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직원 정년 80세로 늘렸더니…가전 매장의 놀라운 변신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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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4월부터 70세까지 고용노력 의무 시행하자지난달 25일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대형 쇼핑몰 2층에 있는 대형 가전판매점 노지마 매장에는 평일이지만 가전제품을 구입하려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노지마, 판매사원 80세까지 고용해 베테랑 사원 확보
"마루타카씨, 오랫만입니다!" 20~30대가 대부분인 일반 판매사원에 비해 할아버지뻘은 돼 보이는 사토 다다시 에이스 컨설턴트는 매장에 들어서는 손님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불린 고객은 고령의 판매사원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걸 놀라워 하면서도 이내 새로 구입하려는 냉장고의 상담을 부탁했다.올해 73살인 사토 다다시 씨는 노지마 전체 판매사원 가운데 두번째 고령사원이다. 하지만 노지마의 직원들은 나이가 아니라 '에이스 컨설턴트'라는 직책 때문에 그를 우러러본다.
에이스 컨설턴트는 전국의 노지마 180개 점포, 3000여명의 판매사원 가운데 71명만 쓸 수 있는 직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판매왕이다. 냉장고와 세탁기 전문인 사토씨는 에이스 컨설턴트직을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1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일반 판매사원보다 두 배가 넘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팔았다는 뜻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토 씨는 캐리커처로 가득한 수첩부터 펼쳐보였다. 2~3년내 냉장고나 세탁기를 새로 구입할 가능성이 있는 단골고객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손수 그린 것들이다. 냉장고의 교체주기는 대략 10년, 고객이 한평생 구입하는 냉장고는 4~5대에 불과하다. 고객을 한 번 놓치면 앞으로 10년동안은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매장을 찾은 고객을 감동시키지 않고는 제품을 판매할 수 없습니다." 그가 단골고객의 이름을 불러드리는 원칙을 정한 이유다.이달부터 고령자 고용안정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근로자에게 70세까지 취업기회를 보장하도록 의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노지마는 올해부터 7335명에 달하는 전직원을 80세까지 고용해 법도 지키고 에이스 판매사원도 잡았다.
임금피크제도 도입하지 않았다. 65세 이후에도 업무 내용이 바뀌지 않는 한 급여도 유지된다.
파트타임 직원은 진작부터 정년을 없앴다. 일본은 60세부터 국민연금을 받으면 주3일 2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풀타임 정년제도를 유지해서는 베테랑 사원을 잡아두기 어렵다.
노지마는 소니, 파나소닉 등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의 파견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 점포를 운영한다. 그만큼 폭넓은 상품지식과 고객 응대 노하우를 지닌 고참 판매원은 회사의 핵심전력이다.사토 씨도 연금을 받으면서 주3일 동안 일하는 27년 경력의 판매사원이다. 오다큐백화점에서 43년 동안 일하고 정년퇴직한 가와지마 고조(67세·이온몰자마점 근무)씨와 30년 이상 레코드 가게에서 고객을 상대한 스기모토 준이치(68세·신시즈오카세노바점 근무)씨 등을 판매사원으로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정년에 구애받지 않는 노지마의 정책 덕분이다.사토씨는 45살까지 파나소닉의 냉장고 제조라인에서 일했다. 덕분에 냉장고는 부품 하나까지 빠삭하다고 자부한다. 정작 그가 내세우는 자신의 최대 경쟁력은 나이다. 2006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고가의 냉장고와 세탁기를 주로 구매하는 계층은 고령자다. 이들은 젊은 판매사원보다 같은 눈높이에서 상담할 수 있는 사토씨 같은 베테랑들을 선호한다.
젊은 판매사원들은 제품의 장점을 유창하게 설명한다. 그는 "고객의 얘기를 듣는게 우선"이라며 "그러다보면 머리 속에서 사양이 착착 정리되면서 '이 분에게 필요한 제품은 이것'하고 떠오른다"고 말했다.30년 가까이 판매사원으로 일하다보니 고객이 매장을 들어서는 순간 살지 말지도 안다고 했다. "사진을 찍거나 카탈로그 모으는 사람은 그날은 구매하지 않는다고 보면 됩니다. 부부가 같이 오거나 사이즈를 메모해서 오는 고객은 살 제품이 100% 정해져 있기 때문에 판매 가능성이 높지요."
사토씨는 "은퇴하면 곧 노화해 버리지만 젊은 사람과 섞여서 일하면 에너지를 얻는다"며 "특별히 몇살까지라는 목표는 없지만 체력이 있는 한은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풀타임 정직원 중에서도 정년을 연장한 직원이 처음 나왔다. 노지마 요코하마 본사의 IT시스템부에서 일하는 마루모토 아키히사씨는 지난 1월로 65세가 됐다.
마루모토씨는 "철야를 하면 오히려 앓았던 감기도 떨어지는 타입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는 적어도 70세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젊은 동료들과 함께 철야를 한다. 경험 면에서는 그를 따라올 직원이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 필요로 한다. 이제는 철야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35년전 회사가 급성장할 때는 잔업시간 250시간을 포함해 1개월에 450시간 일하기도 했다.
IT시스템부는 40여명의 부서원 대부분이 20~30대 젊은 직원이다. 부장과 팀장은 35세, 31세다. 마루모토씨가 자신보다 어린 부장과 일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연공서열이 엄격한 일반적인 일본의 기업에서는 정년을 채우기도 어려웠을 구조다. 그런데도 나이가 어린 상사와 오랜 기간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은 연령 격차를 느끼기 어려운 직장 문화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노지마는 업무 성격이나 부서 편성에 따라 연령에 관계없이 부장이 되기도 하고 다시 평사원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부장과 평사원을 자유롭게 오가는 인사 제도가 정착돼 있다보니 '어린 부장과 나이 많은 부서원'의 편성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시키 유카 노지마 홍보담당자는 "상하관계가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임원이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으스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마루모토씨는 "부서의 평균연령을 올리고 있지만 젊은 사람과 일하는게 정말 즐겁다"며 "미력하지만 고객과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