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검찰총장 레이스, 상수와 변수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사진=연합뉴스
차기 검찰총장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한 지 50여일 만입니다.

애초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냐, 아니냐' 라는 구도에서 시작된 차기 총장 레이스의 상수(常數)와 변수(變數)를 정리해보겠습니다.

'피의자' 신분, 그리고 29일 후보추천위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근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사진=연합뉴스
먼저 상수값부터 보겠습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현재 피의자 신분입니다. 이 지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당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서류 위조' 사건을 수사하려던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이 지검장이 외압을 가하고 수사를 방해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당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었던 이규원 검사는 이미 재판에 넘겨져 '피고인' 신분이 됐습니다. 이성윤 지검장은 해당 의혹을 거듭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지검장의 변호인은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 지검장은 안양지청에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합리적인 지휘를 했을 뿐 부당한 외압을 가한 적 없다는 취지입니다.

해당 사건을 맡고 있는 수원지검 수사팀은 지난 17일 이 지검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9시간 가량 조사했습니다. 또한 이성윤 지검장을 재판에 넘기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대검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성윤 지검장이 피의자 신분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상수값입니다. 검찰 안팎에서는 "피의자 신분의 검찰총장을 세우는 것은 정부로서도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다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3일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으니 대통령의 국정철학과의 상관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상수값은 오는 29일 법무부의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린다는 겁니다. 추천위가 후보군 3~4명을 추리면 박범계 장관이 한 명을 제청해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차기총장을 임명하게 됩니다.

좋으나 싫으나 추천위는 5일 뒤인 오는 29일 열릴 예정입니다.

수심위 일정, 그리고 '피고인' 신분?

변수는 '이 5일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가장 큰 변수는 이성윤 지검장이 요청한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일정이 언제 잡히느냐입니다. 수심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에 대해 검찰의 수사 계속 여부, 기소 여부,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외부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절차를 뜻합니다. 검찰의 기소권을 견제하는 수단인데 원칙적으로 수심위 결정은 ‘권고적 효력’만 지닐 뿐 법적 강제력은 없습니다.

이 지검장은 자신에 대한 수사가 공정한지 여부 등을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수원지검 역시 "신속한 소집을 원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대검은 지난 23일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제기 여부에 대해 심의하는 수심위 소집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개최 일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29일 후보추천위가 열리기 전까지 수심위가 개최되지 않는다면 이성윤 지검장 입장에서는 차기 총장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추천위에서 총장후보로 오른 이 지검장을 재판에 넘겨 피고인 신분으로 만드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외부 전문가 소집 등의 시간을 고려해볼 때 29일까지 수심위가 열리지 않고 추천위에서 이성윤 지검장이 후보로 추려지면 수원지검 차원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럴 경우 수사팀의 의견을 전달받고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대검은 역풍을 맞을 수 있지 않겠냐"고 설명했습니다.
대검찰청은 지난 23일 이성윤 지검장 사건 수사 및 공소제가 여부를 판단할 수심위 소집을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만약 29일 안에 수심위가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검은 "관련 절차에 따라 (수심위 날짜를) 신속히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법무부 추천위 이전에 열린 수심위에서 기소 의견이 나온다면 이 지검장이 후보군에 포함될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본인이 띄운 승부수에 본인의 발목이 잡히게 되는 셈입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외에도 유력 후보군으로는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구본선 고검장, 양부남 전 고검장 등이 꼽힙니다.

이성윤 지검장(사법연수원 23기)이 밀려난 자리에 김오수 전 차관(사법연수원 20기)이 오른다면 후배인 이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연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수심위가 불기소 의견을 낸다면 이 지검장 입장에선 큰 짐을 덜게 됩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수심위 결정은 법적 강제력은 없기 때문에 수사팀이 기소를 강행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난 20일 수원지검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이 지검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방어권 측면"이라며 "수사팀 출범 후 3개월동안 많은 사람을 조사했고 이런저런 증거들도 확보한 이상 그에 따라 (이 지검장 사건을)처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검찰총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빨라도 5월 말은 돼야 새 총장이 취임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권을 겨냥한 각종 수사들이 진행 중인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이 누가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