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코인 '미친 변동성'…달까지 급등한다더니 지하실 팔 기세

묻지마 투자 광풍에 아찔한 롤러코인 속출

도지코인 보름간 지켜보니…
(1) 변동성, 비트코인의 7배
(2) 머스크 띄우기만 믿고 '매수'
(3) 가치 없고 10명이 47% 보유
(4) 하루 거래대금 17兆→3兆
(5) 크게 물린 코린이 또 '존버'
사진=한경DB
“아, 미치겠네요….” 최근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해 도지코인을 1000만원어치 사들인 직장인 K씨. 23일 새파랗게 물든 시세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500원대까지 치솟았던 도지코인이 전날 300원대로 떨어지자 ‘저가매수 기회’라고 판단해 들어갔지만 하루 새 30%가 더 떨어졌다. K씨는 “주변에서 ‘버티다 보면 구조대(반등 기회)가 올 것’이라곤 하는데,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했다.

도지코인은 이달 초만 해도 한 개 가격이 100원도 안 되는, 그저 그런 ‘잡코인’의 하나였다. 그런데 13일부터 매일 30~100% 뛰더니 19일 575원까지 치솟았다. 하루 거래대금이 17조원에 달해 유가증권시장을 뛰어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요즘 도지코인의 하루 거래대금은 2조~3조원 선으로 줄었다.

비트코인이 울고갈 도지코인 변동성

짧고 굵게 끝나가고 있는 도지코인 열풍은 암호화폐 ‘묻지마 투자’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암호화폐의 대명사는 비트코인이지만, 한국인이 실제 돈을 쏟아붓는 암호화폐는 알트코인(비트코인 제외한 코인)이다. 전문가들은 “알트코인은 초보 투자자에겐 위험하다”고 경고해왔다. 사업성과 기술력이 확인되지 않았고, 몸집이 작아 작전세력에 휘둘리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더리움, 리플, 테더 등은 그나마 검증된 알트코인이지만 도지코인 등은 완전한 비주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투자자가 알트코인에 몰리는 것은 ‘한 방의 꿈’ 때문이다. 코인데스크 통계에 따르면 도지코인의 30일 변동성은 3.6으로, 비트코인(0.5)의 7.2배에 달했다.

장난 삼아 만든 ‘가치 제로’ 코인

도지코인은 2013년 소프트웨어 개발자 빌리 마커스와 잭슨 팔머가 ‘재미 삼아’ 만든 암호화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좋아한다고 해서 유명해졌을 뿐, 이 코인을 활용해 추진되는 사업은 딱히 없다.

도지코인 값이 이상과열 징후를 보인 초기부터 금융권은 물론 암호화폐 전문가들까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투자가치가 ‘0’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金)’으로 불리는 이유는 최대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돼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도지코인은 발행량이 무제한이고 지금도 1분에 1만 개 넘게 생성(채굴)되고 있다. 더구나 소유 구조의 분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까지 풀린 도지코인은 1293억730만55개에 이르는데, 이 중 47%를 상위 10명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암호화폐 전도사’로 유명한 마이크 노보그라츠 갤럭시디지털 CEO는 “도지코인은 내재가치가 전혀 없다”며 “암호화폐에 투자하려거든 도지코인이 아니라 비트코인에 해야 한다”고 했다.

‘머스크 빔’만 믿고 투자했다

2013년 출시 이후 잠시 주목받다가 잊혀져가던 도지코인을 끌어올린 것은 ‘스타 CEO’ 머스크였다.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도지코인을 칭송하는 글을 계속 올렸다. 올 들어서만 “도지코인은 대중의 암호화폐” “작은 X(아들)를 위해 도지코인을 샀다” “도지코인을 달 위에 놓을 것”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의 프로필을 ‘도지코인 전 CEO’라고 바꿔놓은 적도 있다. 머스크 효과 외에 도지코인 수요가 높아진 이유를 설명할 길이 딱히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크로스앵글은 “도지코인은 코인시장 열풍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코인”이라며 “비트코인과는 달리 실험성과 재미를 위해 운영된다”고 분석했다.

“더 큰 바보 이론의 사례로 남을 것”

데이비드 킴벌리 프리트레이드 연구원은 “도지코인의 상승은 ‘더 큰 바보 이론’의 전형적 사례”라며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가격이 오르면 금방 팔 생각으로 투자한 것”이라고 했다. 올 1분기 국내 4대 암호화폐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 새로 가입한 투자자는 249만5289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투자자 사이에 형성된 잘못된 학습효과다. ‘존버’(무작정 버티기)라는 은어로 대표되는, ‘버티면 결국 오른다’는 믿음이다. 한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 대표는 “나도 이 업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지금 시장은 솔직히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며 “금융과 부(富)에 대한 가치관이 왜곡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