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비중이 온실가스 배출량 결정…원전 없는 탄소제로 가능?[이지훈의 산업탐사]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2억5966톤 역대 최대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차인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역대 최대치인 2억5966톤까지 폭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이 전체 전력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저치인 23.7%까지 내려간 해다. 이후 정부가 원전 비중을 슬그머니 올리면서 탄소배출량은 다시 감소 추세로 전환했다.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서 0이 되는 개념)을 달성하기 위해선 탈원전 정책의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에너지 전문가들의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원전이 좌우한 탄소배출량

26일 환경부가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온실가스 배출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탄소배출량은 2018년 2억5966톤을 기록,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인 2016년(2억3970톤)과 비교해 2년 사이 1996톤 늘어난 수치다. 정부가 탈석탄·탈원전 정책을 펼치면서 2년간 대기질이 더 나빠졌다는 의미다. 이 기간 한국전력이 발전회사들로부터 사들인 전력원에서 차지하는 원전 비중은 30.8%에서 23.7%로 7.1%포인트나 줄었다. 통상 80~85%를 유지하던 원전 이용률도 2017년 75.2%, 2018년 59.8%까지 떨어졌다. 발전단가가 싸고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 원전 가동률을 줄이면서 전력구매 비용이 늘고 탄소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한 셈이다. 그러자 정부는 2019년부터 원전 비중을 다시 끌어올리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탄소배출량도 줄어드는 추세로 전환했다. 지난해 원전 비중이 29.5%까지 올라서자 탄소배출량은 2억188만톤을 기록, 2016년보다 더 낮아지는 성과를 냈다. 정부는 이를 두고 탈석탄,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성과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사실상 원전발전 비중이 탄소배출량을 좌우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자료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계수(g/kwh)는 석탄발전과 LNG발전이 각각 760과 370이고, 나머지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는 제로(0)다. 발전소 건설부터 폐기까지 전주기로 확장할 경우에도 석탄(820), LNG발전(490), 태양광(27), 수력(24), 원자력(12), 풍력(11) 순이다. 이 같은 수치는 에너지 전문가들이 탄소제로 달성에 원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2019년부터 원전발전 비중이 다시 늘어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석탄발전마저 줄이면서 발생한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원전 비중 증가는 불가피했던 것이 첫번째 이유다. 또 신고리 4호기가 가동을 시작하고, 일부 원전이 정비를 거쳐 다시 정상 가동한 점도 원전발전 비중 증가에 영향을 줬다. 특히 지난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총 발전량이 감소하고, 전력 피크수요가 줄어든 외부환경이 원전 비중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기저부하(전력을 일정하게 안정적으로 공급)를 담당하는 원전의 역할이 늘어나면서다. 또 이 시기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줄이면서 원전 비중 증가를 정부가 용인한 측면도 크다. 한국전력이 발전회사들로부터 사들인 LNG발전 전력량은 2018년 15만473GW까지 늘어났다가 2020년 14만3732GW로 다시 감소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이 원전 비중 증가를 자연스런 에너지 수급 전환 계획의 과정이라기보다는 비용부담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불가피한 정부의 선택이라고 평가하는 까닭이다.

한편, 이같은 LNG발전 비중 감소는 부수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LNG발전소는 가동초기에 불완전연소로 초미세먼지가 대량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발전소는 계속 늘어나는데, 발전량이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동률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가스터빈을 켰다 컸다 반복했다는 의미다. 이는 LNG발전소가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측정되지 않는 일산화탄소, 미연탄화수소 등 초미세먼지를 대량 배출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탈질설비 전문가는 “LNG발전소 가동률 감소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드는 ‘눈속임’에는 용이할지 몰라도, 심각한 도심 초미세먼지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탄소중립 계획 실현 가능한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열린 기후정상회의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상향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구체적 상향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큰 폭의 온실가스 감축은 우리 사회 전분야에 걸쳐 급속하고 전면적인 대전환을 요구하는 일이어서 현실적 대안을 찾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진단이다. 이를 두고 문 정부가 탈원전 프레임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원전 활용이 불가피한데, 탈원전 선언을 뒤엎을 수 없어서다. 경제계에서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하는 에너지 정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세계적인 화두여서 한국 정부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이 이번 기후회의에서 2005년 대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50~52% 감축하겠다는 약속하는 등 선진국들은 주변국에 탄소중립 동참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원전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게 한국과 다르다. 미국은 탄소중립 로드맵을 통해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청정에너지로 분류하고 대대적인 투자계획을 밝혔다. EU도 녹색산업 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최근 ‘14차 5개년 계획’을 내면서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 개발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래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면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 탈석탄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전력 공급 불안, 전기료 인상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은 허투루 들을 얘기가 아니다. 발전 단가가 비싼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한전의 전력구매비가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작년 기준 태양광·풍력 등으로 생산한 전력은 1kWh당 89.9원으로 원전 전력 단가(56.2원)의 약 1.6배에 달한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는 테크놀러지(기술)인데 정치에 휘말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배출전망치(BAU) 대비’에서 ‘절대량 대비’로 바꾼 것도 냉엄한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순진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도 “원전 없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라며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가 원전으로 회귀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실질적으로 달성가능하면서 경제적 충격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