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에서 이럴 줄이야"…'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기업들 [도병욱의 지금 기업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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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생산직 노조는 파업 반복하고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또다시 파업을 했다. 지난 20~22일 부서별로 2시간씩 파업을 하는 순환파업을 한데 이어, 지난 23일에는 전 노조원이 4시간 부분파업을 했다. 지난달 19일 올해 첫 파업을 한 이후 한 달 만이다. 노조원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울산 본사 내부도로를 돌며 경적을 울렸고, 이후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별도 노조 준비하는 사무직들은 "성과급 더 달라" 요구
기업들은 "양쪽 요구 다 들어주면 비용 부담 너무 크다" 호소
최근 잇따라 수주를 따내면서 일감이 꽤 쌓인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을 하는 이유는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19년,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아직 마무리 하지 못했다. 자칫하면 3년치 임단협 교섭을 해야 할 판이다. 한국 기업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교섭 재개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가 노조와 협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 3월 2019년분 기본급을 4만6000원 올리고, 2020년분 기본급을 동결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했다. 성과급, 격려금, 복지포인트 등 일시금 지급도 합의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은 이 안을 찬반투표에서 부결시켰다. 찬성률은 45.1%에 그쳤다. 두 번째 부결이었다. 노조 지도부가 동의한 합의안이 투표에서 부결되자 임금을 더 올려달라고 파업을 한 셈이다. 노조의 막무가내 파업에 난감한 현대중공업을 더 곤혹스럽게 만드는 존재도 있다. 별도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선 일부 사무직이다. 이들은 최근 'No Pay No work(합당한 임금 없이는 일하지 않는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노조 설립을 위한 SNS 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이들은 최근 배포한 첫 유인물을 통해 "정시출근, 정시퇴근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30분 빨리 출근하라는 지시나, 10~20분 일을 더 하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지면 별도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젊은 사무직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비해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사무직 노조를 만드는 순간 생산직 임금과 무관하게 자신의 임금을 달라고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노조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중공업 외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노동조합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기존 생산직 중심의 노조는 툭하면 파업하겠다고 협박하고 있고, 사무직 직원들은 "정당한 성과 및 보상을 달라"며 별도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기업 노무담당자들은 "양쪽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려면 회사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경영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부담이 크다"고 토로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사정이 비슷하다. 2018년 사무직 노조가 생기면서 기존 생산직 노조와 별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무직 노조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이다. 생산직 노조보다 오히려 강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까지 SK하이닉스는 교섭권을 가진 생산직 노조와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해왔다. 하지만 사무직 노조는 올해부터 별도로 교섭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낸 소식지를 통해 "경쟁사는 기본급을 9% 혹은 7.5% 인상했다"며 이들 회사와 비슷한 수준의 임금 인상을 주문하겠다는 계획을 암시했다.
현대자동차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사무직들이 별도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생산직 노조는 올해 임금을 대폭 올리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기본급을 동결했는데,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 결과를 만회하기 위해 올해는 강경투쟁할 것을 예고했다. 최근에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금호타이어도 강성 생산직 노조가 여전한 상황에서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졌다. 산업계 관계자는 "생산직 노조와 사무직 노조 모두 결국 임금 인상을 원하고 있는데 서로 선명성 경쟁을 펼치면 요구 수준과 투쟁 강도가 갈수록 세질 것"이라며 "양쪽 노조의 기싸움에 기업들이 괜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