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실리콘밸리 큰손, 갱단서 '조직 성공의 비밀'을 배우다

최강의 조직

벤 호로위츠 지음
김정혜 옮김 / 한국경제신문
374쪽│1만8000원

위기 속 '생존 경영' 다룬 '하드씽' 이어
기업문화 바꿔 경쟁력 키우는 법 담아
칭기즈칸서 갱단까지 롤 모델 찾아내
역사·현재 속 성공한 조직의 원칙 소개
갱단 두목 출신의 사회운동가 샤카 상고르(오른쪽)와 자리를 함께한 벤 호로위츠(왼쪽 두 번째)와 그의 아내 펠리시아 호로위츠(첫 번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상고르는 2010년 교도소에서 나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출소자의 재활을 돕는 사회운동가로 일하고 있다. 샤카 상고르 페이스북
2015년 어느 날 저녁 실리콘밸리의 한 고급 레스토랑. 온몸에 문신을 한 근육질의 레게 머리 흑인이 들어섰다. 그를 맞이한 사람은 세계적인 벤처투자자 벤 호로위츠와 그의 부인이었다. 중년에 접어든 흑인은 19년 동안 미국 미시간주의 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에도 멜라닉스라는 갱단을 이끌던 인물. 지금은 검은 세계와 손을 끊었다지만 전직 갱단 두목과 벤처투자자가 왜 한 테이블에 앉았을까.

앤드리슨호로위츠의 공동 창업자인 벤 호로위츠는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트위터 등의 기업들에 초기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큰손이다. 1999년 닷컴 버블이 붕괴하기 직전 서버 서비스업체 라우드클라우드를 설립한 그는 수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던 시기에 회사를 나스닥시장에 상장시켰다. 2007년에는 회사를 휴렛팩커드(HP)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벤처캐피털 회사를 설립해 창업자에서 투자자로 변신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그는 회사를 창업하고 키우면서 겪은 여러 경험과 자신이 투자한 회사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이렇게 쓴 글들을 바탕으로 낸 것이 2014년 출간한 그의 첫 책 《하드씽》이다. 닷컴 버블 붕괴의 위기 속에서 회사를 키워내면서 깨달은 ‘생존 경영법’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두 번째 책인 《최강의 조직》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업문화를 변화시킴으로써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다뤘다. “아무도 보는 눈이 없을 때 직원들이 행동하는 방식이야말로 그 기업의 문화”라고 그는 설명한다.

조직의 문화를 바꿔 탁월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먼저 역사와 현재 속에서 네 건의 롤모델을 찾아내 소개한다.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노예혁명을 이끈 아이티 건국의 아버지 투생 루베르튀르, 700년간 일본 사회를 지배했던 무사도, 문화적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 2015년 오프라 윈프리의 소개로 만나게 된 갱단 두목 출신의 사회운동가 샤카 상고르다.호로위츠는 이 모델들을 통해 성공하는 조직의 일반적인 원칙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조직이 추구하는 행동 원칙은 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고 간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갱단 보스가 적용한 전략을 살폈다.

이 갱단 두목은 조직원들의 행동 양식을 통일하기 위해 기존의 복잡하기 짝이 없던 행동 강령을 3개 조항으로 축약했다. 그런 뒤 조직원의 지적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매주 한두 차례 조직원을 대상으로 공부 모임을 열었다. 조직원에게 흑인 민권운동가 맬컴 엑스의 자서전과 성공학의 거장 나폴레온 힐의 책을 읽히는 갱단 보스의 모습을 통해 조직문화는 결코 리더의 말 한마디만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신 스스로 문화를 존중하고 받들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조직의 문화적 원칙을 앞장서서 지켰습니다.” 호로위츠가 갱단 보스에게 배웠던, 성공하는 조직을 만드는 리더십과 조직 문화의 첫 번째 원칙이다.역사 속의 모델들을 통해 조직문화의 근본 원칙을 살펴본 호로위츠는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답게 자신이 발견한 이 원리를 오늘날의 첨단 테크 기업들의 성공 전략을 설명하는 데 적용한다. 칭기즈칸의 문화적 포용주의가 맥도날드 역사상 최초의 흑인 최고경영자(CEO) 돈 톰슨의 경영에 어떻게 적용됐는지를 보여주는 식이다. 무사도에서 발견한 구체적인 예시의 힘은 넷스케이프의 CEO 짐 박스데일이 조직을 개혁해 나간 일화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GM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어떤 원칙에 기반해 자신들의 문화를 구축해왔는지도 생생히 다루고 있다.

호로위츠는 “제품이 월등히 뛰어나지 않다면 아무리 사내 문화가 훌륭해도 당신의 회사는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좋은 기업 문화가 반드시 탁월한 성취를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리더들이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데 역량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호로위츠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하다. “제대로 된 문화를 갖고 있지 못한 조직은 결코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