 집행부의 지침이다.르노삼성 노사 간 갈등은 올 들어 더 심해졌다. 작년 판매 대수와 생산 물량이 모두 2004년 이후 1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고, 8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회사가 지난 1월 '생존 계획'을 수립·시행하면서다. 내수 수익성 강화, XM3 수출 통한 부산공장 경쟁력 입증, 희망퇴직 등이 주요 내용이다.

노조는 파업 카드로 맞섰다. 2월 들어 파업 찬반투표를 벌여 파업권을 확보했다. 파업 찬성률은 57.1%로 역대 최저였지만, 어쨌든 무기를 가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회사 사정은 더 악화됐다. 사측은 3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부산공장을 2교대에서 1교대 체제로 전환하고, 생산직 200여 명에 대해 순환휴직을 실시하기로 했다. 휴직이라고 월급을 못 받는 것은 아니다. 사측은 휴직자에 대해서도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기로 했다.그럼에도 노조는 결국 파업을 실시했다. 결과는 참담하다. 1분기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6.4% 늘었지만, 내수가 34.3% 급감하면서 총 판매는 22.3% 감소했다.

○'무조건 싸우자'에 반대하는 노조원

르노삼성 노조가 처음부터 강경 성향이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6년 간 보면 2015~2017년은 분규가 없었다. 시작은 2018년 12월 강성 집행부가 들어서면서다.

현 노조위원장은 당선되자마자 부분파업을 주도했고, 2019년엔 전면파업까지 합쳐 총 39일, 380시간 파업을 벌였다. 작년엔 총 14일, 195시간 파업을 실시했다. 현 집행부 이후 생산 손실만 3만 대를 넘어섰다.르노삼성 노조는 그 사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도 시도했다. 그나마 노조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노조원들이 강성 투쟁 일변도의 집행부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중도·실리를 주장하는 노조원도 늘고 있다. 한 노조원은 "무조건 함께 싸우자는 식이 아닌 합리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집행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조원은 "그동안 파업의 결과 아무 소득이 없었다"며 "파업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2년 간 575시간 파업의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집행부는 아직 다른 목소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모습이다. 지난 2월엔 노조가 파업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강성 대표 노조가 온건 성향의 소수 노조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파업 투표를 강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강성 투쟁의 결과 생각해야

강성 집행부가 통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현대차의 경우 생산직 위주의 노조에 실망한 사무·연구직 직원들이 별도 노조 설립에 나섰다. 이들의 성공을 바라는 국민도 적지 않다. '노조 때문에 현대차 사기 싫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쌍용차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 시절 강성 투쟁을 벌였다. 결과는 모두가 안다. 회사는 법정관리(회생절차)에 들어갔고, 수많은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쌍용차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탈퇴했고, 작년까지 한 번도 파업하지 않았다.

환경 규제 강화, 코로나 19 등으로 다시 법정관리가 재개됐지만, 이번엔 다르다. 쌍용차 노조는 "법정관리 개시에 따라 2009년 같은 대립적 투쟁을 우려하는 국민들이 있겠지만, 회사의 회생을 위해 노조도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르노삼성의 강성 노조 집행부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