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으로 나도 수십억 벌자"…주 2회 신용대출 받는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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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자금 2주새 17.6조 빠져 암호화폐로 대거 이동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여윳돈 2000만원으로 암호화폐 비트코인과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 몇 개를 샀다. 주식도 이름만 들으면 알 ‘국민주’가 아니면 투자를 꺼렸지만, 코인 투자로 두 달여 만에 20억원을 벌었다는 직장 동료 소식에 망설임을 접었다. 이씨는 “신용대출은 기본이고 퇴직금 담보 대출까지 받아 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도 있다”며 “쥐꼬리만 한 은행 우대금리를 챙기려 은행을 기웃기웃하느니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적금을 깨고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고 했다.
코인 계좌 트기 위해 케이뱅크 하루 6만여명씩 신규가입
신용대출도 보름새 5700억↑…2030 평균 투자액 500만원
금융당국, 또 ‘빚투’ 조짐에 은행 자금흐름 감독 강화할 듯
‘코인광풍’에 이달 케뱅 가입자 급증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케이뱅크에는 이달 들어 하루평균 6만 명이 넘는 가입자가 몰렸다.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이 동반 상승한 이달 초엔 하루 만에 10만 명이 가입하기도 했다. 일반 고객도 있지만 상당수는 암호화폐 투자자다. 신한·농협은행에도 하루평균 신규 계좌 개설이 2만 개를 웃돈다. 신규 가입자 대부분이 2030세대며, 투자금액은 평균 500만원 안팎이라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이들은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수년간 암호화폐시장을 지켜보며 ‘버티면 오른다’는 걸 학습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숫자가 많고 1인당 예치 금액도 크지 않아 향후 ‘코인 열기’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대형은행에서 자금이 빠지는 현상도 이런 ‘코인 광풍’과 무관치 않다. 5대 은행에선 예·적금이 크게 빠져나간 데 비해 케이뱅크의 수신 잔액은 지난해 말 3조7453억원에서 지난달 말 8조7200억원으로 5조원가량 폭증했다.시중은행에선 최근까지 안정세를 보였던 신용대출 잔액이 최근 다시 불어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라는 금융당국 방침에 은행들이 신용대출을 강하게 조이고 있음에도 ‘코인 빚투(빚내서 투자)’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 16일 기준 135조9602억원으로 전달 말(135조3877억원)에 비해 5725억원 증가했다. 지난달 증가분 2034억원의 두 배 이상이 보름 새 불어난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5대 은행에서만 4조8000억원이 증가했던 ‘부동산 빚투’ 국면보다는 못하지만 분명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케뱅 모니터링 강화”
코인 빚투로 신용대출이 느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자금 이동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대출 규정을 더욱 까다롭게 하는 은행도 나오고 있다. 신한은행은 16일부터 모바일 앱 신한 쏠(SOL)을 통한 비대면 직장인 신용대출을 1인당 ‘3개월간 3회’만 신청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기존에는 1인당 하루 세 번씩 대출 신청을 할 수 있었지만 제한을 둔 것이다.신한은행은 주식과 암호화폐에 단타 투자 용도로 ‘너무 자주 돈을 빌렸다 갚는’ 대출이 지나치게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올 들어 새로 계좌를 튼 소비자가 3개월여간 수십 번 돈을 빌렸다 갚은 사례도 있었다. 은행 관계자는 “빚투 신용대출 수요 때문에 생활안정자금 목적으로 대출을 내려는 실수요자가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서민용, 정책금융상품의 비대면 신청에는 횟수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금융당국도 암호화폐거래소와 제휴한 은행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케이뱅크에 암호화폐 투자 자금 이동을 고려해 고유동성 자산(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 비중을 철저히 관리해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암호화폐 열풍이 수그러들고 투자 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간다면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본인 인증 등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이용자의 계좌 개설을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만약 투자금의 급격한 대량 인출 사태가 일어난다면 규모가 작은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에 선제적 관리를 주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정소람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