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출신으로 실리콘밸리에 취직하려면… [김재후의 실리콘밸리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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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실리콘밸리 특파원입니다. 1~2회 뉴스레터에선 실리콘밸리의 개요, 3~4회 뉴스레터에선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벤처캐피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5~6회에선 실리콘밸리에 어떻게 취직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해드리고 있습니다. 5회에선 이과 출신에 해당하는 엔지니어의 경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뉴스레터가 나간 후 문과 출신 분들도 이메일로 같은 문의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일하고 있는 '선배'들을 취재해봤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선 개별 직원들의 인터뷰가 허락되지 않아 취재한 대상을 익명으로 대신하는 점 이해바랍니다. 이들이 말하는 공통된 의견을 정리해봤습니다.
"단순히 실리콘밸리에서 살고 싶다고 여기로 취직하는 건 말리고 싶습니다. 여기에서도 한국에 대한 향수병이 영원히 있고, 시민권을 부여받아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큰 꿈이 있고, 실리콘밸리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면 지원을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기업문화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여기에선 출퇴근이 자유롭고, 눈치를 상대적으로 보지 않고,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문화이지만, 많은 자유가 부여된 만큼 성과가 부족하면 바로 낙오됩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면, 영어도 유창할 정도로 공부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한국분들이 최근엔 한국기업으로도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것이 자신에게 맞는지 먼저 생각하고 판단해보는 게 좋아요."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이 기사는 한경 뉴스레터 서비스로 가입한 이메일로 오늘 새벽에 제공됐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한경 뉴스레터(https://plus.hankyung.com/apps/newsletter.list)에서 이메일 주소만 넣어주시면 됩니다.
실리콘밸리=김재후 특파원
0. 문과 출신의 벽은 분명히 있다
한국에서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취직할 때 문과 출신이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만들어진 슬픈 조어입니다. '문과 출신이라 죄송합니다'라는 뜻이어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실리콘밸리는 '세계 IT(정보기술) 수도'입니다. 따라서 개발자나 엔지니어가 기업을 주도하는 문화가 더욱 강합니다. 문과 출신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문과 출신이 없는 건 아닙니다. 구글의 부사장급에도 문과 출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미국인입니다. 문과 출신은 보통 마케팅과 경영, 인사 등의 분야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는데 미국 기업에서 미국 시장을 상대하려면 영어뿐 아니라 미국 문화나 트렌드 등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한국인이 한국 대학을 나오거나 미국 대학원에 유학와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여기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문과 출신으로서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구글이나 페이스북 테슬라 우버 인스타그램 등에 바로 들어가는 길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1. 벤처캐피털을 노려라
그럼에도 이런 뉴스레터를 쓰는 건 길이 전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한국계 벤처캐피털(VC)은 그나마 한국의 문과 출신에 열려 있습니다. 물론 이과 출신이 VC업계에서도 문과 출신보다 유리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초기와 달리 이과 출신을 VC들이 선호하는 추세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술이 급격히 고도화·세분화되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문과 출신들도 기회가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한 한국계 VC 대표 A씨는 "예컨대 배터리를 전공한 직원은 자율주행 반도체 핀테크 등의 스타트업의 분석과 투자에선 크게 장점이 있지 않다. 오히려 기업경영상태를 보거나 기업문화를 읽어내는 능력은 문과 출신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국계 VC들에선 한국 문과 출신 직원들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본을 끌어와야 하고, 한국의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도 도와야 하는 업무가 많아서 활동 영역이 존재합니다. 임정욱 TBT벤처캐피털의 공동대표도 문과(한국외대 경영학과) 출신이고, 현재 자동차부품회사인 만도의 실리콘밸리 투자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는 차동준 소장도 문과(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왔습니다. 다만 문과를 졸업하고 공학석사나 경영학석사(MBA)를 받는 게 실리콘밸리 VC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높여준다고 현지 VC들은 얘기합니다. 임 대표와 차 소장 모두 미국에서 MBA를 획득했습니다.2. 바로 태평양을 건너지 마라
한국의 문과 출신들에게 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취직 조언은 이과 출신들에게 했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이과 출신들에게 "일단 태평양을 건너는 게 중요하다"고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계 엔지니어들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란 얘깁니다. 이들은 문과 출신들에겐 "바로 미국에 오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VC들은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합니다.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서(CVC-기업형벤처캐피털)나 투자 수익을 내기 위해서(VC) 많은 고민과 공부를 병행합니다. 모두 중요한 목적의 투자이기 때문에 VC에선 경력이 있는 직원을 매우 선호합니다. 대학에서 금융이나 마케팅,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바로 채용하진 않는다는 얘깁니다. 실리콘밸리 VC의 B 대표는 "스타트업의 투자 분야는 예컨대 '컨슈머, 자율주행, 바이오, SAAS(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등으로 세분화돼 있는데, 해당 분야를 전공한 대학(원) 졸업자라고 바로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면서 "문과 출신이라면, 금융을 전공하거나 해당 분야에서 취직해 일을 하고 경력을 쌓은 뒤에 VC로 이직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미국 영주권이 없다면, 이렇게 경력을 쌓은 뒤 한국계 VC의 한국사무소에 문을 두드려 입사하고, 향후 실리콘밸리로 발령을 받는 수순이 가장 현실성이 있다고 VC 대표들은 전했습니다.3. 이력을 쌓아 자주 접촉해라
신기술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에 취직해 일을 한 뒤 경력을 쌓는 것이 일단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선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현지 VC 임직원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특히 공개채용(공채) 제도가 없기 때문에 더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VC업계는 사실상 '사교계'에 가까워서 더더욱 그러합니다. 실리콘밸리의 C 벤처캐피털 대표는 "채용 공고를 내기도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뽑는 경우가 더 많다"면서 "전공과 경력을 중시하지만, 채용 과정에선 반드시 레퍼런스 체크를 하게 되는데 주변 인물이 지원자를 알고 있는 경우가 있으면 채용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소재하고 있는 벤처캐피털 임직원을 지원자가 알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미국으로 가기도 쉽지 않고, 금전적 시간적 부담도 있습니다. VC 임직원들은 각종 행사를 그 통로로 활용해보라고 권합니다. 이곳 VC 한 직원은 "한국계 VC 임직원들은 업무상 한국 방문을 많이 한다. 행사 참석이나 스타트업 발굴 및 교류 업무도 많고 LP(자본투자자)를 구하러 가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를 보면, 그들의 동정이 소개가 되는데 행사장을 방문해서 인사를 하고 얼굴을 터두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특히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경우라면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CES나 테크크런치 등의 행사에 출장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이 곳엔 VC들도 반드시 참석하는데, 이 때 인맥을 만들어 두면 좋다고 귀띔을 많이 합니다.4.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둔 회사에 입사하라
MBA를 받고, 경력을 쌓아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게 어렵고 힘들다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있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입사 후 사내에서 이쪽으로 진로를 만드는 경력 관리 방법입니다. 현재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두고 있거나 둘 예정인 한국 기업은 삼성 LG SK 현대차 현대모비스 만도 쿠팡 GS 산업은행 넥센타이어 등입니다. 공기업으로는 KOTRA와 한국투자공사(KIC) 대전테크노파크 등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회사에 입사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은 문과 출신이라면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해당 기업에 입사를 하면, 사내에서 실리콘밸리의 투자나 지원 업무를 뽑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구글 애플 넷플릭스 우버 에어비앤비 등 미국에서 시작한 기업도 한국에서 인재를 뽑습니다. 해당 기업에 입사를 하면 실리콘밸리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5. 다만...
지난번 5회에 썼던 현지 선배들의 공통된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이번 뉴스레터를 마무리짓고 싶습니다. 문과 출신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까요."단순히 실리콘밸리에서 살고 싶다고 여기로 취직하는 건 말리고 싶습니다. 여기에서도 한국에 대한 향수병이 영원히 있고, 시민권을 부여받아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큰 꿈이 있고, 실리콘밸리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면 지원을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기업문화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여기에선 출퇴근이 자유롭고, 눈치를 상대적으로 보지 않고,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문화이지만, 많은 자유가 부여된 만큼 성과가 부족하면 바로 낙오됩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면, 영어도 유창할 정도로 공부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한국분들이 최근엔 한국기업으로도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것이 자신에게 맞는지 먼저 생각하고 판단해보는 게 좋아요."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이 기사는 한경 뉴스레터 서비스로 가입한 이메일로 오늘 새벽에 제공됐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한경 뉴스레터(https://plus.hankyung.com/apps/newsletter.list)에서 이메일 주소만 넣어주시면 됩니다.
실리콘밸리=김재후 특파원