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디 사니? 난 특급호텔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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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특급호텔 '롱스테이' 열풍30대 중반의 싱글족 A씨는 한 달 전부터 특급호텔에서 살고 있다. 보증금 3000만원에 매월 130만원을 내던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 계약이 끝난 뒤 부터다. 새 집을 알아보던 그는 회사 근처 호텔이 내놓은 한달살기 패키지를 보고 터를 잡았다.
반값 할인 전용 라운지도 제공
재택근무 증가 '워케이션' 인기
A씨는 “보증금과 관리비 부담이 없고 청소, 세탁은 물론 피트니스센터와 사우나, 수영장 등 부대시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어 생활비 부담은 오히려 줄었다”며 “최신 시설에 환경도 쾌적해 매일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호텔 ‘한달살기’ 열풍이 서울 도심 특급호텔로 확대되고 있다. 원룸과 오피스텔을 떠나 호텔을 주거공간으로 이용하는 ‘장기투숙(롱스테이)족)’이 늘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과 출장객이 사라져 빈 객실이 많은 도심 호텔들의 롱스테이족 모시기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관광객 빈자리 채우는 롱스테이족
글래드호텔은 지난달 내놓은 한달살기 패키지 덕분에 ‘제로(0)’에 가깝던 서울 삼성동과 여의도, 마포 등 세 곳 호텔의 장기투숙 비중이 전체 객실(800개)의 10%까지 올라간 상태다. 용산 서울드래곤시티는 이비스스타일 호텔의 장기투숙 비중이 20%까지 치솟으면서 호텔 2층에 아예 장기 투숙객만을 위한 전용 라운지를 꾸몄다. 홍대 인근 3성급 호텔인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도 전체 300여 개 객실 중 5% 미만이던 장기투숙 객실이 15%까지 급증했다.서울 도심 호텔의 장기투숙 상품만 판매하는 예약 플랫폼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작년 12월 사이트를 연 관광벤처 ‘호텔에삶’은 3개월 만에 1만 개가 넘는 장기투숙 객실을 팔았다. 6개에 불과하던 판매 호텔은 20여개로 늘었다. 상반기 중 입점을 앞둔 호텔도 54곳에 달한다. 거래액이 넉 달만에 10억원을 넘어서면서 대표를 포함해 2명이던 직원은 10명으로 늘었다.김병주 호텔에삶 대표는 “이사할 집을 고르듯이 미리 객실과 부대시설을 둘러볼 수 있는 호텔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한두 달 전부터 하루 사이트 방문자가 2000명을 넘어섰고 문의도 하루 평균 100~150건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객실료 반값 할인…높아진 가성비
도심 특급호텔 롱스테이 열풍의 원인은 객실 가격이 낮아지면서 가성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글래드호텔의 한 달 장기투숙 객실료는 정가 15만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하루 6만원이다. 하루 객실료가 11만원 내외인 드래곤시티 이비스스타일,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는 40~50%, 15만원대인 몬드리안은 최대 30%, 8만원 내외인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호텔은 40%를 깎아준다. 아침식사를 포함하거나 인근 먹자골목이나 식당에서 쓸 수 있는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호텔도 있다. 장재우 서울드래곤시티 지배인은 ”장기투숙은 객실 판매가는 낮지만 주중에도 안정적으로 객실을 판매하는 효과가 커 실적은 물론 시설과 서비스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워케이션(workation=work+vacation)’ 트렌드도 롱스테이 열풍의 요인으로 꼽힌다. 김병주 대표는 ”해외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데 대한 보상심리, 출퇴근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점 때문에 20~30대는 물론 40~50대 사이에서도 호텔 한달살기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